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삶의 표준에 대하여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캐나다로 떠났다. 명목은 최소 2년의 어학연수지만 지내보고 아예 눌러 살 생각이다. 친구는 12월 초 미리 들어갔고 친구의 가족들도 내년 5월에 캐나다로 들어갈 예정이다.
친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년쯤 일을 쉬고 있었다. 일을 쉬면서도 친구는 독서실과 체육관 등에서 나름 빡빡한 하루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금 유치원생 아들을 둔 친구가 일찍 결혼하고 나서 만나는 횟수가 줄었는데 뒤늦게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1년에 서너 번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떠나기 넉 달 전쯤, 우리가 만났을 때 친구는 캐나다로 떠날 계획을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친구의 현재 상황이었다. 유치원생 아들, 30대의 끝자락인 나이, 일을 쉬고 있는 현재, 넉넉하지 않은 집안 경제 사정 등.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지금 어학연수를 가기엔 좀 늦은 거 아니냐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친구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힘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열에 아홉은 그런 얘기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유일한 길은 아니겠지만 꼭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어렵게 부인도 설득하여 함께 가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아차, 싶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건가. 나에게 삶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친구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 꿈을 꾸며 모험을 하려는 친구에게 격려는 못해줄망정,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과정을 기준 삼아 친구의 결정을 한 마디로 뭉개버리다니.
열에 아홉 속에 포함된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난 언제부터 이렇게 평범해져 버렸나, 언제부터 도전하는 인생을 무모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어 버렸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난 한 발 늦었지만 친구의 결정에 온전한 지지를 보냈다. 열에 아홉이 아니고, 열에 하나에 속해 친구의 도전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평범한 삶이 표준이라고 규정짓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한다. 하지만 수많은 삶의 가치들은 평범하지 않은 도전에서 생겨난다.
편의점 인간과 지친 하루
일본 작가 무라타 시야타의 <편의점 인간>은 '과연 정상적인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소설이다.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연애 한 번 하지 않고 매일 편의점의 규격화된 모든 것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주인공은 사회에서는 부적응자의 범주에 속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모든 게 규격화되어 있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되는 편의점에선 보통의 인간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인공은 편의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마음대로 규정하고, 졸업-취업-결혼-육아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과정을 유일한 삶의 지표로 여기고 있진 않은지, 그걸 잣대 삼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마음껏 판단하고 있진 않은지, 화두를 던지는 책이 바로 이 <편의점 인간>이다.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실제로 작가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삶의 표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노래도 있다. 월간 윤종신에 수록된 <지친 하루>라는 곡이다. 노래는 곽진언, 김필이 불렀다.
노래 속 화자는 꿈을 향해 달려가느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번듯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잠시나마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맞는 길인가?'를 고민하고 회의하는 것이 이 노래의 내용이다.
후렴에서 또 다른 자아는,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것.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
이렇게 노래하면서 꿈을 향해 나가는 길에서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하고 격려를 건넨다. 내 느낌으로는 그 격려도 어딘지 모르게 처절하고 음울해 보인다.
삶의 표준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 가진 게 없다고 수시로 고개를 드는 생각 때문에
꿈을 접고 싶은 분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흔들리지 말고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드릴 건 없고 이 노래를 건넵니다.
2014 월간 윤종신 12월호, <지친 하루>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격려가 힘이 됩니다^^
정말 훌륭한 글이십니다..열의 아홉의 인생을 쫓고있는 저 그리고 열의 한명이길 바래던 저였는데 주변의 만류와 닦달의 지고 보통의 삶을 사는 저로써 이글을 읽으며 부끄러웠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스스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남들이 다 가는 길 위에 선 자신을 발견하지요. 보통의 길을 걷지만 가끔 다른 스텝으로 걸어가도록 해요!^^
새해 처음으로 접한글이 이렇게 좋은 글이라니! 감사드립니다. 근데 저 같아도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삶의 표준은 없다 생각하고 그런걸 벗어던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것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새해엔 반성해야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전 나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새 현실에 많이 길들여졌나 봅니다. 고루한 어른이 안되려면 다시 생각을 해야겠지요. 좋은 새해되세요! ^^
와... Brunch님이 스팀잇에서 제일 좋아하는 분인데 그분 다음으로 또 너무너무 맘에드는 분을 만나게 되서 영광입니다...ㅣ
근데 심지어 이글에 brunch님이 댓글을 다셨네요... 팔로우하고 갈게요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리얼 명필입니드
새해 첫 날부터 제 글을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니 참 기분이 좋습니다. 자주 뵈어요. 저도 팔로우 하겠습니다. ^^
저도 20대 후반에 워킹으로 호주가서1년 지내다온친구가, 다시 교육비자로 호주가서 알바하면서 산다고햇을때 ... 격려는 못해주고 평범한 어른들처럼 너 결혼은 안할꺼냐 미래걱정은 안되냐며 훈수둔게 생각나면서 그친구에게 미안해지네요...
