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전이'라고 불러도 될 감정들

in #kr7 years ago

원래 즐겨보던 네이버 웹툰들이 있었는데, 그동안 다른 것에 정신팔려서 약 2달 정도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제밤 문득, 네이버 웹툰을 안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못 보았던 웹툰을 모아 보았는데...

그 중 내가 즐겨보던 "우리집에 곰이 이사왔다"는 웹툰을 보고 펑펑 울고 말았다.

마법의 나라에서 살고 있던 곰토토가 인간세상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주인공 아이의 집에서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많은 에피소드와 그 관계를 그린 따뜻한 만화였는데, 내가 안 본 이후부터 곰토토와 아이와의 이별이 몇 주에 걸쳐서 진행되었고, 어제 그것을 몰아보고는 폭풍눈물을... ㅜㅜ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부었다. ㅜㅜ

인간나라에서 계속 살면 죽게 되는 곰토토는 어쩔 수 없이 마법세계로 돌아가야 했고, 그것을 알게 된 현호(주인공 아이)는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한다. 자신의 외로움을 한껏 채워내던 곰토토였지만, 계속 인간세상에 남아 있게 될 경우 죽게 된다는 말에 이별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담담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아주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국 이별의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이별의 순간에 현호는 곰토토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하고, 곰토토는 다시 오겠다고, 길 잃어버리지 않을테니까 꽃 피는 봄에 만나자며 떠나게 되는데...... 사실 곰토토는 자신이 인간세상에 다시 올 경우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기에, 계속 오지 말라는 현호의 말에 왜 그러냐며, 꼭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오지마토토.jpg

그러나, 슬픈 것은 슬픈거지. 곰토토가 떠난 후 현호는 '토토야, 가지 마' 라며 오열을 한다. 이 장면에서는 거의 목 놓고 울 뻔 했다. 감정이 가시지가 않아,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봤는데도 막 벅차오르는 감정, 그리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끅끅대며 올라오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 그게 진심인데.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 이별의 아픔, 이미 시작되어 버린 그리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가슴 아픈 마음.

슬픈현호.jpg

왜 그렇게 눈물이 날까 싶었는데, 어쩌면 나랑 너무나 닮아 있던 그 감정 탓에, 고작 만화 주인공일 뿐인 어린 현호에게 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늘 그랬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어와 혼자 우유를 마시고, 책을 보다가 잠이 들고, 깜깜해진 이후에는 티브이를 멍하니 보다가, 문 밖에 멍하니 앉아 가족을 기더리던 일의 반복. 4년 정도의 세월을 그리 보냈으니, 어린 나로서는 생각보다 긴 세월을 외로이 보낸 것이다.

집에 오면 늘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티브이를 켜놓고 무언가를 하던 버릇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어서.. 난 다 커서 어른이 된 지금도 무언가를 할 때에는 꼭 티브이를 켜놓고, 혼자 있을 경우에도 티브이를 켜놓는다. 굳이 티브이를 보는 것은 아닌데, 공간에 소리가 차 있어야 마음이 편한 탓에 티브이를 켜놓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찍 독립하겠다는 오빠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독립하겠다는 오빠들을 잡지 못했던 기억들. 그래서 혼자 남겨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다 큰 이후에도 너무나 가슴 아팠던 이별 앞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아와 몇 날 며칠을 앓았던 기억들.

어쩌면 만화를 보고 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보면서 울었던 것일 수도 있다.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들. 그리고 그 깊은 상처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생채기가 큰 기억들이었던 것 같다. 추억이라 말할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저 흔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지나간 세월들.

감정이 다 해결된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이렇게 예상 밖에 상황에서 눈물이 터지고, 조용히 잠겨져 있던 감정이 터져오른다. 너무 오랜만에 가끔씩 보는 감정들이라, 볼 떄마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이 감정들은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숙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생각하는 것.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그런 생채기 없는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 자신만의 깊은 상처가 있고, 그것을 꼭꼭 숨겨놓은채로 그저 어른으로 꾸역꾸역 기능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어쩌면 개미의 탈을 쓴 베짱이처럼, 우리 모두 어른의 탈을 쓴 어린 아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간 그리움이 나를 덮치고 지나가면 꼭 며칠간은 더 우울하게 보내는 것 같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리움. 아니 그 그리움의 대상. 이제 그 대상은 정체가 불분명한데도, 막연한 형체로 남아 두고 두고 나를 떠나지 않는.

어제는 참 슬픈 밤이었다. 어쩌면 목 놓아 울었더라면 속이 좀 더 시원했을까나?

Sort:  

위로 받으신거 같아요. 화이팅이요 보팅하구 갑ㅂ니다

감사합니다. ^^ 스팀잇에서 잘 정책해보아요~ ^^

Congratulations @flysquirrel!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made your First Comment
You got a First Reply
Award for the number of upvotes received

Click on any badge to view your own Board of Honor on SteemitBoard.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For more information about SteemitBoard, click here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Upvote this notification to help all Steemit users. Learn why here!

Congratulations @flysquirrel! You have received a personal award!

1 Year on Steemit
Click on the badge to view your Board of Honor.

Do not miss the last post from @steemitboard:

SteemFest3 and SteemitBoard - Meet the Steemians Contest

Support SteemitBoard's project! Vote for its witness and get one more award!

Congratulations @flysquirrel! You received a personal award!

Happy Birthday! - You are on the Steem blockchain for 2 year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Do not miss the last post from @steemitboard:

SteemFest Meet The Stemians Contest - The mysterious rule revealed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6
JST 0.030
BTC 68331.57
ETH 2650.11
USDT 1.00
SBD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