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아웃렛 (6th.)

in kr •  13 days ago

고양이5.jpg


아 웃 렛

   동화.   writen  by  Soulmate  


여섯 번째 편지



 집사님, 텅 빈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어요. 거대한 검은 심연. 제가 그 쪽으로 가서 한 발짝 내딛기라도 한다면 한없이 빠져들어 제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아요. 텅 비어버린 공간은, 어둠으로 가득 찼어요. 저에게 ‘빈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엇이 아니고, 있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가득 차 버린 걸 의미하지요.

 제가 자주 집을 비웠던 석 달 정도의 시간도 집사님에게 검은 공백이 가득 찬 시간이었을까요? 기주씨가 들어오고 나서 한 일 년 정도가 지난 시점부터 전 바깥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어요. 기주씨와 집사님이 자주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던 시기였지요.

 “이럴 거면, 왜 다시 합친 거야? 기주씨는 가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다가다 잠만 자는 호텔쯤으로 생각하는 거야?”
 “호텔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당신도 알잖아. 내 일이라는 게 규칙적인 일상을 지낼 수 없다는 거. 당신에게 당신 일의 목표가 있지. 나도 마찬가지야. 왜 그걸 인정해주지 않아?”
 “규칙적인 일상? 그건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거 아니야? 남들 자는 시간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대체 뭔데?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면서 이루려고 하는 게 뭔지 궁금해.”

 기주씨는 카페 두 개를 운영하고 있었지요. 그는 알아주는 바리스타였고, 그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분점도 내게 되었어요. 두 카페는 지역의 맛 집으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지요. 집사님이 언젠가 저를 데리고 카페 한 곳을 간 적도 있었지요. 분위기가 좋았고, 커피 자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사람들은 기주씨 앞에서 커피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어요. 저와 집사님은 별로 적응이 안 되었고, 집사님은 기주씨와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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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주씨는 카페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었어요.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다른 분야와 협업을 하며 사업을 계속 확장해 가고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 기주씨는 밤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머무는 일이 잦아졌어요.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면 집사님과 기주씨는 말다툼을 했어요. 전 그 분위기에서 맘 편히 있을 수 없었어요. 날카로운 낚시 바늘 같은 말들을 피하고 싶었어요. 그 말들이 제게 닿아 살갗을 뚫을 것만 같았어요. 그때부터 전 기주씨가 오는 기척이 들리면, 문을 긁어서 나가고 싶다는 표시를 했어요.

 처음엔 집사님이 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러다가 열린 문 사이로 저 혼자 한 번 나갔다 온 이후로 집사님은 제가 나갔다가도 혼자 집을 잘 찾아온다고 안심하셨는지 저를 홀로 내보내 주기 시작했죠.

 “안에만 있어서 답답한 모양이네. 그래 바깥바람만 좀 쐬고 오렴. 너무 늦으면 안 돼.”

 집사님은 어느 순간부터 제가 나가고 싶어 할 때마다 기주씨가 온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예요. 기주씨가 올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고양이는 나가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초기에 전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바깥 세계를 구경했어요. 꽃을 입으로 물어보기도 했고, 나비를 쫓아 가보기도 했어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산책을 다녔지요. 동네 공원 분수대 주변에 떨어진 물을 핥아 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우리 옆집에 사는 아그네스를 만난 거예요. 아주 우연한 일이였어요.

 “이 근처에 다른 고양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아그네스가 저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나도 널 처음 본 것 같은데? 어디에 사는 거야?” 저도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요.
 “난 이곳에 살아. 저 할머니가 내 집사님이지.” 아그네스는 우리 옆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실 소파에 반쯤 누워 잠이 든 할머니를 가리켰어요. “할머니는 내가 집 밖으로 나오는지 알지 못하셔. 걱정이 많으시거든. 할머니가 낮잠을 자면 난 살금살금 나와서 산책을 하지. 넌 길고양이야? 행색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난 여기 살아. 옆집에. 나도 밖을 다니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사님은 나를 믿으시거든. 내가 원할 때면 내 보내주셔.”

 그렇게 알게 된 아그네스와 날마다 만나게 되었어요. 아그네스를 좋아하게 되면서 전 기주씨가 오든지 오지 않든지 상관 않고 밖으로 나갔지요. 주로 옆집 할머니의 낮잠 시간에 맞춰서 움직였죠. 집사님이 글을 쓸 때 전 더 이상 방에 함께 머물지 못했어요. 집사님은 그때 어떠셨나요? 저에게 서운하셨겠죠? 집사님은 저의 존재가 현실의 언저리에 집사님의 마음을 묶어주는 끈과 같다고 하셨지요. 집사님은 끈 풀린 배처럼 먼 바다로 밀려갔다가 돌아오시곤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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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제가 아그네스와 웃고 떠들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사님은 힘없이 제게 말했어요.
 “OO아, 바깥에 좋은 게 있니?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왜 다 바깥을 좋아할까? 난 정적인 사람이야. 내 사랑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내 마음은 그걸 담기엔 역부족인 것 같기도 해.”

