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티의 회의 시리즈] 1. 회의가 조직의 활력을 좌우한다.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회의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회의의 내용이 조직 구성원에게 소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회의에서 조직 구성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대신, "왜 회의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회의의 결정 사항과 자신을 분리하게 되고, 회의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뭔가를 풀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찜찜함이 남는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을 처리하는 느낌이 들어 일해도 힘이 나질 않고 일이 끝나도 만족감이 떨어진다.
그런 회의가 반복된다면, 그 원인을 똑바로 짚을 필요가 있다.
회의의 질을 좌우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회의 진행자이다.
회의 진행자가 회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경우에 60% 이상 차지하며, 회의 성격에 따라서는 90% 이상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무성의하게 회의를 준비하고, 관성에 의존해 회의를 진행하는 회의 진행자가 많다.
회의는 잘 준비된 예술 공연과 같아야 한다.
기획에서부터 회의 직전까지 예술 공연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정성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회의는 잘 준비된 예술 공연과 같이 구성원들에게 깨달음과 감동을 주고, 회의가 끝나도 여운이 가시지 않으며, 일하는 활력이 된다.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 조직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며, 조직 구성원들이 자각적으로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조직에 조직적으로 논의하고 집행하는 문화가 꽃핀다.
내 선배는 "회의만 잘해도 사업은 성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 성패에 있어 회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오랜 기간 휴학했던 그 선배는 어느 날 불쑥 복학하며, 학생회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회의 진행자가 아님에도 성심성의를 다해 문서를 만들어 회의 참가자에게 돌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는 "회의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학교이며, 민주주의의 장"이라는 신념을 전파하며, 사업 하나하나, 사람 한 명 한 명을 현장으로 끄집어내 회의를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선배의 등판으로 한 사람의 지혜와 노력이 조직의 힘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배웠다.
살아있는 회의가 가져다준 변화는 컸다.
학생회 간부들은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며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회의와 현장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체계적인 협업 체계가 갖춰졌다. 현장의 어려움은 회의에서 집단의 지혜로 풀었으며, 회의에서 토론하고 결정한 사안은 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구현되었다.
그럴 때면, 간부가 간부를 조직해 조직이 확대되고, 우리를 지지하는 학생회, 동아리, 개인 회원이 늘어 외연이 확대됐다.
하지만 일 년 내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업에 치여 회의를 소홀히 한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주변 사람들이 지쳐갔다. 사람이 떠나기도 하고, 원망을 사기도 했으며, 주관주의에 빠져 판단이 흐려지기도 했다. 정말 심각할 때는 조직이 위태로울 정도였다.
그 위태로움도 회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회의를 통해 어려움을 토로하며 반성했고, 지쳤던 사람들이 다시 힘을 냈다.
이렇듯 조직에서 회의가 차지하는 위치가 큼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어느덧 회의라는 것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일정한 형식으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기획과 계획을 담아서 문서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내용을 공유하면 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아 버린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의심한다.
어쩌면, 회의에서 울리지 못한 심장을 일하는 현장에서 갈구면서 울리려고 하는 문화가 뿌리 깊어 회의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아직, 회의에 대해 고민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교육이 안착되지 않아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회의에 대해 고민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글에서 고정된 회의의 틀을 깨고 회의에 상상력을 부여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회의 문화를 슬그머니 반성하려고 한다. 회의에서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한 당신을 위로하려고 한다.
경쟁이 치열한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하지 못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 하며, 함께 일을 나누지 못할 정도로 일만 하며 달려야 하는 경주를 잠시 멈추게 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이 글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회의를 말하려 한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곧 이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