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란 존재 『Wilhelm Emrich의 책을 읽고』

in #kr7 years ago (edited)


"Why does someone become a critic? Because he cannot create."

팀 버튼의 영화 ‘빅 아이즈’에 나오는 대사이다. ‘비평가를 위한 동상은 세워 진 적이 없다’ 라는 말도 떠돌아 다닌다. 비평가란 어떤 존재일까. 한때는 나도 비평가들이 왜 비평을 하는 지에 대해 궁금했었던 적이 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비평가들은 창작을 하고 싶지 않을까?’ 가 내 주된 의문이었다. 유려한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면 감독보다 더 잘 만들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그 의문에 대해 내 나름의 답을 찾았고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소설가가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소설을 택하듯, 화가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 삶을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림그리기를 택하듯 비평가도 비평이란 형식을 택한 것일 것이다. 비평가에게 왜 창작을 하지 않고 비평을 하냐고 묻는 것은 소설가에게 너는 왜 그림을 그리지 않냐고 묻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은 아니었을까.

빌헬름 엘리히의 ‘프란츠 카프카’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전체를 유기적으로 해석한 평론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난해한 작품들을 분석한 수많은 연구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책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수수께끼 같다는 표현은 그의 작품들에 언제나 따라 붙는 수식어이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 특히 ‘심판’과 ‘성’을 읽으면서 마치 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고, 또는 프란츠 카프카가 꿈 속을 묘사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독특한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깨어나면 꿈 속의 분위기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고 장면들은 심오하며 마치 중요한 메세지를 내게 전달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럴 때 그 꿈을 종이 위에 글로 옮겨보려고 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하려고 해 봤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꿈의 내용을 현실 세계의 언어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꿈 속에서는 현실 세계의 법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꿈 속의 내용은 현실 세계의 눈으로 봤을 때 시간 순서대로 부드럽게 전개되는 듯 하면서도 중간 중간 왜곡 또는 변형, 삭제 등이 일어나서 언어로 전달하기가 매우 힘들다.

바로 그 꿈을 대하는 느낌이 내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의 느낌이었다. 혼란스럽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건 그의 작품이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직관 또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빌헬름 엠리히의 책을 만났고 이 책으로 인해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것을 반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빌헬름 엠리히의 책을 읽으며 비평가에 대한 나의 인식이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 김윤식 교수가 인터뷰에서 ‘비평가들은 창작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비평에 임해야 한다.”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체계적인 언어로 재표현해내는 비평가의 존재는 창작자들의 하나의 큰 기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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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종종 독특한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깨어나면 꿈 속의 분위기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고 장면들은 심오하며 마치 중요한 메세지를 내게 전달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럴 때 그 꿈을 종이 위에 글로 옮겨보려고 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하려고 해 봤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꿈의 내용을 현실 세계의 언어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꿈 속에서는 현실 세계의 법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꿈 속의 내용은 현실 세계의 눈으로 봤을 때 시간 순서대로 부드럽게 전개되는 듯 하면서도 중간 중간 왜곡 또는 변형, 삭제 등이 일어나서 언어로 전달하기가 매우 힘들다.

너무나도 공감되는 문단이에요! 내 꿈들을, 나아가 내 생각들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네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전달하려면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듯 해요. 댓글과 리스팀 감사드려요^^

저는 본문의 내용과 별개로 비평가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대중을 밀어내고 자기들의 좁은 영역에 스르로를 가두려는 느낌이라서요. ㅎㅎ 업보팅하고 갑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네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겠죠. 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론가에 대한 반감 내지는 내심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밤 잘 마무리하시길^^

비평가도 비평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 갑니다.

네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밤이 늦었네요. 좋은 밤 되세요^^

철학 태그를 달고 있는게 부끄럽습니다! 공부하던 분야가 인문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었다는 소심한 변명을 해봅니다...

평론가와 예술가에 대해 말씀하시는걸 들으니 버드맨도 생각납니다! 빅아이즈는... 남편이 부인의 그림을 자신의 그림인 양 행세하고, 큰 벽화를 그리고, 집이 불타고, 부인은 하와이로 도망가고, 뭔가 장면장면은 기억나는데 곁다리만 기억하는거 같네요. 매일 빅아이즈 그림을 보러가는 노인이 있던가요? 실없는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민망하게도 저도 '빅아이즈' 영화를 보진 않았어요. 글의 대사는 팀 버튼의 영화 인터뷰에서 본 내용이에요. 영화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제가 원체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고 '빅아이즈'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아서 보지 않게 되었네요.
저도 버드맨은 봤는데요^^ 냉소적인 태도의 비평가와 주인공이 바에서 한판 붙는 장면이 기억나네요. 그러고 보니 비평가가 창작자에 미치는 영향이 버드맨에서도 상당부분 그려지네요.

맞습니다. 버드맨은 중심내용이라 할만한게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 반면 빅아이즈는 영화 전반에 걸쳐 대부분의 장면이 기억이 나지만 알맹이가 빠져있다 느끼는게, 부족한 영화라서는 아닌가 감히 생각해봅니다.

고사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본다면, 백아에게는 예술 자체보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청자인 종자기가 소중했습니다. 이를 통해 충실한 감상자인
평론가와 예술가의 이상적인 상생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그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봐야될 듯 해요. 이 글은 평론가라는 직업의 가치 측면에서 생각해 본 것인데, 사실 예술 자체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를 우선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좀 동의하기 힘드네요. 괴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 그 어느 쪽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사실 저는 이런 태도가 더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칭찬이나 비난 모두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특정 방향으로 변화,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전에도 칭찬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한 듯 해요. 원글에서 말하는 비평의 긍정적인 측면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의 경우이고 비평이 창작자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선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되었네요. 버드맨에서는 평론가가 창작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주로 다뤄진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점들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요. 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 를 보면 화가가 평론가의 평을 듣고 고뇌하다 자살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풍자적으로 묘사되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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