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슈퍼히어로 무비를 보는가

in #kr7 years ago

여는 글

나는 슈퍼히어로 무비를 보아도 액션의 화려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루함을 느끼는 쪽이다. 고질적인 텍스트 중독이 문제일까?

혹자는 그럼에도 네가 슈퍼히어로 무비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을 것이다. 슈퍼히어로 무비에서 액션을 빼놓을 수 없는건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배우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움직임, 자연스레 녹아든 CG 말고도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 요소들이 액션과 어우러져 영웅들의 투쟁이 단순한 액션 시퀀스의 집합이 아니도록 한다.

대상이 초인이기에 가능한 관점

슈퍼히어로 무비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그들이 현실에 없는 존재이기에 독특한 관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술, 기계, 돌연변이 등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현실의 인간과 다름은 물론이다. 이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의 생애 전반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그 생애를 토대로 '나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곱씹으며 감상할 수 있다.

이들의 사고와 행동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고와 행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전과자가 아동을 납치했다. 납치 장면이 CCTV에 녹화 되었으며 증인도 다수 있어 범인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행적이 끊기고 경찰은 단서를 찾지 못 하고 있다. 아동 납치는 조금만 구출이 늦어져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
납치범에게는 동생이 있었고, 동생은 형의 행적에 대해 짐작하는 바가 있다. 그 동생은 범행에 동조한 것도 아니며 형에게 직접적으로 범행에 대해 들은 것도 아니다. 이 경우 동생은 범법자가 아니며 진술할 의무도 없다.
정의감 넘치는 경찰 하나가 동생을 협박한다. 폭력까지 동원한 결과, 동생은 짐작가는 형의 행방을 이야기한다. 납치범인 형을 체포하고 아이를 무사히 구출한다.
경찰은 법을 어겼지만 시민 전체가 나서서 이를 옹호하며 영웅 대접을 한다. 경찰은 형식적인 가벼운 징계만 받는다.

흔할 이야기다. 관객들은 동생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납치범이 체포되는 것이 통쾌하며,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껴안는 부모를 보며 감동한다.

하지만 경찰 자리에 초인을 넣어보자. 납치범으로부터 아동을 구해낸 영웅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초인이라 하여 법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초인들의 자경 활동이 주는 불안함에 대해서는 유명한 구호도 있다.
Who_Watches_the_Watchmen.jpg

누가 감시하는 자를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 - 왓치맨(Watchmen)

하지만 또 다른 해답을 찾지 못 했을 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아서 인명피해가 난다면 자타칭 영웅들이 느낄 좌절감이 어떠할까. '내가 영웅이라면'은 항상 재미를 주는 시각이다.

그들 또한 인간이다

왓치맨의 닥터 맨하튼(Dr. Manhattan)과 같은 특수한 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초인들은 이중생활을 한다. 평범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영웅으로서의 삶 사이의 갈등 또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혹은 닥터 맨하튼처럼 개인의 삶 자체가 없어진, 초인으로서의 삶만 남은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두개의 삶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그저 개인으로서의 갈등이 테마가 되는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에서는 마지막 갈등의 주체가 아이언맨이 아니라 부모를 잃은 토니 스타크였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다른 분들이 이 영화를 많이 소개하시기에 나도 한마디 거들고자 시작한 글이 이렇게 돌아왔다.

앞서 말했지만 인물들의 삶에 나 자신을 이입해서 사고와 행동에 대해 지켜보는게 슈퍼히어로 무비를 보는 관점인만큼, 나는 마블의 유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소한 유머는 좋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도 터져나오는 농담과 슬랩스틱은 이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담백했다.

본 영화는 초인의 두가지 삶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다. 두가지 삶을 분리해서 살아야함에도, 한가지 삶이 다른 삶에 지장을 준다. 마블 유니버스의 다른 영웅들의 솔로무비에서는 크게 다루지 못 한 문제다.

맺는 글

이야기를 하다보니 슈퍼히어로 무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판타지, SF, 액션, 영화 및 만화를 그저 아동용 상업작품으로 여기는 시각에 대해, 한번 물러나서 지켜보면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에 가깝게 되어버렸네요.

막상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아직 보지 않은 관객 분들도 계셔서 함부로 말을 하기가 힘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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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슈퍼히어로 본연의 능력에 포커스를 항상 맞췄지만 요즘에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사실 인기 있는 그래픽 노블들이 능력보다 플롯의 짜임새, 메세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걸 생각하면 영화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야겠죠.

본문에서도 언급한 왓치맨, 브이 포 벤데타, 다크나이트 리턴즈, 올스타 슈퍼맨, 최근에 크게 인기를 끄는 사가까지 보면 화려함보다는 스토리텔링과 메세지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물론 스크린에선 흥행과 평이 정비례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이런 명작들을 기대하는건 조금 욕심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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