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아는 오이 맛-순간을 영원으로(#52)

올 여름 더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열사병이나 탈진 같은 온열 질환이 부쩍 늘어납니다.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번질 지도 모른다는 뉴스까지 나오더군요.

그럴수록 면역력을 키워야겠습니다.

무더위를 달게 먹고 잘 자라는 여름 채소 가운데 하나가 오이. 이를 즐겨먹는 철입니다. 오이 냉국, 오이 무침, 오이 소박이... 저희는 풋 오이를 그냥 쌈장에 찍어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비밀. 오이도 품종이 다양하며, 열매가 열리는 데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을 모르고 열리는 오이가 있는 반면 사랑을 해서 열리는 오이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오이는 ‘단위결과성’이 높은 작물입니다. 수정을 하지 않고도 열매가 달리는 걸 단위결과성이라고 합니다. 사람 기준으로 생산성만을 높이기 위해서 수정 과정을 건너뜁니다. 수꽃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오이는 열매를 한결 많이 달게 됩니다. 수꽃으로 가는 영양분마저 다 열매로 보낼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개량오이는 암꽃만 핍니다. 이런 오이는 나중에 늙어서, 노각이 되어도 굵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둘 가운데 가는 게 개량오이입니다.

달걀에도 무정란, 유정란이 있듯이 오이도 그렇습니다.

토종오이는 암꽃이 피기 전에 수꽃이 먼저 핍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수꽃이 핀 다음 그제야 암꽃이 나옵니다.(자세한 건 아래 저희가 만든 동영상을 참조) 암꽃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깁니다. 수정이 되면 열매는 길이도 조금 길어지지만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몸집을 통통하게 불립니다. 사람으로 치면 임신한 배가 됩니다. 그 이유는 과육 안에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육들은 나중에 씨앗한테 거름이 되는 거지요. 이 오이는 늙으면 사진에 보듯이 몸집이 엄청 통통하게 바뀝니다. 이 노각은 맛도 좋습니다.

사랑은 아는 오이와 사랑을 해보지도 못한 오이는 맛부터 다릅니다.

토종오이는 조금 구수하면서 뒷맛이 깔끔합니다. 맛이 깊습니다. 토종오이는 한살림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식구가 이를 교육용으로 만든 게 있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링크합니다.

오이는 이 무더위를 달게 받아, 열심히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무더위를 무작정 피할 게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여 열린 열매를 맛나게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