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라이프) 제주에서 여름나기 극과 극 체험

in #kr6 years ago (edited)

제주도로 이사온지 올 가을이 되면 2년차가 된다.
어딜 가서 살더라도 그 지역의 토박이가 되는 건 쉽지 않다.

시골에 이사간 서울사람을 그 마을 사람들은
"서울에서 이사온 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마을 사람들은
"서울집 아이"라고 부른다.
그 서울집 아이가 다시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그 마을 사람들은
"서울집 손주"라고 부른다.
그 서울집 손주가 다시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그 마을 사람들은
"누구!"라고 그 사람을 인정해준다고 한다.

그래도 우린 이사온지 2년도 안되어 제주 토박이처럼 산다.
제주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주 풍습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제주도는 이제 관광지는 아니다.^^

이틀 사이에 제주 친구도 만나고 육지에서 놀러온 친구도 만나보니, 제주에서의 여름나기가 많이 다르다.

제주 친구와 여름나기

점심은 분위기 있는 파스타집에서 먹기로 했다.
제주시청 뒷골목에 꼭꼭 숨어 있어서 주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꼬불꼬불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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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건물 귀퉁이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가드망제'라는 파스타집이다.
제주도 사람이라고 몸국이나 고기국수 갈치조림... 그런 걸 먹으러 가진 않는다.
만나자고 할 때부터 그런 메뉴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ㅋㅋ

가게 안 인테리어도 제주스러운 것은 일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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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에 감귤이라도 하나 띄워줄거 같지만 그냥 허브잎에 레몬 한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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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에도 그냥 일반적인 파스타이다.
'멜젓파스타'같은 제주색이 물씬나는 파스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꽃멸치로 파스타를 해먹었다고 하니까 제주 친구들이 "비려서 어떻게 먹었데?"라며 놀란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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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문한 우리의 메뉴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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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 아닌 차돌박이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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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잎이 아니 시금치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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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알이 아닌 명란 파스타

이렇게 시켜놓고 맛있게 먹는 제주 아지매 셋의 대화는 그래도 제주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낚싯배가 나가도 요즘 조업이 안되어서 바다 위에서 배들끼리 자리 선점하느라 엄청나게 싸운다는 이야기.
남자들이 하고 싶은 일은 배 타는 것이 아니라 땅 밟고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
해녀의 텃세가 심해서 해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해녀의 딸'이나 '해녀의 며느리'밖에 없다는 이야기.
금능해변 모래사장에 조개가 많이 나오는데, 절대로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우도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가면 안된다는 이야기.
그 유명한 초당옥수수를 개당 300원에 사먹은 이야기.(난 동문시장에서 6개에 만원에 사먹었는데...ㅜㅜ)
그냥 주워 먹던 성게알이나 보말, 깅이가 금값으로 팔리는 것에 적응 안 된다는 이야기.
제주도 사람이지만 수영을 너무 못해서 바닷가에 가도 발만 담그고 온다는 이야기.

왠지 수다의 주제는 그래도 제주도 사람같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수다를 떤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는 카페나 가보자고 만나기 전에 얘기했었는데, 결론은 제주 시청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가보는 걸로 났다.
차타고 3, 40분 걸려 예쁜 카페 구경다니는 건 제주도 사람으로서 정말 귀찮은 일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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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음료를 시켜놓고 시원한 스타벅스에서 또다시 수다를 이어간다.

이렇게 시원한 음식점, 시원한 카페면 제주도민으로서 여름은 잘 지내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또 만나자고 아직도 대낮인 시간에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다.

관광객 친구와 제주에서 여름나기

언제나 육지에서 오는 친구는 오기 며칠 전에 전화해서 숙소와 맛집, 가볼만한 곳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제주 이사온 첫해에는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 두었다가 이렇게 묻는 친구가 있으면 여기저기 소개해 주곤 했다.
하지만, 이젠 이런 게 참 귀찮은 일이다.

어쨌든 내게 함께 올레길을 걷자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끝없는 질문을 끝낸 친구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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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여름 내내 이렇게 날씨가 좋을 예정인 듯하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도 예쁘다.
하지만 기온은 36도...
이 더위에 올레길을 걸어야 하니 난 죽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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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한라산을 다녀온 친구의 딸이 힘들어 늦게 일어났다고 만나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우리도 거의 정상적인 아침 식사 시간이다.
그래도 제주에 왔다고 아침부터 횟집은 심하지만, 맛있게 한치회와 성게 미역국, 전복죽, 회덮밥을 먹었다.

올레길을 걷기 전 후식도 먹을 겸 인터넷에서 찾은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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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뷰를 자랑하는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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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집 쿠키 정말 맛있다.
두가지 먹어봤는데,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올레 20코스를 걷기로 했다.
20코스 출발 지점에서 기념 사진 찍고 바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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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운치있는 제주도 돌담이 멋지다.

제주 올레 20코스는 김녕 벽화마을을 지나간다.
벽화가 그림은 아니고 설치 미술처럼 철사나 동판으로 꾸며놓아서 아주 이색적이고 좋았다.
정말 걷기도 좋고 풍경도 좋지만 36도 넘는 날씨로 길에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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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도 정말로 많은 작품이 집들을 장식하고 있어서 아주 재밌게 걸을 수 있다.

