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rt][단편 소설1/2] 공포의 예수상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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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은 외동 아들인 날 데리고 시골로 내려와 작은 교회를 설립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종교인으로 사시며 목사가 되길 희망하셨는데 그 꿈을 존중한 고향 친구 한 분이 선뜻 건물 한 채를 헐값에 넘긴 것이었다. 아버지는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교회로 바꿨고 그렇게 목사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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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형편이 좋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교회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조부모님 시절부터 정을 주고받던 고향 주민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셔서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이웃들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늘 최선을 다하셨고 마을에 큰 행사가 있거나 궂은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노력으로 교회는 마을 사람의 모임 장소로 자리를 잡아갔다. 교회 강당은 마을 대표 행사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들러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아버지는 신앙을 권유하거나 전파하지 않았다. 예배 시간에는 누구보다 진중했지만 예배가 끝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주민들과 걸판지게 술과 풍류를 즐겼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짓궂은 농담으로 당신의 신앙심을 조롱했지만 아버지는 재치로 맞받아칠 뿐,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당신의 철칙은 교회 밖에서 절대 주님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종교인, 비종교인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야 말로 미움과 증오를 낳는 악의 중심축이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오직 사랑만이 아버지가 믿는 유일한 구원이자 정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두고 ‘개똥 목사’라고 놀렸지만 다들 당신의 엉뚱함을 인정하고 존중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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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정이 조금 나아지자 아버지는 교회 마당에 예수상을 하나 세우셨다. 이름도 없는 시공사에 주문한 무척 저렴한 석상이었다. 신앙은 소박해야 한다는 당신의 철학에 따른 결정이기도 했지만 사실 여윳돈이 넉넉치 않은 교회 사정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제작비가 너무 싼 거 아니나며 되려 걱정하셨지만 정작 설립된 예수상은 나무랄 곳 하나 없이 웅장하기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참 잘생긴 예수를 골랐다며 칭찬으로 아버지의 기를 세워주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석상 표면에 부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해당 시공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당황스럽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시공사는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하릴없이 다른 시공사에 복원을 의뢰했지만 묘하게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재질이 뭔지 모르겠어요. 뭔지 몰라도 보통 싸구려가 아닌가 봐요.”

비용을 아끼려다가 된통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며칠 내내 예수상을 보며 땅이 꺼져라한숨만 내쉬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동네 주민들은 새 석상을 세우라며 비용을 모아줬지만 아버지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부담스러운 선의였다. 게다가 당신이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르고 직접 설립한 첫 번째 예수상이었다. 그런 석상을 못생겼다고 철거해버리자니 영 마음이 께름칙하다

끝내 아버지는 예수상을 그냥 두셨다. 그렇게 애물단지 예수상은 교회 마당 한 가운데서 꾸준히 부식되어 갔다. 사람들은 그런 석상을 못난이 예수라고 부르며 웃음거리 취급했지만 석상에서 느껴지는 묘한 측은함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새 다들 못난이 예수상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종교쟁이들이 말하는 그 뭐시기... 영적 체험 뭐 그런 거 아니여?”