20대 때는 너나할 것 없이 거의 다 이상주의자인데,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이 다 사는 방식으로 살다보면 어느 새 삶의 표준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일순간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이 글을 썼습니다. ㅎ
편의점인간은 추천하시는분이 많네요.
지친하루도 원래 아는 노래인데 이렇게 들으니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12월호라는 점도 눈이 띄구요.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편의점인간>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지만, 그 책 속에 담긴 메시지랄까, 생각할만한 게 많더라구요. 월간 윤종신,, 좋은 노래 많습니다.^^ 멋진 한해 되시길!
3년전부터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는 제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들이 이런말을 해요.
"제주? 와 좋겠다~ 나도 제주에서 살고 싶다. 제주 사니까 좋지?"
그럼 전 이렇게 말하죠
"서울에 비해 좋은점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지. 그렇게 좋아보이면 정리하고 내려와~"
그럼 또 이렇게 말해요
"정말 그러고 싶다. 근데 그게 쉽나!"
"그래. 쉽지 않지..."
지금까지 대화는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이런패턴이었어요.
그럴때면 난 제주 내려오는게 왜이렇게 쉬운 결정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돼요.
결론은 간단했어요
지켜야할것, 채워야할것, 해야할 것들이 많은 그들 혹은 4년전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난 그러한 것들이 없더군요.
상실의 시간이 지난 후 제 마음에는 많은부분이 비워져있었어요. 거의 전부라할만큼.
제주로 향할때 내려갈수 없는 이유는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고 제주로 가고 싶은 마음만이 있었죠.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절대적인 기준으로 측량할 수 없는 옳고 그름, 선과 악, 삶의 정의, 표준.. 이러한 것들은 사회의 틀 안에서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한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삼켜 내가 없는 인생이 되게하기도 하더라구요.
산다는것.. 어떤 모양새로든 살아져요.
별거라고 생각하면 별거 있겠지만 별거 아니란 마음이 깃드니 별거 아니더라구요. 비우면 편해요. 그러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보이지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구요.
"선악을 넘어서 좋음과 나쁨으로" - 프리드리히 니체 -
순간순간 이 말이 제 인생의 방향에 이정표역할을 한답니다.
좋음과 나쁨은 저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진실한 울림이기에 제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구요.
p.s. 오늘도 주절주절 길어졌네요ㅠ
17년의 끝자락에 kyslmate을 만난건 의미있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즐겁거든요 :)
새해에도 자주 뵈어요. 부디 지치지말고 편히 오래토록 글 남겨주시구요. 행운 깃든 한 해 되시길!
ryuie님의 댓글만 모아서 글로 정리해도 훌륭한 성찰일기 되겠습니다^^
제주도에 사시는군요! 저도 우선 좋으시겠다, 라는 말이 우선 나오네요. 사람들은 본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과 다른 곳을 동경하기 마련이지요. 추운데 있으면 따뜻한데 가고 싶고 더운데 있으면 시원한데로 가고 싶어하듯이요ㅎ 그렇지만 님 말씀처럼 머물고 있는 그 자리를 박차고 움직이긴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연결된 존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도전하기엔 너무 무거워져버렸다고 표현하면 적당하겠네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로 가신 ryuie님은 주변에서도 놀라운 행보로 회자됐겠습니다.
바다 건너에서도 이렇듯 글로 교류할 수 있는 시대네요. 새해에도 소망하신바 다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부터 가슴에 와닿는 글 감사드립니다~!
30대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곱씹어 읽게 되네요~^^
네 첫날부터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0대가 금방 지나가는 거 같네요. 좋은 새해되세요.ㅎ
wow ,, just worth it if korean movies often shoot in seoul
Nice to meet you.
정말 씁쓸한 일은 열에 아홉이 틀리지 않는 경우입니다.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좌절하는 도전자들을 바라보는건 너무나도 힘들지요.
네 동감입니다. 열에 아홉이 되어야 할 때도 있지요. 인생의 도전 앞에서 확신없이 주저하고 있는 친구였다면 아홉중에 하나가 되어야했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