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 jjy의샘이 깊은 물

in #kr7 years ago

대문.png

오! 머피데이 @jjy

억지로 짬을 낸 모처럼의 여행은 날씨부터 훼방을 놓았다. 출발을 하면서부터 지각생을 기다리고 독감으로 목이 잠긴 인솔자의 진행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일정이 늦어진 관계로 휴게소를 들리지 못하고 논스톱으로 달린다. 희미한 햇빛을 쪼이고 서있는 성벽을 돌아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려 갯내음으로 출렁이는 포구에 도착해 허름한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상차림이 되어 있는 자리로 안내한다.

컨디션이 좋으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가 좋겠지만 제일 구석진 모퉁이를 골라 등을 기댄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여행지에서는 현지의 향토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있어 기대를 했지만 막상 별미라는 간재미젓국이야 입에 설어 그렇다 치더라도 반찬도 성의가 없고 밥은 색깔부터 누르스름하니 수저를 들고 싶은 생각을 밀쳐 버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슬그머니 빠져나와 식당에 비치된 커피를 뽑으니 그나마 맹물이다. 종업원에게 얘기를 하니 기계를 열고 커피를 뜯어 채우고 버튼을 누르며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깜빡이는 불이 꺼지기를 기다려 뽑은 종이컵에는 또 맹물이 나온다. 다시 한 번 시도를 했으나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말간 물만 나오는 바람에 기계 앞에 뜨거운 물만 몇 잔을 늘어놓고 말았다. 그냥 포기하려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필요할 것 같아 다시 얘기를 하니 그제야 다시 손을 보고 커피를 뽑아준다. 한 참을 서서 기다린 끝에 손에 쥔 커피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양보하고 다시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도 웃으며 내미는 손이 있어 몇 차례를 건네주고 겨우 한 잔을 들고 멀리 방파제를 바라보며 잠시 걸어볼까 했으나 호출이다.

줄을 지어 유람선 승선을 하고 갑판으로 나갔으나 바람이 심해 선실로 들어가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대기 중에 이런저런 사고에 대응하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순간 구명조끼 있는 위치로 눈이 간다. 물론 구명조끼를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매연은 비위를 상하게 할 정도로 불쾌했다.

한참 바닷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국립 해상공원 옹도였다. 조그만 섬은 봄으로 가득했다. 노약자들도 다니기 좋게 계단은 가파르지 않았고 나무로 되어 있어 무리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기껏 조성한 동백터널에서 동백나무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미처 손이 가지 못해 그렇겠지만 잡목이 우거져 동백나무는 숨어서 겨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등대를 바라보며 올라가자니 음악이 들린다. 귀에 익은 옛 시인의 노래가 똑같은 소절을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가꾸지 못한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그래도 고운 물빛을 보여준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고 웃어도 보고 다시 시간을 맞춰 선착장에서 기다리는 유람선을 타고 다도해를 돌아보면서 환성을 지른다. 세월이 깎은 조각품을 감상하며 사진으로 남기느라 미세먼지 속에서 웃고 떠들면서 다시 떠나갔던 항구로 돌아왔다.

삼대가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꽃지 일몰을 보기 위해 시간을 맞추려 주변에 있는 노점에 들러볼 겨를 도 없이 이동해 예약된 식당에서 바가지를 쓴 저녁식사부터 하고 나오자 어느결에 붉은 햇덩이가 바다로 내려온다. 우리는 그 해를 잡기라도 할 것처럼 바삐 걸었으나 탐스런 해를 순식간에 해무가 삼키고 말았다. 실망한 우리에게 꽃지 일몰은 일 년에 한 두 번 밖에 못 보고 그것도 물때를 잘 맞추고 날이 좋아야 한다고 한다. 그냥 저냥 갯벌에서 잠시 갈매기 소리를 듣는처럼 하다 돌아왔다.

지루한 길을 달려 아침에 출발한 곳에서 헤어져 집으로 오려는데 이번에는 카풀 한 사람이 차키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얼마를 허둥지둥 하며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하다 차 안을 들여다보니 어이없게도 운전석에 있었다. 늦은 시간에 무거운 몸으로 돌아왔지만 별 탈 없이 다녀왔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싶어 마음에는 해피엔딩이라고 기록한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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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꽃지 일몰을 기대할 수 있어 여백의 미가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멀리 계시지만
언젠가는 만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꽃지를 좋아합니다.
다만 목표가 아니고
다녀오는 것이 목표이지요.
꽃지를 향해 출발 하면서 즐거움이 시작되고
돌아오며 아쉬움이 남습니다.

좋은 곳에 다녀 오셨네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D

출렁이지 않아도
하루에 지친 해에게 충분한 안식을 주는 곳
꽃지 일몰이 주는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드려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D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마음에 오래까지 남는 풍경
wjdgurtkd8님도 평안한 밤 되세요.

삼대가 적선해야 볼 수 있다는 건 꽃지 일몰, 어떨지 궁금하네요.
저도 자손들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적선(? 기부?)을 생활화해야할지.. ^^;;

정말 아름다워요.
대신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맨하탄 핸지 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제 설명이 무슨 소용에 닿기나 한답니까
아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다릴 것입니다.
찾아 주시는 날에

평안한 밤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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