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철학 판타지] 데모크리토스의 한판 뒤집기 그리고 위대한 허튼소리

in #kr6 years ago (edited)

헤르메스가 들려주는 철학 판타지 에피소드 2.
에피소드1 파르메니데스 영감님, 쌍코피 터진 사연^^에 이어 계속됩니다~


다짜고짜 가엾은 파르메니데스의 콧잔등을 후려갈긴 헤라클레이토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주장은 언뜻 자명해 보이지만, 그 논리에 따르면 없던 게 생겨나거나(생성) 있던 것이 없어지거나(소멸) 없던 속성이 생겨나고 있던 속성이 없어지는 일(변화)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죠.

더구나 '없는 것이 없다'면, 다시 말해 우리들 둘러싼 공간이 존재로 가득하다면 움직임, 즉 '운동'조차 불가능해집니다. 승객으로 가득찬 출근길 지하철에서 우리가 움쭉 달싹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반론에 대해, 파르메니데스가 생성, 소멸, 변화, 운동은 모두 '환상'일 뿐이라고 고집을 부려대니 헤라클레이토스는 그의 콧잔등을 냅다 후려갈기고는 "네 논리에 따르면 지금 네 고통도 환상일 뿐'이라고 능청을 떤 거죠.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공간이 존재로 가득차 있다면 그의 콧잔등을 때리기는커녕 꼼짝도 못했을거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흔히 '철학적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논리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A=A, ~A=~A이지 A=~A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렇다고 그런 논리를 무작정 인정하자니 생성, 소멸, 변화, 운동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운동은 '환상'이라 고집했던 파르메니데스로서도 쌍코피 흐르는 콧잔등에서 느껴지는 고통만큼은 너무나 '현실적'이지, 너무나 '리얼'하지 않았을까요? ^^

바로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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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현자' 데모크리토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어안이 벙벙해서 쥐죽은 듯하던 영감님들 사이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시선집중! 알고보니 웃음의 주인공은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안된 데모크리토스 영감이었습니다.

"형님들, 역시 소문대로군요."

"응? 자네는 누군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물었습니다.

"그러게... 새로 이사 온 친구이긴 한데 이름이..."

코를 감싸쥔 파르메니데스가 이 순간 만큼은 헤 영감의 말에 호응했습니다.

"형님들도 참, 벌써 잊어버리셨군요. 제 이름은 데모크리토스. 형님들도 아시는 레우키포스의 제자이기도 하지요."

"아하, 그 시도 때도 없이 웃어제낀다는 그 실없는 친구로구먼. 그런데 지금은 뭐가 그리 우습나? 난 지금 코가 아파 죽겠구만..."

파 영감이 퉁명스레 말했습니다. 물론 헤 영감과 기타 영감님 일동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더랬죠.

"아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파 형님의 고통이 어찌 제 즐거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웃음은 그저 저의 습관일 뿐. 뭔가를 깨달았을 때 저는 항상 웃는답니다. 명의 히포크라테스께서도 저의 증상을 보더니 말씀하시더군요. 병이 난게 아니라 지혜로와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헛, 그래? 자네가 그리 지혜롭다고? 참 재수없는 친구로고..."

이번엔 다혈질 헤 영감이 콧웃음을 쳤습니다.

"그래, 자네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얼마나 큰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리 호탕하게 웃었는지 들어나봄세."

"하하하하하. 예. 아무쪼록 제 웃음을 비웃음으로 오해하지 마시길... 아니, 그런 오해를 벗기 위해서라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겠군요."

잠시 숨을 가다듬은 데모크리토스 영감은 기대와 냉소가 섞인 파 영감과 데 영감의 시선을 느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파 형님이 간밤에 영접하신 아테나이 여신의 말씀에 감히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지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저의 스승이신 레우키포스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이 우주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제 말씀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아테나이 여신의 신탁을 받아들이면서, 한 걸음 더 나가보자는 겁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걸 인정하되, '있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보자는 것이지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particle, atom)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허공(void) 즉 케논(kenon)으로요."

"..."

"자 그렇게 되면 아테나이 여신의 신탁, 다시 말해 논리학에서 말하는 동일률, 배중률 따위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생성, 소멸, 변화, 운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입자들이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생성, 반대는 소멸, 입자가 뭉쳐진 크기나 모양이 바뀌는 것은 변화, 여기 뭉쳤던 것이 다른 곳에서 뭉치는 것은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떻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 무더운 여름날 파 형님과 헤 형님이 열을 올릴 일도, 파 형님 코에 쌍코피가 흐를 일도 다시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떤가요, 여러분? 필로소피아 나라, 퓌지카 마을의 파, 헤, 데, 세 영감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지요? 영감님의 부인께서 푸념하셨듯 쓸모없는 말꼬리 잡기, 할 일없는 자들의 허튼 소리라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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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이 흐른 오늘날, 스키엔티아Scientia 나라에도 공교롭게도 퓌지카Physica라는 똑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는데요. 이 마을 영감님들도 비슷한 말꼬리잡기, 비슷한 허튼 소리들을 하고 다닌다는군요.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없는 줄로만 알았던 '공간'이 늘었다 줄었다 할 뿐 아니라 이러저리 휘어진다고도 하고, 만물이 에너지고 에너지가 곧 만물이라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만물을 쪼개고 또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에너지 덩어리 즉 '양자'가 남는다고도 하고, 만물의 근원이라는 원자를 확대해서 핵을 농구공만하게 만들면 전자는 좁쌀만 하고 핵과 전자의 거리는 2킬로미터에 달한다는(그리고 그것도 확률적으로만 그렇다는) 허무맹랑한 말도 한다네요. 우와~ 그럼 그런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사실상 거대한 빈 공간 즉 케논인거네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등등이라 불린다는 데 더 이상 말하면 피차 간에 두통만 일으킬 것 같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이 이런 허무맹랑한 허튼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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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렇다면 수천 년 전 필로소피아 나라와 오늘날 스키엔티아 나라 퓌지카 마을 사람들의 허튼 소리는 정말 믿거나 말거나~ '위대한 허튼 소리'임에는 틀림없는 듯해요. 어떤가요, 여러분... 왠지 파, 헤, 데 영감님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어지지 않나요? ㅎㅎㅎ

사족: 그런데, 코리아라는 동방의 나라에선 어찌된 영문인지 필로소피아의 퓌지카는 '자연학/자연철학'으로 스키엔티아의 퓌지카는 '물리학'으로 달리 부른다네요. 믿거나 말거나...


WARNING: 이 이야기는 사실 반 허구 반의 판타지로, 특정 역사적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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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넘 오래 쉬시는거 아니에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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