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재미있는 여행기의 정석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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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야기다. 만화 밖에 모를 것 같았던 녀석이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빽빽한 소설책을 읽기에 "네가 그런 것도 읽느냐"며 놀라워 하자, 그 녀석이 "사실 얼음과 불의 노래보다 더 재밌는 책이 이거"라며 권한 게 바로 나를 부르는 숲이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여행이야기가 소설책보다 더 재밌을 수 있는지. 그래서 대충 주르륵 넘겨보니 문자가 빽빽하다. 표지를 보니 대충 산을 타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고통 밖에 없을 것 같은 산 타는 이야기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어 하면서도 일단 읽기 시작했다.

뭐, 결국 그런 나의 예상은 첫 페이지부터 틀렸다. 사람들이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개콘을 보며 웃는 빈도보다, 이 책을 보며 빵빵 터지는 내 웃음의 빈도가 더 높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다. (요즘은 그의 저서인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읽고 있는 중이다. 쉬운 책은 아니라서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다.)

사실 이 여행기라는 게 대단히 허들이 높다. 왜냐면 여행을 하는 건 본인이 해야 재밌는 거지,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재밌기가 쉽지 않다. 내가 혼자 간직할 목적이라면 말 그대로 '기(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남들이 재밌게 읽게 만들려면 단순히 사진을 찍고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에 코멘트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거울 신경을 작동시켜 대리 체감을 주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먹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건 푸드 포르노라고 불릴 정도로, 그 맛이라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이 간다. 먹어본 적이 있고 맛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건 어떤가. 사진만으로, 혹은 글자만으로 그걸 전달할 수 있을까? 그나마 동영상 정도는 되어야 기본적인 체감을 전달할 수 있다. 그 외의 사진과 글자만으로 여행의 재미를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심지어 요즘 시대에는 그런 게 너무 흔하기도 하다.

때문에 여행기가 재밌으려면 ‘나를 부르는 숲’ 정도로, 정말로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위트가 넘쳐서, 내가 여행해도 저것보다는 더 재밌을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으면 힘들다.

여기에 바로 핵심이 있다. 여행기의 핵심은 사진이 아니다. 그 체험의 놀라움 자체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서 제대로 전달하는가가 핵심인 것이다.

굳이 문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미지로 표현해도 된다. 뭐가 됐든, 어쨌건 그 즐거움을 '전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여행기를 읽으며 즐거울 수 있다. 그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의 여행은 남의 이야기로만 남게 된다.

때문에 단순히 정성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재밌는 여행기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봐도 분명한 재밌가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문장력은 당연하고, 거기에 평범함마저 비범하게 꾸밀 재치도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미지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하고 글도 잘 써야 한다. 잘 쓴 여행기는 그렇게 단순한 사진 기록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 모든 일정과 사진의 마디마디 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나 할까.

돌려 말한 것 같다. 단순히 말하자면 이렇다. '재밌는 여행기를 쓰는 것은 재밌는 소설을 쓰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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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행기도아니고 숲.등산 이야기인데도 깔깔 웃을정도면 어느정도 수준일지 가늠이안가네요ㅋㅋ

꽤 고오급진 문장을 구사합니다.
미국식 유머라고나 할까.. 안맞는 분도 있겠네요..

나를 부르는숲 한번 읽어보고싶네요 ㅎㅎㅎㅎ
일단 표지부터 너무 귀엽고 자연에서 겪은 일들이 펼쳐질것 같네욤 ㅎㅎ

베스트 셀러는 다 이유가 있지요. 두 세번 읽으면 문장력도 어마어마하게 늘게 됩니다.

대단한책이네요. 과학을 재미있게 전달하려는 제가 꼭읽어야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바로 가서 사야겠어요. 쿸쿠 다음 @dakfn 글에서 인증할께요~~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아마 저 책에 더해서 이책이 님이 추구하는 책일 겁니다.

:) 감사합니다

작가랑 친구 케미가 아주 그냥 빵빵 터지죠. 영화도 나왔는데 혹시 보셨나요? 책하곤 또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오, 그래요?
ㅎㅎ 기대되는군요.

나를 불렀어요?
나도 여행기 쓰고 시포~~~ㅠ

ㅎㅎ 그러려면 글을 '매우' 잘 쓰셔야 됩니다.

하악~~~그람 여행안해도
글잘쓰면 되는구나요 ㅎㅎ

글 잘 쓰는 사람은 여행기를 쓰든
방구석에서 코딱지 판 이야기를 쓰든
다 재밌습니다.

아 ...저가 코따지 파기 전문인디?
귀신이네
어쩨 아셨대효~~~?

자연스레 공감을 끌어낼수 있는 능력~ 갑자기 책이 너무 궁금해집니다 ㅎㅎ

읽어보시면 딱 1페이지 만에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아니... 1페이지는 아니고.. 하여튼 좀 읽다보면요.. ㅎㅎ

읽는 내내 괜히 찔려서 '@dakfn님이 나를 저격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요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표현하는 문장력 그리고 소통이었는데, 이를 위해서 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묘사를 세밀하게 한 것으로 생각했던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을 읽기 시작했어요. 글쓰기 연습을 하던 게 아니라서, 바로 바뀔 리는 없겠지만. 저도 문학의 재미 좀 느껴보려고 합니다.

한 번 추천하신 책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님 아닌데요. ㅎㅎ
님 정도면 꽤 준수한 편이죠.
이 책은 무엇보다 전 세계급 베스트셀러니까요.
혹시 님이 그 정도라는...? =_=;;;
님이 저 책정도 쓰시면 그 책 팔아서 번 돈으로 100만스파 고래도 가능할 겁니다.
ㅎㅎ

굳이 저격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진에 딸랑 재밌었다 멋있었다 좋았다 맛있었다.
이렇게 쓰는 분들일 겁니다.
ㅎㅎ

굳이 조언드리자면 세밀한 묘사보다
감각적인 묘사가 낫습니다.

잉 장난이죠 ㅎㅎ 제 말은 다크핑거님 글 보고, 찔렸다는 얘기였습니다 ㅎㅎㅎ

개콘보다 재미있다구요?ㅎㅎ
몇문장만 보여주세요!!

오래 전이라 저도 기억은 잘 안납니다.
그냥 그렇게 웃기고 재밌었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스 이십사에서 미리보기로 좀 보니...
추억보정이 좀 들어간 거 같긴 합니다. ㅎㅎ
그래도 재밌는 책이니 직접 읽어보심을 권합니다.

읽게된다면 후기 남길게요~

글쓰기는 어려워요 ㅎㅎ 문장력 감각 재치는 저랑 먼거같지만 그래도 화이팅! 오늘도 좋은 말씀 보고 갈께요 ㅎ 좋은주말되세요 ㅎ

재치 있는 글을 많이 보고 접하면 재치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ㅎㅎㅎ

직접 다녀온 곳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서 보거나, 반가운 마음에 여행기를 읽게되서 좋은데, 반면 아주 낯선 곳은 '다음 여행지로 참고해야겠다'정도 인 듯해요~ 이런 점을 보완하며, 전성기의 개콘보다 빵빵터지는 여행기 책이라니~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써 너무 기대되는 책인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님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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