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스무고개처럼 느껴진적 있느냐

in #kr6 years ago (edited)

'인생이 스무고개처럼 느껴진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은 18일전 리뷰를 쓴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소울메이트님 @kyslmate의 주옥같은 답변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마지막 문장에 빨간 줄을 두개나 긋고 싶네요.

개인의 역사 안에서도 부정확한 기억- 어쩌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합리화나 의식적인 망각-이 존재하고 내가 기억하지 않더라도 내가 저지른 일은 큰 파급력을 갖고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 싶네요. 의식적인 망각, 책임의 회피, 합리화 등이 일어나려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비윤리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질러야 하죠.

의식적인 망각,
책임의 회피,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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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20대의 나의 생은 주어진 명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져놓고는 내가 맞는지 네가 맞는지 맞짱 한번 떠보자라는 시절이었죠 .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는 ‘살아남기’였습니다.

나는 20살이 되면서 호기롭게 '완전 독립'을 선언했어요. 학비며 생활비를 모두 알아서 하겠다며 천진난만하게 집을 뛰쳐나와 불과 30분거리 밖에 안되는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했죠. 보증금 없는 월세... 그렇게 불안불안한 외줄타기 같은 스무고개의 인생이 시작되었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의 문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죠. 장학금을 타서 학비를 겨우 해결하면 월세가, 월세를 해결하면 밥값이, 열심히 알바해서 밥값을 벌어 놓으면 시험이, 시험을 못보면 장학금 날라가고, 겨우 학자금 대출받으면 또 월세가, 밥값이, 시험이, 닥쳤어요.

가끔 예상치 못한 매복병을 마주할 때면, 예를 들어 과외 알바를 짤리고 월세방 주인이 방을 빼라고 했을 때나, 장학금이 탈락되었는데 학자금 융자 신청일자를 놓쳤을 때는 도저히 다른 답을 내어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럴땐 어쩔수 없이 휴학이라는 우회적인 답을 택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대학을 무려 6.5년만에 졸업해내는 쾌거(?)를 달성했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스무고개의 해답은 ‘졸업’이라고 믿었던 듯 해요. 무지개 끝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거라는 희망 하나로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달렸죠.

기억의 왜곡이라는 필터링를 거쳐 어설픈 낭만으로 포장을 마칠수 있던 당시는 아.름.답.다.라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요. ‘평균치의 삶’에서 조금은 비껴 살았다는 자기 우월감이 적당히 기억할 것과 버려야 할것 들을 잘 정리해준 셈이죠. 벼린 듯한 아픔의 기억은 뭉텅 잘려져 나갔을 수도 있고, 치졸했던 자아의 흔적은 기억 저편에 깊이 묻혀버렸을 수도 있어요. 반토막의 기억이죠. 그래서 남은건 온통 치열하고 아름답고 성공적인 것들뿐이죠. 한편으로는 아무려면 어떨까 싶기도 한게 그 시절을 증명해 줄만한 기록도 증인도 남아 있지 않은 데다가 하나씩 꺼내 들어 취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추억들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다만, 다만 말이죠. 당시에 ,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힘든 일을 겪지는 않았는지,
내 살아있는 감정을 유예하고 사람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미루고 있었던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내 모든 기억들이 '게으른 클리셰'를 위해 남겨둔 것은 아닌건지,

알수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의식적인 망각,
책임의 회피,
합리화.

의 과정속에서 내가 잃어버리고 놓친건 없는지 며칠밤을 새우며 생각해 봅니다.

학과 사무실에서 마주친 동기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잊을수가 없어요. 내가 학자금 융자 신청을 하려하자 자기는 괜찮다며 네가 하라며 손사래를 치던 그 녀석의 눈동자,,, 이후로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 친구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수가 없네요.

나는 무엇을 한걸까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中)

*이글은 2주전에 공중분해되었다가 급소생되었습니다 . 이글을 마지막으로 이젠 ‘예감은틀리지않는다’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군요. 벗어날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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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지우셨다는 글이 이거였나보네요. 충분히 소생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20대때 완전독립을 하셨다니.. 정말 힘들지만 대단한 선택을 하신것 같네요. 그로인해 생각보다 힘드셧겠지만 그로인해 지금의 제시카님이 있는거 같습니다.

지금 저도 많이 힘들지만 .. 과연 이 상황을 미래의 제가 아름답다고 보게될지 .. 잘 모르겠네요 ..

