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인터뷰#15] 구두방의 철학자

in #kr6 years ago (edited)


(한창 공사중인 부산역 광장)

샤인: 출장 자주 댕시시는 갑네요...

쟈니: ...? 네?

샤인: 출장 가시는거 아입니꺼?

쟈니: 아...아뇨...

그러고 보니 작년부터 부산엘 자주 내려 왔다.
운전하기도 피곤하고, 일 마치고 올라갈 때, 눈이라도 좀 붙일겸
해서 기차를 이용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구두를 닦곤 했었다.
공사중인 부산역 광장 옆, 건물 입구와도 가깝고 해서, 매번 여길
왔었나보다. 내 구두를 깨끗하고 광이 나게 잘 닦아주시던 분...
일명 슈샤인 아저씨..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역전에서 구두를 만지는 일을
하며, 종종들른 내가 낯이 익은지, 출장을 자주 다니는 줄 알고
그렇게 인사말을 건내왔다.

쟈니: 그런데 어떻게 절 기억 하십니까? 조용히 구두만 닦고 갔는데..

샤인: 구두보고 안거지요.

쟈니: 예? 구두요?

샤인: 구두 닦다보면, 사람 얼굴은 몰라도 구두는 압니다.

쟈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루에도 수십 켤레씩 닦으실텐데,
그걸 다 기억 하신다구요?

샤인: 하하하 제가 천재도 아이고, 어찌 그걸 다 기억 하겠습니꺼.
몇 번 오시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억 됩니더...
구두도 주인 닮아서, 걸음걸이에 따라 주름도 다르고, 굽 닳는 것도
다 다릅니다. 구두 보니까나, 걸음걸이가 바르시네예...

쟈니: (머슥) 하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 해 주시니까 기분
좋습니다. 일부러 칭찬 해주시는거 아닌가요? ^^

샤인: 아이고...저는 그런거 몬합니데이...구두 만지는게 일이다보이,
잘 생긴 구두 보면 저도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거지예.
신다 보믄 더러버 지는게 당연한 구두지만, 예쁘게 늙어가는 구두보면,
기분 좋다 아입니꺼.

예쁘게 늙어가는 구두...

솔직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임팩트가 강했는지,
잊혀지지 않고, 오랜 여운으로 귓전을 맴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구두도 꽤 오래 신었다.
TV 홈쇼핑에서 세 켤레 10만원하는 걸, 5년 전쯤에 구매했고,
아직 튼튼하고, 발에도 잘 맞아서, 여태 잘 신고 다니고 있다.
그런 구두가 예쁘게 늙어가고 있다니, 다행이다. ^^

다른 구두와 번갈아 가며 신긴 하지만, 계절 상관없이, 늘 함께한
이 구두에, 딱히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말 한 마디에
닦이고 있는 내 까만 구두를 유심히 쳐다 보게 되었다.

그의 날렵한 손놀림에, 때가 벗겨지고, 점점 광이 나는 구두...
역시나 손길이 닿고, 가꿔주니 빛이 난다.

쟈니: 역 앞이라 손님들이 꽤 많이 오시겠네요?

샤인: 그때 그때 다릅니더. 날씨도 타고, 계절도 타고...
근처에 예식장이 많아서, 주말에 많이 오시는데, 겨울에는 영....
이것도 경기탑니데이... 한진(해운) 문 닫아뿌고 나서는 근처
사무실들도 많이 없어지고, 예전 같지 않네예..
목욕탕에서 구두 닦으시는 분들도 많고, 요새 젊은 사람들은,
마트에서 파는 구두약 사서 직접 닦고 하니까, 예전에 비하면 손님
많이 줄어 들었지예...

쟈니: 입구 옆에 간판 보니까 금이빨도 산다고 적혀있던데...

샤인: 와예? 파실 금 이빨 있습니꺼? 하하하

쟈니: ㅋㅋㅋㅋ 빼기 무서워서 안팔랍니다. ㅎㅎㅎ


(씹어먹진 않을께...금니있으면 팔아..)

샤인: 구두도 닦고, 수선도 하고, 금니도 사고...그랍니다.
경기 좋다는 이야기도 우리같은 사람들 한테는 남 이야기고,
뭐라도 돈벌이가 되면 가릴 처지가 아니다 보니, 그래 됐네예.

쟈니: 그러고 보니, 저도 그렇네요... 씁쓸합니다...쩝.
나름 서비스업이신데, 힘드신 건 없습니까?

샤인: 뭐 유달리 힘들게 있겠습니까. 사는거 자체가 힘든긴데...
구두를 닦던, 닦은 구두를 신고 큰 일을 하시던, 누구나 다 힘든
사연 하나씩 안고 사는 거 아이겠십니꺼...

쟈니: 우문현답이십니다...ㅎㅎㅎ

샤인: 요게가 부산역 아입니까...노숙자들이 많지예...
우짜다가 저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힘들다면 저 사람들이 진짜
힘들낍니다. 처음부터 저러진 않았을낀데, 꿈도 희망도 없이,
그냥 포기하고 주저 앉으면, 그게 진짜 힘든기라예...

저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할라고 덤벼들면,
이렇게라도 밥벌이는 하는데, 저 사람들은 그게 안되니 힘들지예.
돈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라, 마음, 정신적으로 크게 상처받고,
의욕도 없고, 의지도 없고, 그냥 주저 앉아 퍼져뿌믄....(한숨)

죽었는지 살았는지, 한번씩 119에 실려가는 노숙자들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더... 힘들다면, 그런걸 가까이서 보는기
힘들지예 뭐...