바다로 길을 내 놓은 곳이 있어서 길을 벗어나 잠시 바다길을 걸어보았다.
역시 바다에서는 더워도 뜨거운 바람은 불지 않아 시원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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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시원하니까 신난다. 친구와 친구 딸, 그리고 나.

이렇게 1킬로나 걸었을까? 김녕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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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스노쿨링을 하겠다며 친구가 예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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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당 45,000원이면 2시간 동안 스노쿨링도 하고 강습도 받고 깔끔하게 샤워까지 할 수 있단다.

친구딸은 물놀이가 좋단다.
이 더운날 올레길을 걷는 건 벌칙이란다.
시원한 바다가 옆에 있는데, 자긴 여기서 놀고 싶단다.
어린 애를 혼자 제주 바다에서 놀게 둘 수도 없고, 오랫만에 걷는 나도 많이 지치고 해서 나랑 친구딸은 바다에서 놀기로 했다.
남편이랑 친구는 걸을 수 있는 데까지 걸어보겠다며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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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속에 들어가 있으니 더운 줄 모르겠다.
예정에 없던 해수욕이라 수영 장비없이 수영을 하니, 갑자기 난 일도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됐다.
내 수영은 장비빨이었던 것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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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도 간수 못하면서 친구딸 보느라 고생은 했지만 너무 시원하고 좋아서 우리도 남편 쉬는 날마다 텐트들고 수영장비 갖추어서 집근처 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친구 아니면 이렇게 먼데까지 와서 해수욕 절대 안한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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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걸은 남편도 그렇게 많이 걷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걸으니 좋았단다.

저녁은 @hjk96님이 소개한 '그때 그집'에 가서 흑돼지 오겹살을 먹었다.
역시 반님의 맛집 소개는 믿고 먹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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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이 깔끔하고 맛있다. 셀프라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 남기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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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직접 구워주셔서 해수욕과 올레길 걷기로 지친 우리에게는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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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놀고 이렇게 예쁜 저녁노을까지 감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관광온 친구와 제주에서 여름나기는 하루만에 너무 많은 걸 해야해서 정말 빡세다.
우린 그냥 제주도민으로 이 무더운 여름을 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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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아이 대학 보낸 2~3년 후엔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다니며 살아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고 그중 한 곳이 제주도네요.
아마 그간의 식습관상 한식과 양식을 반반씩 해야텔데 글을 보니 딱이네요^^

제주도가 관광지로 핫해지면서 먹거리는 정말로 다양하게 있답니다.^^

식당과 음식은 제주도 느낌이 없더라도 사람은 제주도 그 자체인걸요.ㅎㅎ

제주도 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제일 신나해요.
이야기 주제가 너무 재미있거든요.ㅋ

ㅎㅎ 재밌네요. 제주 친구들과 제주 아닌 곳? 같은 곳에서 데이트 바다 보는건 일상이니 정말 특별할 일도 아니네요^^
저도 다음달에 갈 계획인데 일정이 빡빡하지 싶어요. 자주 못 가니까요 ^^;;;;

이번 여름 휴가를 제주도로 정하셨나봐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제주도가 점점 멋져지고 있답니다.^^

제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 나온 글이네요 ㅠㅠ 조금만 가면 도시처럼 파스타집도 있고, 바다도 있고,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올레길도 있고 ㅠㅠ

사람들이 복잡하게 서울에만 모여살지 말고,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디든 사람만 있으면 멋진 곳일 대한민국이니까 말이죠.

예전엔 매년 여름 제주도를 갔었는데 올해는 아기천사가 집에 들어와서 한 해 건너 뛰게 되었네요..^^
더운건 싫지만 제주도의 뜨거운 여름이 그립습니다ㅠㅠ

축하드립니다.
블로그에 잠시 가보니 지난 달에 득남을 하셨네요.^^
올 여름은 집안에서 꼼짝마시겠어요.
그래도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새로운 환경에 녹아들고 받아들여지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2년만에 대단한 삶을 영위하고 계시는군요. 이열치열로 현명하게 더위도 이겨내고 계시고 보기에 좋습니다.^^

외국 가서 잘 적응하고 계시는 분도 있으신데요, 뭐.ㅋㅋ
저는 그래도 추위보다 더위는 잘 참는 편이랍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 피하지방이 없어졌는지 겨울엔 무슨 사시나무를 보는듯 합니다.^^

와우~~!! 제주도는 어느곳을 카메라에 담아도 그림이 예술이네요
빡세긴 하셨지만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셨네요^^

제주에 살면 좋은 점 중 하나에요.
언제든지 여행자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거든요.ㅋㅋ

금능해변에 조개 적어놔야겠어요
차돌 파스타 시금치 파스타 너무 맛있을거 같인요🤩

앗! 제주도급 비밀인데...ㅋㅋ
관광객들이 해녀가 뿌려놓고 기르는 보말이며 성게, 소라를 다 잡아간다고, 정말 비밀이랬거든요.ㅋ

제주 올레길은 제 버킷리스트에 있습니다~^^

아, 아직 올레길을 안 걸어보셨군요.
요즘은 옛날 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걷는 사람이 있어요.
아기자기한 것들이 많아서 어딜 걸어도 너무 재미있답니다.^^

최대한 누려볼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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