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를 ‘벗’ 삼아 달리기-한 편의 나만의 영화

in kr •  19 days ago

빗방울 대문.jpg

그저께 겪은 이야기인데 이제 올립니다. 당시에 조금 흥분이 되었거든요. 이럴 때는 약간 뜸을 들이는 글쓰기가 좋은 거 같습니다.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의 폭을 넓히고 싶거든요.

어둑한 새벽에 일어났는데 천둥과 번개가 엄청 납니다. 가볍게 절 운동으로 몸을 푸는 데 안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네요. 올 들어 제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비 맞으며 달리기. 몇 번 해보았는데 갈수록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이 날은 또 다른 상황입니다. 어둠과 번개 그리고 천둥. 마치 게임으로 치면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하겠습니다. 똑같은 조건보다 더 새로운, 더 어려운 조건이 주는 매력이라는 게 마약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달려보곤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지난번에 올린 글(장맛비를 맞으며 달리기)에 달린 댓글이 두 가지 반응으로 크게 나뉘더군요. 하나는 감기 조심하라. 또 하나는 멋지다. 감기는 면역력이 핵심이라 두려울 게 전혀 못됩니다. 자랑같지만 저는 감기 걸려 본 지가 10년도 더 된 거 같아요. 여름에 땀 흘리지 않고, 냉방기에 의존할 때 오히려 감기가 드는 거지요. 때문에 이번에는 더 멋지게 달리고 싶은 욕구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도 없지 않습니다. 벼락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절을 하면서 잔머리를 굴려봅니다. 얼마나 먼 곳에서 벼락이 치는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운 바에 따르면 소리는 일 초에 340미터를 갑니다. 번개는 빛의 속도입니다. 번개가 번쩍! 마음으로 시간을 헤아립니다. 하나, 둘....여러 번 헤아려 보았지만 대부분 열을 넘어가네요. 그렇다면 지금 있는 곳에서 최소한 3키로 미터 이상 되는, 허공 어딘가에서 치는 셈입니다.

설마 벼락이 내게 떨어지기야 할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벼락을 맞는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미소가 번집니다. 자연과 온전히 하나 된 마무리! 아마 뉴스에도 나오겠지요? 근데 정말 가까이에서 벼락이 치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절대 문밖을 나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날은 제법 먼 거리에서 치는, 순한(?) 번개입니다.

옷을 최소한만 걸치고, 그 위에 비옷을 입은 다음 집을 나섭니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는 정도. 아직 둘레가 어두워 번개가 치면 굉장합니다. 대낮보다 더 밝다고 해야겠습니다.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지니까요. 번개가 치면 역시나 마음으로 숫자를 헤아립니다. 번쩍! 하나, 둘, 셋....쿠르르르쿵....

이 때 번개와 천둥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벗입니다. 빗속을 달리는 나를 응원해주는 벗. 내게 영화를 찍으라고 부추기는 영화감독입니다. 조명을 켜주고, 소리를 들려주는 연출가입니다. 밤에 치는 번개 연출은 자연만이 해낼 수 있는 무대입니다. 위대하고, 장엄합니다.

덕분에 영화를 한 편 찍었습니다. 제 마음 속 영화. 출연료는 한 푼도 없습니다. 다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과 자신감을 받은 셈이다. 천둥과 번개를 ‘벗’ 삼아 달리기. 이를 언젠가는 동영상으로 찍어, 진짜 영화로 편집해보고 싶습니다. 어둠, 억수같은 비, 번개, 천둥, 강물, 길, 산, 강, 사람, 숨소리, 출렁이는 마음 소리...

여러분도 한번쯤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자신만의 영화’를 찍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제 0회 짱짱맨배 42일장] 1주차 보상글을 발표합니다.(계속 리스팅 할 예정)
https://steemit.com/kr/@virus707/3vcp7h-0-42-1
현재 1주차보상글이 6개가 리스팅되었네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

짱짱맨 화이팅!

