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미술관-신여성도착하다]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 마시오.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탐험을 계속하시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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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사랑에 빠지는 일이라든가
결혼이나 양육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아주 어릴 때도.
부모님은 내가 선택해야 할 직업에 대한 얘기만 하셨지.
실내 장식가라든가 변호사라든가 뭐 그런 거 말야.
내가 아빠한테 ‘작가가 될래’이러면 아빠는 ‘언론인’
내가 ‘집 없는 고양이들을 보살필래’이러면 아빠는 ‘수의사’
내가 ‘배우가 될래’ 그럼 아빠는 TV앵커우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의 비현실적인 야망을 소위 잘 나가는 직업에 연관시키셨어.’
-BEFORE SUNRISE 대사 중에서.

요즘 여자이면서 외동딸인 나는 어릴적부터 엄마에게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종가집 종손인 아빠는 자식은 딸인 나 한명으로 만족하다며 시골집에 선언을 하셨고,
이후 그 원망의 절반은 나에게 돌아왔다(절반은 엄마에게로).
시골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은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아 나를 못쓴다고 하셨고,
부모님은 남자보다 더 멋진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는지 태생이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8명의 손자손녀 중 가장 활발한 손주이자 딸이 되었다.
“너 왜 고추 안달고 태어났냐”라고 묻는 할아버지들을 피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여자도 멋져요!”라며 할아버지의 남존여비 사상이 틀렸다며 논쟁,토론을 벌였고,
나무 베러갈때, 고추농사,벼농사 할때도 손자녀석들보다 더 많이 참여하고, 잘했다.(물론 재밌어서)
엄마아빠에게도 뭔가 씩씩해보이려 애를 썼던것 같다.
그러다 크게 상처를 받은 적이 기억이 있는데…
아빠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셔서 “나도 나도~”라며 신나게 아빠와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여자애라 그런가, 부엌일에 관심이 많아”라며 쯧쯧 혀를 찼다.
말그래도 충.격. 이였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던 해에 나는
오늘날 사회에 부합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페미니스트적인 여자’로 사는걸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그저 ‘나다운 나’가 되는데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100여년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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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에서
만나본 수많은 조선,대한제국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는 현모양처가 되어서 조신하게 살아야 가치가 있다.”
“여자가 뭐하러 글을 배워!”
“남자는 첩을 둘셋을 둬도돼. 그치만 내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하다”
“딸은 나면서부터 남의 것,하루라도 빨리 치우는게 이익이다”
"여자란 병풍 속에 그린 닭같이 인형의 집 안에 고요히 들어앉아서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것이다."

조선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많은 여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여성들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의 나’가아니라
‘나다운 나’로써 살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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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을 울린 작가는 나혜석(1896-1948)화가이다.
최초의 여성 일본 유학생.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최초의 이혼 여성. 3.1독립운동가.
나혜석 화가에게는 참 많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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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설명: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가는 신여성을 두고 남자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저것이 무언인고?’,’서양의 양금이오.’ ‘앗다,그 기집 건방지다.저것을 누가 데려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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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소설 [경희]는 춘원 이광수의 [무정]보다도 인기가 많았을 정도로 성공을 하였다.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고, 서양화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5천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으며
그림은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
남편을 따라 만주로 갔을때에는 김원봉에게 자금을 송금하는 듯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여성으로서,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목소리와 정신을 잘 표현한 그녀가 참 멋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혼 후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절과 양로원등을 전전하며 결국 무연고자로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게된다.그녀는 자신이 사회제도와 인습에 희생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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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전시실에서는 여성 최초로 창작무용을 발효한 최승희.
조선민중의 심금을 울린’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그리고 1세대 여성문학가인 김명순은 탁월한 재능을 지녔으나 첩의 딸이란 이유로 시대에 외면을 당한 작가 등 그녀들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20세기 중반부터 동경 여자미술학교 출신들이 자수 전공을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약을 한다.
자수 전공자에겐 교사 자격증을 주기 때문이였다고 도슨트 설명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가 여성 예술가가 먹고 살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지 않나 싶다.
하지만 해방 이후 자수가 회화와 조각이라는 미술의 주류에서 밀려면서
역사 속에서 누락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은 그저 힘들고 불행했냐고? NO, 아니.
사회에서 뭐라하건 있는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진심어린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노라고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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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화가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오래가며 깊어지고 함께 성장하는 사랑
한낱 어리석고 어리석은 꿈이라며 핀잔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실제로 있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의 사랑이야기 중에서

2018년을 사는 여인인 나에게 덕수궁미술관 속 그녀들은 이렇게 말해주는것 같다.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 마시오.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탐험을 계속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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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보람있게 보내셨네요.
나혜석 평전과 춤꾼 최승희를 읽었어요.
폐쇄적인 시대를 살아낸 대단한 여성들에
감탄했었죠.
좀 나아진 시대인가? 아직도 먼것 같아요.

근대에 살던 여성분들의 활약을 보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해요. 나혜석 화가는 많은 그 시대에서 많은 틀을 깬 신여성이라는 대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때도 있어요.
21세기에 사는 현재지만 ... 페메니즘에 대한 시각이 아직도 비슷하게 남아있다는 것에 대해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라는걸 느껴요
(아이린의 책 발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엄청 충격적이었거든요)

수원의 나혜석 거리가 생각나는 포스팅이네요
뛰어난 여성, 멋진 남성보다는 나다운 내가 되고 싶은 건데 그게 훨씬 어렵던 시절 이야기군요
덕분에 전시 보고 온 것 같습니다

!!! 힘찬 하루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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