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식이 아닌 수평적인 자발적 화폐들의 생태계, 황당하죠?

in #kr6 years ago (edited)

가령 어떤 커뮤니티 A가 무료 과외 수업 네트워크를 블록체인 같은 걸(아니면 그 후신들)로 구축한다. 커뮤니티 B는 초여름에 무료 모내기 봉사를 하는 네트워크로 구축된다. 커뮤니티 C는 무료로 머리를 깎아주는 미용사들과 그 소비자들의 네트워크다. 커뮤니티 D는 할인매장과 도매시장에서 기부받은 식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네트워크다. 커뮤니티 E는 .....

그런데 이 커뮤니티들 모두가 무료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블록체인(이나 후신들)을 바탕으로 발급되는 모종의 회계단위--말하자면 또 다른 비트코인--를 발급해준다. 서로 제휴하는 모든 커뮤니티에서 각각의 회계단위로 서로 다른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협약한다. 어떤 커뮤니티에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 다른 커뮤니티의 서비스를 청구할 수 있는 '구매력'을 발생시킨다. 그 구매력으로 생계를 지탱할 수 있는 정도만큼 (부분적인) 일자리/생계 수단을 창출하는 수평적인 교환/결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 그물망들이 계속 확장되며 뒤엉킨다. 이 네트워크들에서는─즉 그들의 관심 활동에서는─중앙은행이 발권하는 현찰과 기존 은행권의 예금통화가 필요없다.

나도 황당한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영원히 황당할까? 

블록체인 비슷한 홀로체인이란 걸 만드는 사람들 중 하나인 모양인데, 그가 이런저런 과격한 전망을 하는 가운데 "활발하게 돌아가는 암호통화들의 생태계(a vibrant ecosystem of cryptographic currencies)"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기사 자체에는 별 내용이 없어 보인다).  사실 지역통화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먼 나라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들 대부분은 단일경작에 대비되는 생태적 혼작처럼 단일한 통화 대신 여러 종류의 통화가 공존하는 생태계를 강조한다. ( ... ... )

가령 이런 수평적 네트워크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산돼서 유용하게 돌아가고, 그것들이 서로 얽히며 진화하면 예측하기 곤란한 새로운 창발적(emergent)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아직 상상하긴 어렵지만 ... ... 

[어느 날 복잡계(complex adaptive system)를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그러나 역시 학자적 상상력이 넘치는 분이라 아주 쉽지는 않은─이 아티클을 보다가 적어본 것입니다.]

* * *

복잡계 이론을 대충만 구경했지 별로 자세히 파고든 적은 없어서 창발(emergence)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까이꺼 대충, 나무와 풀과 곤충과 미생물 개체들이 제각기 각자의 본능대로 어느 곳의 여기저기에 대충 각자 알아서 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그 개체들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신비로운 숲의 균형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한편, 맨 앞에서 예로 든 커뮤니티 A, B, C, D, E ....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그것이 작동하는 추상적 단면을 상상해 보면 이러하다. 가령 커뮤니티 X에는 창수, 갑돌, 영수 이렇게 세 사람만 있다고 치자. 창수가 갑돌이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너에게 5000원을 빚졌다. 너를 비롯하여 누구든 이 쪽지의 소지자에게 5000원어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적은 쪽지를 갑돌이에게 건넨다. 갑돌이는 영수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창수에게서 받은 이 쪽지를 건넨다. 영수는 창수 집에 가서 이 쪽지를 주고 저녁을 얻어 먹는다. 

창수가 써준 쪽지는 '너에게 빚졌다'는 채무증서이고, 이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갑돌이와 영수가 수용했다는 점에서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는 신용'이 발생한다. 그렇게 창수, 갑돌, 영수가 행동으로 창출한 '신용 네트워크가 화폐 현상'이다. 즉 화폐는 애초부터 신용이다. 이렇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창수가 국가라고 상상해 보면, 창수가 써서 건네는 쪽지가 바로 국정화폐가 된다고 볼 수 있다. 
  • 창수가 제 맘대로 쪽지를 쓰고 남들(갑돌과 영수)이 그걸 신뢰하는 게 아니라, 창수와 갑돌과 영수가 모두 믿고 사용할 수 있는(혹은 합의한) 모종의 어플리케이션이나 규칙에 따라 애초의 쪽지가 발급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 창수가 써 준 채무증서 쪽지를 '지불수단으로 신뢰'하는 순간, 신비로운 비약이 일어난다. 창수는 단지 쪽지를 써줬을 뿐인데, 갑돌이가 그걸 신뢰하는 바람에─이어서 영수가 신뢰하는 (또 다른 누가 신뢰하는) 바람에─갑돌이가 저녁을 대접하는 개별 노동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영수가 저녁을 대접하는 개별 노동과 이어지고 등치되는 '추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왜 추상(abstraction)일까? [이건 또 새롭게 가지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여기서 멈추는 게 좋다. 이 멈춘 자리만 기억하자.]
  • [그리고 또 다른 여러분들의 상상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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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제가 막연하게 생각한 걸 정리해주셨네요. 이런 글이 뭍히다니., 저는 여기서 나아가서 이렇게되면 도로 원시시대의 물물교환처럼 되는 중계없는 다이렉트 가치교환시대가 되지 않을까? (전제는 한계비용제로사회, 즉 에너지로 귀결되는 코어비용 제로, 그래서 국가 개념도 붕괴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뭔말이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요. 하지만 그 가치는 누가 결정할까?가 문제였는데 스티잇같은 보팅시스템이 아닐까? 정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은 가치평가에 대한 합리적 결정이 힘들지요. 상상에 나래를 폅니다.
ps. 포스팅올리시면 항상 알려주세요. 포빠되겠삼.