 집사님의 푸념을 듣고 전 알아챘어야 했어요. 집사님의 마음이 매일 매일 먼 바다로 떠났다가 힘겹게 노를 저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제가 집사님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아그네스와 격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던 저는, 집사님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었어요. 그땐 제 감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지요. 어리석고 이기적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은 저를 사랑해주셨어요.

 “꼬맹아, 네가 뭘 하든 행복하면 나도 좋아. 넌 언제나 이렇게 매일 내게 돌아오잖니.”
 “야오오오옹.” 전 제가 가진 격정을 담아 집사님께 대답했어요.

 집사님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두 배는 몸이 커버린 저를 번쩍 들어 가슴에 꼭 껴안아 주었지요. 그때 집사님의 품에서도 저는 아그네스를 생각했어요. 그걸 생각할 때면, 그 기억이 날카로운 낚시 바늘이 되어 제 마음을 잡아챕니다. 제 마음은 찢기고 피가 흘러요.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쉬기 어려워져요. ‘후회’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미안함’이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어요. 그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그 순간, 집사님 품에서 집사님을 꼭 안아줄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제게 큰 사랑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해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흘려보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한숨 쉬고 우는 것 밖에 도리가 없어요. 그 소중한 걸 놓쳐버린 자신을 아무리 책망해 봐도 소용이 없지요. 그때 그는 어땠을까요. 자신의 사랑이 미숙한 누군가에게 잘못 향한 탓에 마음에 가 닿지도 못하고, ‘빈 곳’들을 채우는 검은 공기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마음은요.

 집사님, 아직도 전 텅 빈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어요. 저에게 ‘빈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엇이 아니고, 있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가득 차 버린 걸 의미하지요. 빈 것을 채우는 것들의 실체를 알아버렸어요. 그건 저의 어리석음과 미숙함 때문에 제 마음에 와 닿지 못한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에요. 빈 곳의 검은 공기가 되어버린 그 사랑과 헌신은 오늘도 저를 찌르고 있어요.




To be contiued. 7편에 계속.


P.S.

픽션을 쓰는 일은, 연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선 그 인물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지요. 요즘 저는 아웃렛에 몰입하고 있어서, 중간에 다른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끝을 짐작할 수 있을 때까진 아웃렛으로 지내렵니다. 이웃님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역할로 지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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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입니다ㅎ

boddhisattva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boddhisattva님의 TOP 200 effective Steemit curators in KR category for the last week (2018.09.03-2018.09.09)

...tyle="text-align:left">163 kyslmate/td> 106 <td style="tex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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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뭔가 슬픈 예감이 드는건 뭘까요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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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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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ㅎ

기주씨의 불평이 며칠전 오랜만에 큰소리 내며 싸우던 우리집 어떤 남자의 것과 비슷하네요 ㅋ 아웃렛 말고 우리집은 토끼같은 아이들이라 몰래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없이 방치되었었는데 그 아이들은 얼마나 그 싸움의 소리가 날카로운 낚시바늘 같았을까요. 아니면 그 아이들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남친 여친을 생각했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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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이야기 속에서 북키퍼님의 집에 사시는 남자분의 그림자를 볼 줄이야. 한바탕 설전을 벌이셨군요. 화해는 하셨겠지요?^^ 아이들이 낚시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있었길 바래봅니다ㅎ
함께 정을 나누던 오래된 이웃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게 된 상황에서 북키퍼님을 계속 뵐 수 있다는 게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샬롬, 자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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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저의 출품작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늘 신랑이 그리운데, 신랑은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라고ㅜㅜ 아이들 크는거 다 놓칠것이냐... 집으로 좀 와라 블라불라블라... 하다가, 갑자기 집에 오면 너의 찡그린 얼굴 때문에 힘들다ㅜㅜㅜㅜ 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ㅜㅜㅜ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날은 정말 제가 너무 화나고 서운하고 밉고... 화해라기 보다는... 늘 우리집은 제가 잘못했다고 해요ㅜ 보통은 제가 잘못하기도 하지만 경상도 상남자라 그래야 평화가 오는ㅋ 흑흑. 오늘 한국 출장 길에 엉덩이 토닥토닥 .. 당신은 우리집의 빛이야 그러니 항상 당당하렴.. 해줬더니 기분좋아서 갔어요 ㅎㅎ 에효 큰아들이 멀쩡해야 우리가 사니까요. 형제님 감사해요. 솔메님을 위한 중보기도를 내일 아침에 하겠어요.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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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은 부딪히는 모양이예요. 전 지금 애들 크는 모습을 보면 자라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래 지금 시기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야해, 하고 마음을 다잡게 돼요. 늘 제 시간에 목말라도 아이들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아기를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되죠.
신랑분도 북키퍼님이 자신을 그리워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는지 마음 깊은 곳에선 느끼고 있을 거예요.

큰 아들 대하듯 하시는 건 참 현명한 방법입니다. 남자는 다 커도 때때로 못난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모성이 그리운 법이거든요ㅋㅋ
절 위해 기도해주신다니 든든합니다.ㅎ 오늘 하루도 북키퍼님 덕에 감사하며 지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벌써 6회군요, 2회부터 언능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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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각기 독립적인 부분도 있으니 각 편만 봐도 이해하시는데 무리는 없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