[포스티슈] 나와 배우 공유의 패션 간극에 대한 철학적 고찰

in #kr8 years ago (edited)

공유_패션_(1).png
<출처: tvN 드라마 도깨비>


 이 글은 드라마 <도깨비>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을 때 쓴 것이다. '나와 도깨비가 같은 옷을 입었는데 왜 다른 느낌이 날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으로 같은 롱코트를 입은 나와 공유의 패션 사이에는, 꽤 넓은 간극이 있었다. 처음엔, ‘그건 나와 공유의 신체적 특성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후에 내린 결론은, 그건 두 사람의 신체 특성의 차이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다분히 철학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내가 밝히려고 하는 ‘철학적 문제’를 증명하게 된다면, 그 작은 부분보다 훨씬 큰 부분들은 더 말할 것이 없게 된다. 더 중요하고 큰 부분으로 확장되어 갈수록 작은 부분에서 증명한 철학적 문제는 더욱 크고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롱코트에 달린 작은 단추 얘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 입은 롱코트가 공유의 몸을 두른 것과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코트의 모든 부분은 똑같다.(내가 마침 운 좋게 쇼핑몰의 설립 1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그 코트를 5% 정도 싸게 샀어도, 코트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롱코트에 달린 단추는 공유와 내 몸에서 다르게 기능한다.

 공유가 롱코트를 입고 있을 때 단추는 결코 잠기지 않는다. 낙하하던 새똥도 순식간에 고드름이 되어 버리는 기록적인 한파에도 단추는 꿈쩍하지 않는다. 롱코트를 입은 도깨비를 보면서 이렇게 감탄을 내뱉곤 한다.

 “저렇게 추운데도 단추를 여미지 않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혈색을 유지하려면 대체 어떤 내복을 입어야 되는 거야?”

 몇 백 년을 변함없이 역사 속에서 살아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깨비는 고집스럽다. 실수로라도 단추를 잠그게 된다면 롱코트 사이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던 폴라티가 격분하여 그 목을 조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공유의 단추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중국 OEM 공장의 여공이 달아줄 때 부여한 애초의 목적과 상관없이 미적 장치로만 기능하면서 말이다.

 반면 내가 롱코트를 입고 있을 때, 단추는 쉴 새 없이 코트의 앞섶을 통과해서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한다. 바람에 취약한 나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단추는 세풍에도 어김없이 잠긴다. 입고 있는 스웨터가 구리다는 이유로, 바지 지퍼가 예기치 않게 잠기지 않을 때도, 내 롱코트의 단추는 분주하게 일한다. 그저 존재할 뿐인 도깨비의 단추와는 다르다. 애초에 부여된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추.png


 이 지점에서 나와 공유의 패션 사이엔 철학적 간극이 발생한다. 내 코트의 단추는 ‘목적’을 갖고 존재하고, 공유의 단추는 ‘실존’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존재론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목적을 갖고 존재한다.’는 거였다. 데카르트의 '실존'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나의 패션이 공유의 그것과 같아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공유의 패션은 ‘철학적인 간극’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단추 하나부터.

 (도깨비 단추의 ‘실존’을 가능케 하는, 발열의 비밀을 푸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추후 별개의 철학적 과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고에 붙여 - 저처럼 어렵게 패션의 틀을 깨고 나와서 도깨비가 되고자 했지만, 거울 속에서 엄청난 간극을 목격하고 좌절했던 분들에게는 이 글이 한 조각의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얼굴이나, 몸이나, 표면으로 드러난 여타의 문제 탓이라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 간극은 다만 우리와 공유의 옷에 내재하는 ‘철학적인 간극’ 때문일 수 있으니까요.

주의 - 이 문제를 대하는 분들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요. 본고의 논지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논의는 환영합니다. 하지만 “너랑 공유가 다른 이유? 그건 공유니까! 넌 공유가 아니니까!” 와 같이, 모든 논의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비난은 삼가 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P.S

 이 글의 분류를 [포스티슈]라고 했습니다. ‘패러디’, ‘파스티슈’, ‘포스티슈’는 엄연히 다른 뜻을 갖고 있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섞어 쓰기도 합니다.

패러디와 파스티슈는 둘 다 모방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본래의 뜻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패러디는 어떤 진지한 작품을 해학적으로(또는 풍자적으로) 개작한 것이고 파스티슈는 어떤 대가의 기법이나 양식을 모방한 것이다.

포스티슈는 가발이나 가짜 수염으로 덧붙인 것, 인공적인 것, 거짓으로 꾸민 것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 중

 제가 쓴 글에서 어떤 의미를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일차적으론 재미를 위해 썼습니다. 대놓고 글에 가발을 씌워 짐짓 진지하고 점잖은 태도를 우스꽝스럽게 보이려고 했다는 점에서 [포스티슈]라는 분류명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글을 가지고 놀고 싶을 때, 앞으로 종종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감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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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단추를 담그지 않고도 혈색을 유지하는 건 메이크업 때문이고, 옷 속에 숨겨놓은 핫팩 덕분일 겁니다. 그리고 "컷!" 소리가 날 때마다 난로 앞에서 불쬐느라 정신 없을 걸요. ㅎㅎㅎ

아니! 핫팩과 메이크업이라니요ㅋㅋ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시네요~~!! 화면 밖 상황을 주시할 필요를 느낍니다ㅎㅎ

왜 이런 비교를 굳이... (제목만 봄...) 용기에 보팅을.

아니 지레!! 분연히 일어나십시오ㅎㅎ

솔메님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는 분이셨군요 ㅋㅋㅋ
철학적 차이라고 해둡시다 ㅋㅋㅋ

아니 이런 진지한 철학적 고찰을 보시고도 그렇게 생각하시다니요!ㅎ 마지못해,, 동의하시는 건, 아니겠지요?ㅋ

목적이 실존을 앞선다면 패션이라하기 어렵지요 ㅎㅎㅎ

정녕 패션은 실존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꺄!ㅎ

단추였군요.
그거 열거나 채우거나 하나라도 없으면 이상한 옷 됩니다.

패션의 화룡점정 같은 건가요ㅋㅋ

단추...크... 결정적인건 아니만 치명적이네요

치명적인 이유로 롱코트가 달리 보이는 거죠. 에헴.ㅋ

그래서 전 공유패션을 따라하지않습니다.

전 현실에 쉽게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ㅋ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모두 다르지요. 내가 만일 공유의 마음가짐으로 걸어다닌다면, 누군가에게 저는 공유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다면, 그 누구도 저를 공유로 할 수 없습니다.

ㅎㅎ 마음가짐으로 공유가 될 수 있다면, 전 공유도 되고 강동원도 될 겁니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안 봐준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만요. ㅋ

공유가 아닌 박보검으로 비교를 하셨다면 모든 논의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비난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저 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 아닙니다. 어디에 누워 다리를 뻗어야 할지 정도는 안달까요.ㅋ (박보검 주연작에 롱코트가 안나온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박보검보다 공유를 선호하는 1인으로서 분개합니다. -ㅁ-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한 건 아닙니다. 모든 기호를 고려하여 성동일쯤으로 선택할 순 없었다는 점, 양해바랍니다.ㅋ

재밌습니다 ㅋ 그 자체로 실존하느냐, 수단으로 존재하느냐의 차이이군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를 지향한 이 글의 목적을 달성했군요. 이 글은 수단으로 존재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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