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 - 대학 생활과 다이어트

in #kr8 years ago

이 글은 나의 이야기 (1)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전북대학교 인문학부를 지망하였고, 합격하였다. 그 당시에는 취업률이나 평판 같은 것에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걸어서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 보고 전북대학교를 선택했다. SKY니 인서울이니 하는 것들은 아예 머리 속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텅 비어있었다. 그저 하루하루 무사히 살면 족한 상태였다. 수업시간은 최대한 타이트하게 짰고, 그 이외의 시간은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방학에 들어갔을 때는 대략 2달 동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교내 행사에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학교와 집을 왕복하는 일상이었다.

당시 전북대학교에는 '평생지도교수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치 이상의 학점을 따는 것 외에 담당 교수님과 1년에 대략 4번 정도 면담을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나와 담당교수님의 대화는 항상 겉돌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적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두고 나와 교수님의 생각이 엇갈렸던 데 있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적응'의 의미는 '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어떤 신체 정신적 상해를 입지 않은 상태'를 의미했다. 하지만, '적응'이라는 말의 뜻은 그것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나, 취업, 진로 같은 여러 의미가 내포된 단어인 것을 당시의 나는 몰랐다. 그저 하루하루 수업 듣는 기계가 되어 적당히 성적을 내면서 버티는 생활. 그것이 나의 대학생활이었다.

그래도 대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바로 다이어트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건 2학년을 마쳐갈 때 즈음이었다. 당시 윤리학 학점을 따기 위해 헌혈을 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방간 위기 상태였던 것이다. 부모님의 권유도 있었고, 공익근무요원 입대를 준비하던 때이기도 했다. 공익이라도 4주동안 기초군사훈련은 받아야 한다. 훈련에 버틸 체력을 만들기 위해 나는 근처의 헬스클럽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 근무지 배치 경쟁도 온라인 수강신청 수준으로 치열한 경쟁이었고, 그 경쟁에서 나는 밀려났다. 원래는 4주 훈련 때까지만 다닐 생각이었던 헬스클럽은 그냥 계속 다니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당시 11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68kg까지 줄었다. 지금은 요요현상 때문에 다시 20kg 정도 살이 붙은 상태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보다는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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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비입니다~~
시리즈로 연재되는건가요?ㅎ 재밌을 것 같아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 팔로우하고 갑니당

감사합니다. 맞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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