누군가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것을 계기로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종교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렇게 예배 참여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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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는 더 이상 평범한 마을회관 대용 장소가 아니었다. 신을 영접하는 신전이자 성스러운 성지였다. 신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강론에 집중했고 예배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올바른 교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자문했다. 교인들의 열정은 하루가 다르게 불타올랐고 아버지는 그에 응답하고자 더욱 열심히 주님의 말씀을 설파했다. 덩달아 교회 수입도 늘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눈덩이처러 불어나는 헌금을 관리하기 위해 따로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교회에 돈이 모이자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했다. 교인들 사이에 오해가 생겼고 의심이 싹텄다. 마을 사람들은 전에 없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더 열심히 종교에 매달렸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교회에서 웃고 떠들지 않았다. 신자들의 절실한 기도 소리만 예배당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이제 그 예수상은 ‘예수상’이라는 명칭이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부식되어 조악한 돌 덩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얼굴은 형체가 남아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코입 등 얼굴 구성 요소가 연상되었는데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그 얼굴을 살피고 그 안에 저마다의 종교적 감흥과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 보이는 예수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흉측했다. 오직 내 눈에만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예수상을 폄하하는 내 태도에 사람들은 차갑게 정색했고 왜 그렇게 느끼냐며 이유를 추궁했지만 내 대답은 늘 궁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무서웠다. 그냥 무섭고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하고 소스라치게 혐오스러웠다. 과연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공포를 그보다 더 자세히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나는 이러한 마음의 혼란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신앙심을 나무라시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의외였다. 목사의 아들이 예배에 불참하면 당신 꼴이 뭐가 되겠냐는 힐난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반항심을 꾹 참고 아버지의 뜻을 존중했다. 아버지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든 게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아들로서의 올바른 처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배를 자주 빼먹은 이유는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예배 참여가 종교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신앙인이었다. 내 마음 속에 신앙심이라는 보물이 있다는 걸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에 큰 위안이자 안식이었다. 주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일종의 특권의식은 묘한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버지와 교회 신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무시했다.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중했다. 적어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내 불만과 의심이 무지에서 발생한 것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나로 인해 아버지가 곤란해지는 일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착한 아들이 되어 당신이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언젠가 아버지처럼 존중받는 신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오직 단 한 가지였다.

그 빌어먹을 좇같은 예수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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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상이 정말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내가 느낀 공포는 항상 여과없이 행동과 표정으로 드러났고, 사람들은 그런 나의 나약함에 힘을 실어주고자 내 손을 꼭 쥐어잡고 더 큰 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근원적으로 파괴했다. 이제는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생각을 하든 눈을 감을 때마다 예수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수는 밤마다 내 꿈에 스며들어 마음의 뿌리를 잡고 흔들었고, 그러면 통제를 벗어난 상상력이 망상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어 내 영혼을 지리멸렬하게 고문했다.

나는 집을 뛰처나와 연고가 없는 먼 지역으로 도망쳤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죽여버리기 전에 나는 그곳에서 뛰쳐나와야 했다.















[2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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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만 남은 마을 주민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예수상 철거 반대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법적인 대규모 철거 작업을 막기에는 애초에 역부족이었다.

인부들이 트럭에 연결된 쇠사슬로 치렁치렁 예수상을 묶었다. 트럭 바퀴가 돌자 마을 사람들이 가축 같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발성 한도를 넘어선 통곡이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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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먼가 광기어린 설정 좋아요 ^^

맙소사... 아무도 안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적이.. ㅎㅎ 감사합니다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
에수님은 보이지 않기시작합니다.
그리고 일치에서 분열로 이어지는 롤러코스의 행진...

팔로우 &보팅합니다.

긴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큰 힘이 되네여~

안녕하세요 작가님
세계일주 프로노숙자, #kr-art 큐레이터 @rbaggo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그림 보여주세요 :D 감사합니다!


[#kr-art] 르바 미술관 7회차에 작가님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포스팅 저자수익(SBD)는 Pay out 후, 그림을 전시한 작가님 수대로 분배해 송금의 방식으로 지원금이 지급됩니다.

매일 한국 시간 기준 저녁 7시에 올라오는 [오늘의 금손을 소개합니다] kr-art 큐레이팅 최신 포스트에 그림의 제목과 링크 그리고 작가명을 남겨주시면, 그 다음날 소개되며, 이 또한 저자수익(SBD)의 60%를 배분해 작가님들의 지원금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게시된 그림 중 1점을 매주 일요일마다 게시하는 전시회 '르바미술관'에 포함하게 됩니다.

p.s 큐레이팅 포스트에 그림을 넣어 소개해도 괜찮으신지 답변은 큐레이팅 포스트에 링크 남기실 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참여햇어요 ㅎㅎ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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