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텍스트가 참 좋습니다
나는 텍스트가 참 좋습니다.
비록 페이스북 피드로 월드뉴스나 국내뉴스, 문화계 소식등을 받아보고 일주일에 소설 두권씩밖에 못 보지만 나에게 텍스트는 영원한 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소시적 영화를 배워보겠다고 하루 평균 1.5편의 비디오를 섭렵했던 (1.5×365×5=약 2700여편) 5년여간의 외도의 시기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각이 느려져서 영화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울뿐더러 원래도 지루하고 느린 영화 취향이라 요즘은 "재.미.없.슴."입니다. 대신 문장을 읽고 음미하고 느리게느리게 페이스를 조절할수 있는 텍스트가 참 좋습니다. 새롭게 만나게 된 스티밋에는 많은 글들이 있어서 앞으로 스티밋 사랑에 빠지게 될것만 같습니다. ㅎㅎ
문대통령님은 어린시절 활자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누나교과서, 시험지, 일간지, 광고전단지 등 닥치는대로 글자로 된 모든것을 읽었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비릿했던 피난민 마을 거제도와 그분의 활자사랑은 - 세대차이는 꽤 나지만 - 어린 시절 한자락의 추억을 소환하게 되네요. 네네~ 추억팔이 시작합니다.
추억팔이
그곳은 어둡고 작고 음습한데다 은밀한, 다락방이라 불리우는 1.5층의 세계, 미닫이문 안쪽 삐걱거리는 서너개의 계단을 밟고 서면 펼쳐지는 비밀의 장소였어요. 초등 4학년때부터 였던걸로 기억하는데요.
두껍게 먼지가 쌓인 크고 작은 박스 안에는 당시 군복무중인 큰오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어요. 어릴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수재였던 오빠의 초중고 성적표, 교과서, 전과, 참고서, 일기 그리고 까까머리 남학생 가슴을 푸르게 흔들었을만한 이쁘장한 글씨체의 쪽지들, 연애편지들... 관음적 시선의 짜릿함을 처음 경험하게 해주었던 것들.
누렇게 변색된 표지 없는 수기집들, 요상한 표지 그림의 너덜너덜한 소설책, 제목만 대도 알만한 유명 소설가의 오래된 장편 소설, 글자가 세로로 된 일본문학전집...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성장과 아픔과 절규와 도전과 사랑이 빚어내는 향연이었어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건 순수하고도 어린 가슴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성인 소설들이었어요. 선생님을 사랑한 여고생, 시한부 인생 막바지에 만난 사랑, 3류인생의 나쁜 사랑! 사랑은 대체 왜 무엇때문에! 고맙게도 난 그때 책을 통해 성에 눈을 뜸과 동시에 사랑이 인류의 평생 숙제라는걸 알게 되었죠.
땀을 쥔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문지르고서야 겨우 책장을 넘길수 있었던 스릴러 소설들 덕에 악몽을 꾸던 밤도 있었고요. 연쇄살인범, 유령, 귀신에 빙의된 아이, 골목길 묻지마 강도, 그리고 무엇보다 666 으흐흐~
마치 오랜 기간 누군가를 기다렸다는듯이 손을 벌려 맞이해주는 박스들과 손바닥만한 창으로 비집고 들어와 먼지 알갱이들을 춤추게 만들었던 주홍 석양빛, 그리고 달랑달랑 낮은 천정을 부여잡고 있는 노오란 백열등 만이 "작은 다락방의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친구였어요.
큰오빠가 복학한 후엔 책의 종류들이 더 다양해졌어요. 연애소설은 더 노골적이고 진부하고 더러워졌고 전쟁소설, 성장소설, 추리소설 등 주제가 다양해졌으며 두꺼운 시사 잡지들이 아직 다락방으로 넘어오지도 못한채 방구석에 굴러다녔죠.
복학한 큰오빠는 보도블럭 깨고 최루탄 던지는 저항의 편에, 대학 입학후 군에 간 작은 오빠는 사복 백골단으로 군부의 편에 서서, 형제가 길에서 함께 보내느라 바쁘고도 아이러니한 그 시기에, 시사잡지들은 온통 내 차지였어요. 난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게 되었고 왜 청춘들이 길에서 죽어가는지도 권력에 대항해서 얻어야할 권리가 무엇인지도 배웠죠.
어쨋든 나에겐 그 시절이 천국이었어요. 덕분에 재채기성 비염과 먼지 알러지과 심각한 근시를 얻었지만 그렇게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채 아무도 모르는 성장의 고통을 겪고 있었죠.
여러분들도 이런 비밀의 공간, 비밀의 추억쯤은 하나씩 가지고 계시죠? 그저 함께 공유해보고 싶었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오린 백열등...
살짝 어두운 아늑한 공간은 비밀스러우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전 요즘 굳이 드레스룸에 노란등으로 어두침침한 등을 달고 조용한 새벽에 사부작거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뭔지모를 쾌감이 있더라구요. 나만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라 그런가봐요. 백열등 시진을 보니 이미 편안해지네요.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호~ 분위기 참 좋겠어요. 백열등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주죠. 다만 눈이 나빠진다는 단점이... 굿밤되세요~
그러게요. 눈이 침침하긴 하더라구요 ^^
공통점이 많네요. 저도 텍스트 중독에(일주일에 1.5권 정도 밖엔 안되지만) 영화광입니다. 저는 봤던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러는 스타일이에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빌리 엘리엇>, <범죄의 재구성> 이런 영화는 20번도 넘게 본 것 같습니다.
ㅎㅎ 반갑습니다. 글자로 된건 모조리 읽어버리는 습성이 있긴 하죠 ㅋ. 전 요즘 영화를 못 따라가서 속상해요. 언급하신 빌리 앨리엇, 범죄의 재구성은 저도 여러번 봤습니다. ㅎ
하루에 1.5 편씩 5년이라니...!! 대단해요!
그쵸~ 근데 지금 기억이 안 난다는 함정이 ㅋ 영화를 한참 보다가 앗 이거 본건데 하는 경우가 많아요. ㅜ.ㅜ
@energizer000님~ 책장은 키노쿠니야 사진 같습니당^^ 정보에 욕심을 낸다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말입니다. 글을 잘 쓰시기에 보통분은 아니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공이 있으셨군요. 멋지십니다. 도서리뷰 포스팅을 올려주시면 도서리뷰 프로젝트에 리스트업 하겠습니다^^ 늘 좋은날 되십시오~^^
부끄럽습니다. 글도 써 본 사람이 쓰는건데요... 머리털 나고 자발적인 글쓰기는 처음이라 엉터리입니다. 도서리뷰 올린후에 @soosoo님 포스트에 댓글 남기면 되는 건지요...?
넵 제가 찾아다니기는 하는데 새로운 회차에 빠져 있으면 댓글로 링크를 달아주시면 제가 작업하긴 편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다락방을 아지트 삼아 학창시절을 보낸 1인이라 너무 반갑네요 :D 형들이 모은 책과 제가 모은 책이 벽장 한 가득이었죠. 그때 좀 더 많이 읽어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네요😂
어머!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ㅎ 저는 그 후로 사춘기가 혹독하게 와서 책과는 먼 삶을 살았어요. 쭉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 뭔가 달라졌을까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에빵님은 없겠죠? 저도 중간에 영화와 드라마로 빠져서 꽤 오랫동안 책과 데면데면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다 그런 시기가 있나 봐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