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 예술의 원천은 무엇인가?

in #kr7 years ago (edited)

오스카 아이삭 만세! 만세! 만세!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아닌 배우의 탁월함을 감히 칭송했던 적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의 하비에르 바르뎀 뿐이었다. <인사이드 르윈>을 보기 전 까지는.

오스카 아이삭은 우수에 찬 쓸쓸한 눈을 가진 젊은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일상과도 같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너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매일 밤 몸을 누일 거실 소파를 찾아 전전긍긍하지만 자존심 만은 빳빳하게 살아있었던, 언젠가 어디선가 보았던 그 젊은 날의 내 친구... 내 친구의 친구이거나 내 형제였던 혹은 내 형제의 친척이었던 그 젊은 예술가.

영화는 말한다. 어차피 인생의 여정이란 시작과 끝이 같지 않으냐고. 입술이 터져 뒷골목을 뒹구는 우리의 르윈은 어느 날, 어떤 상황, 어떤 동기에 이끌려 다시 기나긴 여정에 오를 것이다. 율리시스의 모험처럼 장엄하고 영웅적이며 곧 전설이 될 여행이라는 착각과 함께. 그는 범죄와 마약에 찌든 예술을 논하는 삼류 인생들 틈에서 쩔쩔매다가 이내 자신이 제임스 조이스의 허상에 속았고 이 허망한 여정이 끝도 없이 피곤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속물 앞에서 고독한 탄생을 맞이한 Queen Jane의 아이를 위해 애도의 노래를 부르고, 이 여정의 끝에 상처뿐인 자신을 마주하며 절뚝거릴 것이다. 그는 지쳤다. 어디에도 오디세우스는 없다. 그래서 그는 이 지리멸렬한 여행을 끝내고 결국엔 바다를 누비는 선원이 될 것이다. 그의 내면을 괴롭히는 Queen Jane의 아이를 찾아서 다시는 속물 앞에서 벌거벗은 내면을 드러내며 애도곡 따윈 부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항구의 싸구려 선술집에서 술에 취해 기타 줄을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말할 것이다.

"포크송 따위는 밥 딜런이나 부르라지. 어차피 다 같은 포크송 따위."

영화 속에는 멍청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예술 소비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예술가의 내면이 하룻 밤의 거실 소파나 한 끼의 죽 한 그릇과 흥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예술가들의 레코드를 사주고 예술성을 인정해주며 칭찬하고 돈을 주고 잠자리를 주고 밥을 먹여주는 우리들. 가난하고 방황하는 젊은 예술가를 거둬주고 한없이 관대한 바로 우리들.

<인사이드 르윈>은 예술의 원천이 오직 예술가의 내면이라 점을 상기시킨다. 예술은 예술을 행하는 사람의 전유물이며 오직 예술가 자신을 위한 것으로, 공감하는 것은 모든 타자의 개별적 몫이다. 

우리는 그저 세상의 비바람을 맞고 자신 만의 꽃을 피워낸 그 내면을 보면 감탄할 뿐이다. 예술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 단지 가난한 예술가와 그저 입에 풀 붙이는 예술가와 돈 걱정 없는 부유한 예술가와 "나는 예술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예술가가 있을 뿐이다.

영화에서, 고양이 오디세우스(율리시스)는 돈과 교양을 가지고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집에 기거한다. 이 고양이는 모험을 좋아하는 감금 당한 고양이로써, 시도 때도 없이 탈주를 시도하다가도 배가 고파질 때면 집으로 돌아오는 영악한 고양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를 고안했듯이 이 고양이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의 내면에 침투해서 그들을 홀려서 긴 여정을 떠나게 만드는 제임스 조이스의 허상이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매혹되어 또 다시 긴 여정에 오른 이 시대의 젊은 예술가들. 어디선가 배를 곯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난을 각오하지 않으면 예술을 할 수 없다지만, 과도한 절망에 그들의 내면이 말라비틀어지지는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밥 딜런이 될지 선원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당신의 노래로 자신의 절망을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뒤늦게 코엔 형제의 영화를 감상했다. 앞선 내용으로 감독을 향한 극찬을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시가로 열연한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양해를 구하며.

미안하네. 하비에르 바르뎀. 

나는 오늘 오스카 아이삭을 위해 만세 삼창을 할 수밖에 없다네.

젊은 예술가 르윈. 만세! 만세! 만세!


<르윈이 부르는, The death of queen jane>

https://youtu.be/5KnlEuOqF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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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렇게 좋은 글에 무플이라닛... 영화가 심드렁해서 그런가? 나는 그 심드렁함이 너무너무 좋던데 말이죠...ㅎㅎ 3년전인가요? 인사이드 르윈이 개봉하던 당시 써둔 심드렁한 제 감상글이 어디 있을 텐데... 찾아봐야겠네요.ㅎㅎ 카비님 비평글들 재밌어요~! 봇/리 하겠습니다~

헤르메스님. 이런 댓글은 정말 위로가 되는군요. 어찌보면 이런 단순한 이유가 아닐지. 살아서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은 말입니다. 인사이드 르윈 감상글. 헤르메스님 버전 정말 기대됩니다. 꼭 올려주십시오!!

1000자 짜리 짧은 영화소개글 써달라기에 영화 분위기에 맞게 정말 심드렁하게 쓴 글이예요...ㅎㅎ 찾아보고 있으면 올려드리긴 할 텐데... 불친절해서 실망하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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