상가에 멀리 다녀오는 중인데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전철을 타니 정말 마치겠군요. 그래도 답글 적으며 생각하는 것이 낙을 주니 견디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앞의 원글과 거기 담긴 함축이 도움이 되신 것 같아 기쁩니다. 한편, 말씀해주신 내용에 대해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바가 있어서 대략 제 생각을 적어 보겠습니다. 상당 정도 저의 망발이려니 여기시길 바랍니다.

제 느낌에는 적어주신 (제한된) 글자들로만 볼 경우, 여러 가지 추상적 개념을 이리저리 연결하시다가 생겨난 울타리에 갇혀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갈 출입구도 막힌 것 같구요. 밖에서 제가 들어갈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1) 먼저, '한계비용 제로':

"에너지로 귀결되는 코어비용 제로, 그래서 국가 개념도 붕괴"는 당분간 배제해 놓고, '한계비용 제로'까지만 생각했으면 합니다. 일단은 생각의 경계를 '한계비용 제로 사회'까지는 펼치지 않고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당분간 '어떤 생산물이나 활동의 한계비용은 그것의 공급가다'라는 무슨 공식 같은 것이 있다고 치고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계비용이 제로로 떨어진다는 것은 해당 생산물의 공급가가 제로로 떨어진다(즉, '공짜' 생산물이다)는 것이 됩니다.

일례로, 작곡이 끝난 뒤 디지털 녹음된 노래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비용(한계비용)은 0이다. 페이스북 광고에 노출될 사용자 활동 시간(게시물 작성, 눈팅, 답글 쓰기, 좋아요 누르기 등등에 소용되는 시간)이 한 단위 더 '생산'되는 비용(한계비용)은 페이스북 입장에서 0이고, 광고를 페북 화면에 한 단위 더 노출시키는 비용(한계비용)도 0입니다. ... ...

여러 종류의 현상이 많겠지만, '한계비용의 0 근접'이란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아--너무 서두르지 않고--관찰할 현상은, 아마도 첫째 '가격이 없는 무형적인 생산물(활동)'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둘째, 이런 무형적인 '공짜' 생산물(활동)들이 그냥 공짜라는 사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특정한 비즈니스 모형들이나 모종의 연관/파급 작용을 거쳐 다른 데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가령, 한계비용 0인 활동들을 일정한 비즈니스 모형으로 결합해 떼돈을 버는 곳은 페이스북입니다. 공짜 생산물을 '생산'하는 사용자들은 공짜의 정의상 아무런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합니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 시장 외에 여러 유형의 플랫폼 시장들이 많을 겁니다.

일단 관점과 개념의 종류를 너무 넓히지 말고 생각해보면, 한계비용이 0에 근접하는 생산물(활동)이 늘어나는 현상은 가격이 없는 생산물(활동)의 생산/분배/소비가 새롭게 조직되는 새로운 시장이 확장되는 현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새로운 시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이 분배되는 방식이 이전의 가격이 있는 생산물의 시장과 전혀 다릅니다.

(2) "에너지로 귀결되는 코어비용 제로, 그래서 국가 개념도 붕괴"라는 말씀은 제가 모르는 얘기라서 좀 더 상세한 자료나 논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3) "그 가치는 누가 결정할까?가 문제였는데 스티잇같은 보팅시스템이 아닐까?"라고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나중에 좀 더 상세한 언급이나 정보를 나누면서 이야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그런데 제가 게시물을 새로 쓰면 그걸 어떻게 특정 사용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너무 늦어서 며칠정도만 심사숙고하여서 질문 다시드리겠습니다. 저때문에 지하철에서 용쓰시면서 글쓰시게 만든게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노안이와서 스맛을 오래보면 날파리가 심하게 날라다니거든요. 님은 어떠신지? 그리고 제가 팔자상 성격이 중구난방합니다. 잡생각이 많지요.^^제가 상상의 나래를 편건 제레미리프킨의 도서 한계비용제로사회와 소유의 종말을 보고 느낀점으로 좀 멀리나간 감이 있지요. 그땐 읽을때(곡해했을 수도 있음, 어치피 글읽기는 원저자의 의도를 붕어빵식으로 이해 못하니까) 과연 그럴까? 했는데. 어라 ? 현실화 되는것도 같네여서 입니다. 제가 좀더 님의 말씀을 곰삭혀서 읽고 잡설좀 써보겠습니다.
ps. 샘께서 포스팅하시면 제 포스트 아무곳에나 댓글 남기면서 글썼소 보시요. 하면 찾아가지요. 저는 요레포스트 영업 드가는 것이지요. 이놈의 스팀잇이 원시적이잖아요. 노티도 없고. 그래도 나름 구닥따리 매력도 있는거 같습니다. 이놈의 노안. 날파리.

일찍깨다보니 잠이다시 안오내요. 그래서 몇몇 ref.를 연결시켜 보탰습니다.

지금기술발전에 대한 현실적인 시각과 긍정적인시각인데요. 여기에 슈퍼 긍정적인 생각을 상상해본 것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인간의 탐욕은 어찌할수 없기때문에 실은 부정적이지요. 첫번째 작자분에게 제가 단 댓글과 답변 그리고 또 댓글도 살펴보시고요.

길거리나 지하철역이나 인터넷을 쓰지 않는 집에서는 무선 전파에만 의존해야 했는데, 역시 공공 시설의 인터넷망에서 노트북으로 보니 들어오니 접속이 훨씬 잘 됩니다. 해당 링크 속의 글들을 시간을 두고 살펴보겠습니다. 그 속에 님이 생각하시는 (제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내용들이 들어 있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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