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뭐가 나빠?

in #kr6 years ago (edited)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을 네 부류로 나눴다(고 한다). 아주 쉽게 표현해 절대선인/절대선은 아닌 자, 절대악은 아닌 자/절대악인이다. 그러니까 양 끝에 아주 착한놈과 아주 나쁜놈이 있고, 중간에 조금 착한놈과 조금 나쁜놈이 있다. 이들이 갈 사후세계도 각각 네 곳이었다. 천국과 지옥, 천국에 가까운 곳, 지옥에 가까운 곳.

이것은 아직 중세 기독교의 기틀이 잡히기 전의 생각이었다. 중간 집단은 나중에 하나로 합쳐졌다. 어중간하게 착한 집단은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은 사람’(우리들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될 테다)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이들이 갈 곳은 새로 고안된 ‘연옥’이란 곳이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면서 지옥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었다. 이들은 지옥의 영벌을 면했고, 아직 희망이 있어서 시간이 흐른다면 천국에 갈 여지가 남아 있었다.

중간지대로서의 연옥은 가톨릭의 고유 관념이다. 관심 있다면, 중세 역사학의 대가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을 읽어보자.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서양 성인들과 기사들, 왕들의 이름들이 넘치다 못해 쏟아진다. 엄청나게 길고 지루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아는 척 지수가 10포인트 증가할 것이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읽어보기를.

아무튼, 중세인과 교인들에게 지옥은 무시무시한 곳인가 보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종교를 믿게 하는 출발점이었고, 지옥에 대한 공포는 어린아이까지 사로잡는다.

http://www.insight.co.kr/news/151563
(돌아가신 아빠가 천국에 못갔을까봐 걱정하는 아이에게 교황이 한 위로 )

링크는 참 감동적인 일화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지옥이 뭐가 나빠?! 내 진심이며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에 미친 머저리 4인방, 부인을 감옥에 보낸 야쿠자 보스와 그 딸, 짝사랑에 빠진 괴짜 야쿠자 두목, 야쿠자의 딸과 위험한 사랑에 빠진 찌질남, 등등이 얽혀 한바탕 신나게 놀아난다.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죽이고 팔다리를 자르고 피를 뽑아내며 신나는(!) 지옥도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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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미친 연출력에 미친 영화다. 일본의 천재감독 소노 시온이 찍었다. 아방가르드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때로 리얼리즘까지 소화하는 괴짜/천재 감독이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만화 같은 상상력도 무리 없이 버무려낸다. 가끔은 눈물을 뽑아내는 엄청난 감독이다. 본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도 눈물 날 만큼 재밌다.

다시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옥이 뭐가 나쁜가. 그럼 천국은 좋은가? 아침부터 새벽기도에 나가 찬송가를 불러야 할 천당과 개성만점 악당들이 어울리는 지옥, 어디가 좋은가? 난 지옥을 택하겠다. 지루하지만 편안한 천국과 신나지만 괴로운 지옥. 나라면 화끈한 지옥을 고르겠다. 천국에 가면 늘어지는 하품 속에 우울증이 생기지는 않을까?

천국과 지옥 양쪽의 장점을 취한 공간은 없을까? 신나게 북적북적 놀아대며 지루하지 않고, 서로 응원하고 북돋아주는 곳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어중간한 곳은 있다. 위에서 말한 연옥이다.

지옥과 닮은 모습이지만 희망도 있다. 한번 가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지옥과는 다르다. 구원의 여지가 있다. 지옥에 가깝지만 최소한의 희망은 있는 곳,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바로 헬조선이다.

지옥이 뭐가 나빠, 헬조선이 뭐가 나빠? 로 바꾸겠다. 한국은 참 역동적인 사회다. 그래서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했다. 헬조선에는 지옥의 어둠과 한편으로 쾌활한 역동성이 있다. X 같지만 아직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쥐꼬리만한 정의도 있고, 적폐를 해결할 올바른 공권력도 살아있다. 통일 가능성도 새로 열렸다. 즐겁지 아니한가?

지옥이 뭐가 나빠? 천국은 뭐가 좋아? 헬조선이 뭐가 나빠? 그리 나쁘지 않고 괜찮은 것 같다. 유사 이래 지상낙원은 존재한적 없으므로 적당히 만족하기로 하겠다.

