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습니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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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드디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왔습니다. 보자, 보자, 꼭 보자, 볼거다 생각만 가득 행동으로 옮기진 않다가 무거운 엉덩이를 끌고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이 완전히 사그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책상 앞에 앉았어요.

영화관은 롯데시네마 잠실 월드타워점을 선택했습니다. 수퍼플렉스 G관이라고 하더군요. 처음 들었어요. 사실 롯데타워는 처음입니다. 지하철 타면 금방 가는 곳인데 왠지 무섭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몇 번 건물을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롯데타워를 보며 알 수 없는 거북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평생 가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영화 덕분에 가게된 겁니다. 아무래도 큰 상영관에서 보고 싶었거든요. 돌비 애트모스로 빵빵하게 울려퍼질 음향도 기대했구요.

원래 전 영화 후기를 잘 듣지 않는 편이에요. 심지어 예고편도 잘 보지 않아요. 영화를 선택할 땐 한 문단으로 간략히 정리된 설명글과 포스터만 참고합니다. 일단 스포를 당할 염려가 있지요. 제 평생의 한이 뭔지 아세요?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을 알아버린 상태로 봤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반전따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영화였지만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스포일러 만이 문제는 아니에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장면, 장면을 보아야 오롯이 제 감성이 살아나잖아요. 미리 어떤 장면이 좋아, 라고 후기를 들어버리면 영화를 보다가 몰입이 깨져요. 깊게 영화에 잠겨 있다가 현실로 끌려 나오는 기분입니다. 아, 이 장면이구나. 그 친구가 얘기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포 당할 염려도 없었죠. 그래서 부담없이 주변 지인들에게 영화 후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신기하게도 후기가 대략 두 분류로 나뉘더군요. (1) 퀸을 말로만 들었는데 (혹은 몰랐었는데) 이 노래도 퀸 노래였어? (2) 노래는 좋았는데 성정체성에 관련된 영화인 줄은 몰랐어.

아시다시피 퀸 노래는 광고에 많이 사용되었죠. Under Pressure나 Somebody to love, Don't stop me now, I was born to love you, 그리고 We will rock you 등등. 영화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 분들도 많을거에요. 앗, 이 노래 들어봤어! 어머, 이 노래도 얘네 꺼구나...

애초에 퀸을 몰랐던 분들은 프레디 머큐리란 리드 보컬의 존재도 몰랐을 거고, 동성애자란 사실도 몰랐겠죠. 그래서 그 사람이 동성애자였어? 라는 느낌보단 영화관에서 보기 거북한 장면이 나와서 놀랐다, 라는 감상평이 많더라구요. 참 슬픈 일입니다. 언제쯤 우린 있는 그대로 타인을 보게 될까요? 그냥 서로 끌리는 두 남자가 키스를 한 것 뿐인데.

영화는 잘 만든 다큐멘터리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없이 들었던 곡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저절로 들썩거리게 되더군요. 옆 사람한테 피해가 갈까봐 얼마나 꾹꾹 눌러담았는지. 시종일관 당당해보이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은 또 얼마나 보기 좋았는데요. 물론 외로움에 사무쳐 전등을 켰다 껐다 할 때는 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들은 그만큼의 슈퍼 스타는 아니지만 모두 그만큼의 외로움은 안고 살잖아요. 아쉽게도 제 방에는 줄을 당겨 끄는 전등이 없네요. 있었다면 저도 모르게 껐다, 켰다, 껐다, 켰다,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다른 한 손엔 술잔이 들려 있었겠죠. 제 경우엔 맥주였겠지만.

이쯤되면 흐름상 제일 좋았던 장면을 얘기해야할 타이밍인데 말이죠. Love of 'his' life가 창가에 나타나주길 바라며 전등을 켜고 끄던 슬픈 모습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나오던 장면도 기억나네요. 밴드 멤버들끼리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 베이스 리프가 나오자 "너가 작곡한거야? 좋네"라며 싸움을 멈추고 연습에 들어가던 장면. 프레디 머큐리가 가사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고 리듬을 타며 읽기 시작하죠. 전 그 순간이 정말 좋았어요. 날 것이지만 영혼이 담긴 듯한 느낌. 롹앤롤! 또 보고싶네요. 아쉬운대로 노래라도 한 번 더 들어야겠어요.

퀸 전곡을 반복 재생하면서 글을 쓰는 중이라 퀸 뽕에 거하게 취한 상태입니다. 글도 중구난방 정신이 없네요. 앞으로의 영화 리뷰도 이런 식이라면, 흐음. 상당히 걱정되는 걸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틀을 갖춰서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공개하는 건, 흠, 확실히 재미있어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도 적당히 재밌으셨으면 좋을텐데. 다시 한 번 '상당히 걱정되는 걸요?'

11시가 다 되어가니까 잘 준비를 해야겠어요. 추위를 뚫고 출근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요즘은 일어나면 아침 해도 아직 뜨지 않았던데, 이렇게 부지런히 살다가 일찍 죽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걱정 많은 오늘, 글 이만 마칠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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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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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도 롯데타워 한 번도 안가봤어요. 왠지 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있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라면 꼭 가야죠 +_+!
Jay님에게 제 영화리뷰는 참 위험하겠어요.스포 투성이라서; 저도 그다지 큰 정보 없이 감으로 영화 선택을 하고 가는 편인데 스포를 당해도 몇 번이고 영화를 봐도 질리지 않는 성격이라 괜찮지만 말이죠 ^^;

이번 년도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 같아요! 영화를 보고 퀸 노래에 푹 빠지고 프레디 생애를 탐독하게 되었죠.
인간적인 프레디의 모습이 좋았어요. 사랑과 외로움이요. 프레디를 꼭 안아주고 싶고 기억하고픈 영화였어요. 위대하고 멋지고 평범하고 외로워던 프레디.

Jay님 글 읽으니 다시 또 그 감정에 취하네요. 오늘은 다시 또 퀸 노래를 플레이해봐야겠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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