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 - 공익근무요원 생활
이 글은 나의 이야기 (2)에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인 징병신체검사. 일명 신검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병사용 진단서와 함께 고등학교 2학년 때 받은 1년간의 통원치료 기록을 제출한 나는 '심리적 발달장애와 소아청소년기 장애' 사유로 신체등위 4급 판정을 받았다. 2011년에 법이 개정되어 정신 관련으로 4급 판정을 받은 사람은 기초군사훈련과 예비군을 면제받지만, 내가 판정을 받은 시기는 그 전이어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고 예비군 편성대상에도 들어가있었다. 다만, 예비군은 2015년에 터진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개정되어 정신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은 훈련을 받지 않게 되었다.
성격도 사연도 많은 나인지라 4주 훈련도 큰 난관이었다. 쉽게 말하면 폭탄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에게 중도 귀가조치도 내려졌을 거라고 본다. 다행히 훈련소 동기들과 조교님들, 교관님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훈련을 마칠 수는 있었다. 훈련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못 사건'이다. 유격훈련 중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녹슨 못을 주웠다. 그때는 고된 훈련 때문에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있을 무렵이었다. 못을 보고 순식간에 많은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못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조교님이 나를 불러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자해 시도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불려 나온 나는 경황 없이 횡설수설했다. 관심훈련병으로 찍힌 계기는 그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훈련을 마치고 근무지를 배치받았다. 덕진구청이었다. 정확히는 덕진구청 건설과 재난방재계. 2년 동안 한 일을 간략히 말한다면 민방위 훈련 관리 일이다. 민방위 소집훈련 대상자에게 통지서를 보내고 훈련일에는 민방위 훈련장인 덕진 예술회관으로 출근해서 진행보조 일을 했다. 야간에 훈련이 있는 날은 야근도 했다. 이후에는 훈련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필증을 동별로 분류해 주민센터로 넘기고, 이쪽에서 관리하는 직장민방위대의 경우에는 직접 훈련 참가 기록을 남기는 일도 했다. 건설과 전체의 우편물 발송 업무도 자원해서 맡았다. 그런대로 일을 잘 해나갔고, 주사님과 계장님과도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2년 동안의 공익 생활을 마치고 소집해제날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왔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은 처음부터 그때까지 변함이 없었는데, 내 후임을 맡아줄 사람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소집해제에 관계없이 내가 후임이 들어올 때까지 며칠 정도 일을 계속하면서 후임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후임이 없는 상태로 나는 소집해제일 날 구청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날, 구청 직원분들께 인사하고, 제2의 근무지였던 덕진 예술회관도 따로 찾아 훈련 진행을 위해 나와계신 완산구청 직원분들과, 친해져있었던 예술회관 직원분들께도 인사했다. 떠나기 전, 누군지 모를 나의 후임을 위해 기본적인 업무와 우편 발송 일을 간략하게 적어둔 A4용지 1장 분량의 메모를 만들어서 책상에 남겨두었다. 후임으로 온 사람과는 소집해제로부터 대략 2개월 이후에, 당시 주사님과 계장님의 도움으로 만나서 이야기했다.
또다시 찾아온 불금!! 힘내세요!!곧 주말이에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