언젠가 천둥과 번개를 벗삼아 달리는 남자를 어느 영화에서 꼭 보고싶습니다. ^^ 자신만의 영화라... 뭔가 곰곰히 되내이게 됩니다. ㅎ

·

저는 영화 볼 때면
나도 영화 한 편 찍고 싶다는 로망을 갖곤 하거든요^^

얼마전에 비오는 날 모내기 하시던 분이 번개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번개치는 날 달리기.... 안 됩니다.ㅜㅜ
게다가 새벽에 대낮처럼 환하게 치는 번개 속에서 비옷을 입고 달리기를 한다...
왠지 공포영화같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그래도....

사실 전 눈오는 날 달리는 걸 좋아하긴 했었습니다.^^

·

낭만이 있는 공포영화^^
벼락이 칠 때는 위험하지만
먼 곳에서 치는 번개 정도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아마 그 농부는 벼락 칠 때
일을 하신 모양입니다.

눈 맞으며 달리기는
낭만 그 자체네요

그맛에 사는거죠.
몸이 허락하는걸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아는것.......
비오는 날 달리거나 등산을 하거나 하는건 몸이 가능하기에 즐거운거죠. 몸도 그걸 아는거죠. ㅎㅎ

·

맞아요.
몸이 압니다^^

아니 조심하셔야죠.. 번개가 사람 가린다는 말은 못들어봤어요...

·

번개는 공평하지요.
벼락이 불공평하고 ㅎ

와우! 이렇게 용기있는 분이셨군요!!!!! ㅎㅎㅎ

·

달리기도 용기에 드나요 ㅎㅎ

저도 감기를 앓아본게 언제인가 싶습니다. 파이팅입니다.^^

·

개털님도 자기 관리를 잘 하시잖아요^^

아이쿠 번개 치는데 그러지면 우짭니꽈?
정말 큰 일 납니다.

확률은 떨어지지만 맞으면 그냥 갑니다.
다음 부터는 영화 찍지 마시기를...^^

·

다음에는
당연히 다른 영화를 찍어야지요^^

자연과 친구가되셨어요..?! ㅋㅋㅋ 굉장하십니다.. 비맞으면서 달려보기..저도한번 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한번 해보세요. 그 나름 신선하고 좋습니다

모험을 즐기시는군요 ㅡ.ㅡ
마님도 생각하심이!

·

아내도 함께 뛰자고 꼬시는 중입니다.^^

번개 칠 땐 조심해야죠. 영화는 영화일 뿐 ㅎㅎ

가끔 무료할 땐 천둥번개가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이번 장마엔 아직 아직 번개가 없네요.

·

벼락이 무섭지
번개는 가슴 울리는 그 무엇입니다.ㅎㅎ

뜨겁게
살아있음을 느껴
그래
그렇게 살아야지
살아있음을 느끼며

·

역시 후님이 본질을 잘 짚어주셨네요^^
고마워요

재미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와~ 생각만 해도 아찔 아찔 합니다.

·

마음이 쫄깃쫄깃^^

순한 번개.. 뭔가 표현이 참신해요ㅎㅎ
영화 한편 찍고 만족하셨다지만! 그래도 조심하세요!! ㅠㅠ
팔로우 하고 갈게요! :) 제 글도 보러 와주세요!!

·

고맙습니다.
종종 뵈요

저도 그 기분 알거 같습니다. 저는 밭에서 비맞으면서 번개칠때 그런 기분 느꼈습니다. 약간의 공포심과 비냄새와 잡초 제거할때 나오는 향긋한 냄새, 촉촉한 흙냄새는 너무 좋습니다. 물론 비가 막 퍼부으면 포기하지만요.

·

적당한 공포가 삶을 긴장시키나봐요.

천둥 칠 때 달려본 적은 없지만 날구지하느라 빗속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해본 적은 꽤 있죠. 산성비니, 머리 빠진다느니 성화긴 해도 어러서부터 우산 쓰고 비를 피하기보단 워낙 비 맞는 것에 익숙하긴 합니다.

그래도 해도 뜨기 전 천둥, 번개 가운데 달리기는 엄청납니다. 또 멋지시네요.

·

요즘 아이들 때문에 더 유난한 거 같아요.
말씀 하신 대로
우리 자랄 때는 그냥 비를 맞는 게
자연스러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