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15.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슬펐다 : @dianamun @yslee

in #kr6 years ago

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15.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슬펐다

글 : @dianamun
그림 : @yslee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와 사귀게 되었을 때, 그는 나의 이름 대신에 연인끼리만 쓸 수 있는 애칭으로 나를 불러주었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다. 그건 마치 처음으로 맛 본 오렌지 같았다. 귤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값은 더 비싸고, 귤처럼 쉽게 까지지도 않는. 하지만, 오렌지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너무 맛있는. 새로 생긴 나의 애칭은 그만이 부를 수 있었다. 그는 날 그렇게 부를 수 있지만, 다른 어느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좋았다. 특별하고, 유일하고, 무엇보다 내가 참 아름다워지니까.

어느 날, 우리는 싸웠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싸웠고 서로를 할퀴기 시작했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 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대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한 번 싸우는 건 어렵지만,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노력할 줄 몰랐다. 그저 사랑하는 감정이 늘 우리를 지배하여 충만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에게 충만하던 사랑은 방전된 배터리처럼 우리를 지탱해주지 못했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싸우기 싫다고 이야기했다. 괜히 싸워서 시간 낭비하기 싫다고. 그도 똑같이 이야기했다.

"나 너랑 싸우기 싫어"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싸움을 피했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곪아가는 줄 몰랐다. 싸우고 상처가 나더라도 아물 수 있도록 연고도 발라주고, 반창고도 붙여줬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버거워했고, 버거웠던 마음은 우리를 갈라놓았다.

어느 날, 그가 나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 어떠한 애정도 담겨있지 않은, 날 것의 내 이름 그대로 나를 멈춰 세웠다. 그가 뒷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슬픔이 귓가에서 새어나와 허공으로 흘러들어갔고, 나는 그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왔다. 우리는 헤어졌다.

내 생애 단 한 번도, 나의 이름이 슬펐던 적은 없었다. 너무 흔해서 개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 번도,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슬픔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그가 남겨놓고 간 나의 이름은 내게 슬픔으로 남아있다. 반짝였던 나를 한 순간에 흙빛으로 만들어놨고, 맛있는 오렌지 같던 나의 애칭은 이제 어느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그림자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도, 찾지도 못하는 그림자 말이다.


@yslee 작가의 시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슬펐다.jpg

애칭은 둘만의 열쇠입니다. 나에게만 불러주던 애칭이 모든 사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변하는 순간 애칭이라는 열쇠를 통해 빛나던 관계는 불이 꺼지고 함께였던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분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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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날도 있고 행복한 날도 있고.... 자아를 찾는 여행이지 않나요? ㅎㅎㅎ지나가다 들려봅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정성글에는 추천입니다.^^

응원합니다 ^^

너무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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