예나 지금이나, 젊으나 늙으나 안 힘든게 뭐가 있겠습니꺼...
사람 살아가는데 힘든게 껴있으니까 행복한게 더 빛나지예..

이 구두도, 금이야 옥이야 주름 하나 없이 잘 만들어 져서
태어나가꼬, 어느날 주인 만나서 세상 돌아댕기다 보믄,
주름도 가고, 밑창도 닳고, 비도 맞고, 먼지도 뒤집어쓰고...
그라다가 이렇게 한번씩 삐까뻔쩍하게 광 나는 날이 있고...
사람사는 거랑 똑같지예...^^

구두 닦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손님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이 좁은데서 세상이야기 들어가미,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쟈니: 와...말씀하시는게 철학자 같으십니다...진심...

샤인: 철학자는 무신...하하하 제 기분좋으라고 하시는 겁니꺼? ^^

쟈니: 네~!!! (단호) 하하하. 기분 좋으시라고 하는거 맞고,
말씀도 잘 해 주시니까 당연히 그리 느껴져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샤인: 아이고야...구두 닦다가 철학자란 소리도 다 들어보네예...하하
오늘 이 구두 빤짝빤짝 하이 잘 닦인네...다 됐십니더. ^^

쟈니: 다음엔 제 구두 말고 저도 기억 해주시겠네요?

샤인: 자주 오시면야 당연히 기억하지예.


기차시간이 임박해서, 서둘러 나왔다.
3.000원에 반짝거리는 자태를 뿜어내던 내 구두...
어릴 적, 새 신발을 처음 신고 학교가던 기분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주름져도 예쁘게 늙어간다는게, 다문 구두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며 기차에 몸을 실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진심으로 애쓰는 삶...
그것이 결국 스스로를 빛나게 하리라...


멋진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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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구두 엄청 반짝 거리네요!!
철학자 슈샤인 아저씨... 멋지시네요~~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않거나 둘중에 하난데.. 그 선택이 참 어려운 삶이예요.
쟈니님... 사진 속 반짝이는 구두처럼 오늘 하루도 반짝반짝하세요!!

깜빡깜빡 말구요~ 반짝반짝~

원하고 바라는 좋은일은 절대 포기 하지 않는걸로 하십시다요~ ^^
길마님의 하루하루도 반짝반짝 빛나시길 바랍니다~ ^^

오늘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쟈니님의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두도, 금이야 옥이야 주름 하나 없이 잘 만들어 져서
태어나가꼬, 어느날 주인 만나서 세상 돌아댕기다 보믄,
주름도 가고, 밑창도 닳고, 비도 맞고, 먼지도 뒤집어쓰고...
그라다가 이렇게 한번씩 삐까뻔쩍하게 광 나는 날이 있고...
사람사는 거랑 똑같지예...^^

이 부분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져 오더라고요... 비맞는 날도 있고, 또 광나는 날도 있고,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우리 인생과 같다는 말이 참 좋네요 ㅎㅎ

그날은 친지분 상을 마치고 올라가는 날이었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진짜 밥이라도 한끼 같이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좀 더 사고 싶을 정도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보이는게 많은가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많큼 또 알게 된다는 말이 생각 나네요.

힘든게 껴있으니 행복이 빛난다는말이 되게 멋있는 말 같네요!!!👍🏻

글 잘.읽고 갑니다!!!좋은.하루되세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하루가 다 좋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기에 행복이나 기쁨이 더 빛을 발하나 봅니다^^

문 재인 대통령님이 노숙자분들좀 도와 주셨쓰면 좋겠써요 ㅜㅜ

유니님의 노숙자분들 도움활동에 제 스스로도 부끄러워집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재기의 기회가 있는 사회가 마련 되었으면 좋겠네요.^^

따뜻한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구두 굽이 닳는 형태가 주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거라고 하던데, 갑자기 구두에게 미안해 집니다. ㅠ
경기가 좋지 않아 희망을 잃은 분들께 괜히 숙연해 지네요..

한번의 실패로 인생도 실패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나쁜일을 하다가 실패 했다면, 죗값을 당연히 받아야겠지만, 옳은일을 하고도 재기의 기회가 없다면 참으로 힘들어 지니, 보다 더 나은 시스팀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의 발걸음
걸음자세 등등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예쁘게 늙어가는 구두라는 말이 참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이 느껴지네요
쟈니님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반님의 구두들과 신발들...예쁘게 늙어 가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
반님의 인생길, 반듯하게 살아가시는 듯 하니까요. ^^ 반님의 글로 많이 배웁니다. ^^

예쁘게 늙어가는 구두라 좋은 표현이네요 역시 삶의 구석구석 어느곳에서도 배우고 느낄수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반짝 구두 신고 오늘도 힘내세요^^

잠깐스쳐 가는 일상의 많은 분들께 참으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주노쌤과 스팀잇의 많은 분들 역시, 제겐 좋은 공부가 됩니다.^^

구두만 보고도 사람 성격까지 파악하시더라구요 ㅎㅎ
반질반질 새것처럼 만들어주시느 장인분들 덕에 오늘도 기분좋게 걸어봅니다 ㅎ

정말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역시 한 우물을 파신 분들만의 장인들은 대단하신 듯 합니다. 거기에 인생을 투영해 내고, 나름의 깨달음까지 해나가는 것을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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