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별을 쫓는 해바라기 21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어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은 슬픔보다는 견딜 수 없는 허전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이상하게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다는 느낌만이 내 곁을 맴돌았다.

매장이 시작되기 직전에 시인 지망생 제민이 조시를 낭독했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로 시작되는 장문의 그 시가 낭독되자마자, 그때까지 야무지게 버티던 세영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면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던 남기도 등을 돌리고 울먹였다. 모두들 울먹이던 그 순간에도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끝내 형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 이제 모두 포기할 것처럼 보이는군."

운구차 옆자리에 앉아 담배만 피우던 강 형사가 먼저 말을 붙여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내 머릿속의 뇌를 완전히 덜어낸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절대 포기 안 해. 그건 자네 아버지처럼 윤도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야. 정말 윤도가 하려고 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오히려 도와주고 싶어. 어쩐지 윤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 하여튼 나는 계속 윤도와의 접촉을 시도하겠어."

나는 어느새 강 형사의 그런 우직한 면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오직 한 길에 모든 청춘을 바칠 수 있었겠지만...

"이제 정년퇴직도 얼마 안 남으셨죠?"

"며칠 후면 옷을 벗게 되는군. 그래도 이번 일은 포기 안 해. 애들 다 키워 놓았겠다. 이 나이에 마누라 엉덩이나 두드리며 방구들 신세나 질 수는 없지. 어차피 내가 시작한 일이니까, 내가 마무리 짓고 싶어. 국장님도 나의 이런 뜻을 알고 퇴직 후에도 끝까지 지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했어."

"저는 당분간 쉬면서 가게 일이나 전념하렵니다. 이상하게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지네요."

"그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지. 어쨌거나 자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테니까. 누구라도 갑작스럽게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지."

어머니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점심상을 들고 양희가 안방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모로 쓰러져 숨져 계셨던 것이다. 드시던 술상은 엎어져 있고, 술병에서 흘러나온 술이 어머니의 치마를 다 적시고 있었다고 양희는 말했다.

가엾은 어머니였다. 잘못 만난 남편 때문에 평생 고생하셨고, 장남도 남편을 닮아 사고나 치며 밖으로 나돌고, 나 또한 어머니께 전적으로 편안함을 안겨 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의지한 것이 술이라는 도피처였는지도 몰랐다.

"인간이 결국 마지막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은 탐닉적인 것일까요?"

내가 묻자, 강 형사는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실상 종교라는 것도 일종의 탐닉이 아닐까요? 술이나 마약과 같은..."

"..."

"베르가맹이라는 사람은 인생을 두 종류로 나누었답니다. 술을 먹고 잠드는 사람과 술을 먹고 깨어나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로 말이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죠. 전자에게는 알코올이 마취제가 되나, 후자에게는 흥분제가 된다고 말이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 술이 될 수도 있다고. 종교로 말미암아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잠에서 깨어나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이죠."

"하긴 같은 종교라도 인간에게 평화로운 안식을 주는 것이 있는 반면, 종교 때문에 파멸을 맞기도 하고 종교 때문에 전쟁이 나기도 하지."

"어떤 학자는 종교를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종교에 최고의 선을 부여하기도 했어요. 표현이 너무 직설적인 지 몰라도 탐닉적인 것만은 분명해요. 맛이 없다면 그 음식에 손을 안 대듯이, 종교라는 것도 인간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것이 있겠지요. 그 그런 것도 결국 인간의 탐닉하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

"그럼 윤도가 그런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죠. 사기라는 것도 일종의 인간들의 탐닉적이고 탐욕적인 본능을 자극함으로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말하자면 술이 마취제가 되느냐, 흥분제가 되느냐의 차이죠. 즉, 인간 개개인의 탐닉 정도의 차이라고 봐야죠."

"종교의 힘으로 잃어버린 생의 의욕을 찾는 반면에, 종교로 인해 가정파탄을 맞는 비극적인 경우도 보았어. 얼마 전인가? 부인의 광신적인 믿음 때문에 남편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고..."

"어떤 것이든 도를 지나치면 안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형이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종교 모임을 주관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세상과 유리되어 자기들만의 왕국을 세우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들이 소외되고 낙오되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부대끼며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게 참된 종교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형의 도피적인 사고방식을 비난하고 싶은 겁니다."

'도피적인 사고방식을 비난하고 싶은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난숙을 떠올리고 있었다. 스스로 그런 길을 자원해 간 여자.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열정 때문에 내 온 가슴을 새까맣게 태워버리는 여자. 나 또한 그녀로부터 도피적인 사랑을 해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비난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도.

"윤도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든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떤 범죄에 대해 비난하고 증오한다고 할지라도 범죄인 그 자체를 악마로 낙인찍을 수는 없다고 봐. 그가 다시 선량한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하지만 용서도 어느 정도라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나는 이 세상에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봐. 죄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목사님 같은 말씀만 계속 하시는 군요."

강 형사는 내 말에 히죽이 웃었다.

나도 그 말을 끝으로 강 형사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는 어느새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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