네. 지우고 나서 보니 이메일에 떡하니 있길래 올렸어요. 그때 보던만큼 별루네요 ㅋㅋㅋㅋㅋ 아시나요님은 매일을 열심히 사시니까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아름답게 보이실거여요! 홧팅!!!

왠지 에빵님의 글을 읽고 나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책은 쉽게 손대면 안될 금서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ㅎㅎ
지나고 나면 추억... 은 아닌게지요... 엄밀히 따지면 의식적 망각, 회피, 자기 합리화가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ㅠㅠ

아녀요 아녀요! 제 지인에게도 그책을 읽게 했는데 저하고는 다른던걸요. 제가 이상하게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렇지 이상한 책 아닙니다 ㅋㅋㅋㅋ 읽어보세요. 인생의 통찰이 담겨있어요.

하루하루가 하나의 고개를 넘어가는게 삶이 아닐까 싶네요!
지난 과정속에서 잃어버리고 놓친걸 굳이 찾으려는 이유가 있을까요? ㅎ 앞으로의 시간이 더 소중한 에빵님의 삶인걸요~

그렇죠! 독거님 말씀이 맞습니다! 정신 좀 차려야겠어요. 벌써 며칠째인지... 휴! 뒷통수를 한대 쳐주실래요. 정신차리게!(우리 아저씨 대사랍니다) ㅋㅋㅋ

시험을 못보면 장학금이 날라가고

시험을 못보면 장학금이 날라가고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 좀더 해보고자 과외알바를 줄이면 생활비가 부족하고ㅠㅠ 저도 그런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쩔수없이 밤새서 공부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저는 스무고개 어디쯤 있는걸까요 과연 목적지는 어디일지. 궁금합니다ㅎㅎㅎ

아... 그러셨군요. 옛생각 문득문득 많니 나겠어요. 누구에게나 치열했던 때가 있는 듯합니다. 인생에 과연 목적지라는게 존재할까 모르겠습니다. ㅎㅎㅎㅎ 그냥 사는거죠! 인생 뭐 있어! ㅋㅋㅋㅋㅋ

대단하시네요. 대학시절을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해서 보내셨네요.
강하십니다. 정말 강하세요.^________^

겉으로 강한척 하느라고 그래서 그때 별명이 독종이었답니다 ㅠㅠ 제일 안 좋아하는거죠 ㅠㅠ

그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더 에너지를 뿜뿜 뿜어내시면서 살아가는게 아니실지..... 벗어나실수 있으실 겁니다.... 진짜 그렇게 힘들었던 때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될 수 있게끔요 ^^

잘 포장해서 어디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 할까봐요. 가끔씩 아주 가끔씩만 꺼내보는 것도 괜찮겠죠? ㅋㅋㅋ

그런 힘들 지만 값진 경험들로 지금의 생각이 많고 깊은 에빵님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요?

생각이 많고 깊다니요 ㅋㅋㅋㅋ 반대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그냥 즐겁게 살아요, 우리! ㅎㅎㅎ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에빵님을 몇 주 동안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다니!
궁금해 미치겠네요.^^

꼭 읽어주세요! 플로르님 ㅎㅎㅎ제가 좀 이상해진거 같아요 ㅋㅋㅋ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힘든 일을 겪지는 않았는지,
내 살아있는 감정을 유예하고 사람들과의 진정한 관계를 미루고 있었던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내 모든 기억들이 '게으른 클리셰'를 위해 남겨둔 것은 아닌건지,

알수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의식적인 망각,
책임의 회피,
합리화

의 과정 속에서 내가 잃어버리고 놓친건 없는지 며칠밤을 새우며 생각해 봅니다.

이번주 제게 던져진 숙제네요. 잘 생각해봐야겠어요. ^^

숙제도 내주는 힘센 누나 ㅋㅋㅋ

그리고 예쁜 누나~ ^^

에빵님 벗어날 수 있으신가요?
저는 이제 벗어날 수 없어질 것 같아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조금은 두렵지만 '정면돌파!' 도전....해도 될까요?
불안불안...

많이 가벼워져서 글을 올릴수 있었어요. 많이 벗어났다는 뜻이죠. 오늘도 운동으로 영혼 털고 왔더니 힘이 넘치네요. 도담랄라님 책 도전해보세요. 제가 느끼는 건 극히 주관적이라서 다른분들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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