성격과 장르에서 천양지차인 <연옥의 탄생>과 <지옥이 뭐가 나빠>를 같이 소개했다. 책 쪽은 불멸의 대작, 영화 쪽은 수작 정도 된다. 둘 다 집어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20포인트쯤 증가할 것이라 믿는다. 둘다 볼 시간이 없다면 링크에 건 동명의 OST 곡이라도 들어보자. 커버곡이지만 좋다. 종교적인 언급은 단순 재미로만 접근했으니 불쾌함 없기를 바란다.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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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비빔밥 같은 글이군요. 마지막에 남은 고추장 양념 한 방울까지 맛있게 읽고 갑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이민자들이 하던 얘기가 떠오릅니다. "한국은 재밌는 지옥이고 호주(버전에 따라 미국, 독일,캐나다로 바뀌기도 함)는 재미없는 천국이다"

오오 그 비싼 육회비빔밥이라니ㅋㅋ 중구난방인 글을 좋게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맛나게 읽으셨다니 더 기쁘네요. 전 집에서 비벼먹는 고추장밥 정도를 생각했거든요. ㅎㅎㅎ 가치평가와는 별개로 재밌는 지옥이란 말은 참 맞는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요. 요샌 국뽕 맞을 일도 많아서 꽤 행복하고요. ^^

방문 감사하고 저도 자주 찾아뵐게요^^

넵 감사드립니다. 자주 소통했음 좋겠습니다~~

고통의 근원이 다 생각에서 온다는 말이 떠오르네요ㅋ
그릏네요. 헬조선이 어떻고 지옥이면 뭐 어떻습니까ㅋ
천국이라고 마냥 좋을지는 모를 일이져!

옳은 말씀입니다~ 헬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헬이 되는 것이고 반대라고 생각하면 천국이 되는 것이겠죠. 천국에 따분함이 존재한다면 마냥 좋은 건 아닐 것 같아요. ㅎㅎㅎ 댓글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헬조선도 뭐 나쁘지만은 않네요 :)

그런것 같아요ㅋㅋ 헬조선이 헤븐조선이 될지도 모르겠고요ㅋ

저 책과 영화의 조합은 뭔가 역시 콜빅님다운 조합의 탄생이란 생각입니다. 헬조선(?)일지라도 이렇게 함께하는 분들이 있어 재미있게 경험해 보는 거겠죠.
천국이라도 혼자 있으면 무슨재미겠어요!!

(글 안쓰신다고 성화만 해 대고 와보니 글을 세개나 올리신 후에야 본, 지각한 씽키 드림)

한가지만 진득하게 리뷰하기엔 제 내공이 모자라 이것저것 섞어 쓰는 중입니다. ㅎㅎ 헬조선 담론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 이것 또한 좋은 일 같습니다. ㅎㅎ 진짜 헬은 아닐테고, 심심한 천국보단 나은 점도 있겠죠ㅎㅎ 반쯤 스팀잇을 접었다가 씽키님의 관심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ㅋㅋ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오타로 생겨났어요.ㅋㅋ 콜드빅, 콜빅, 콜벡 정도로 부르시는데, 어차피 정해진 발음이 없으니 편하신대로 부르시면 되겠습니다. ^^

흑흑 진짜 접으려는 마음이 있으셨던 거였군요. 스팀잇은 개인연락처 메일 아무것도 연락이 안되니 이런 마음으로 안나타나시면 진짜 조용히 사라지시는 경우도 있을거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요 ㅠㅠ
부디 접으시더라도 소식은 부탁드립니다. 개인사정이라는게 있어 강요(?)야 할 수 없는거겠지만 그래도 그냥 사라져버리시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ㅠㅠ 콜빅님!!! (아이디가 오타로 생겨나셨다니 닉네임 챌린지때 지목을 해 드렸어야 하는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심 보여주셔서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ㅎㅎ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하지만, 일단은 다시 할 것 같습니다. 1일 1포스팅은 부담이 되어서.. 1주일에 4-5 포스팅만 하려구요ㅋㅋㅋ방금도 새 글 올렸구요. 나중에 비슷한 챌린지나 더 좋은 기회가 있을테니 그때 지목 부탁드리겠습니다. ㅎㅎ 아무튼 스팀잇엔 좋은 분들이 많아 얻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같이 게임을 한다는 기분으로 스티미언 분들이 명성 업과 스파 업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야겠어요~

콜빅님 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써 주시는 이웃 분이 사라지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1일1포는 바라지도 않습니다.(제 기준으로서는 불가능 하기 때문에요 ㅋㅋ) 일주일에 두세번이라도 뵐수 있음 좋고 4-5번이면 더욱 반갑겠지요. 저도 매일 이웃분들 블로그 찾아가 뵙지도 못하는데 욕심은 없습니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기준이에요. 아무튼 부담은 조금 덜어내시고 즐기는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면 참 좋을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편안하고 즐겁더라고요. 안그래도 스트레스 받을 일이 천지에 쌓였는데 스팀잇에서까지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daegu 님이 멋진 비유를 해주셨내요 ㅋㅋㅋㅋ 확실히 이민 선진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긴합니다 ㅋㅋㅋㅋ 일도 편한대신 서비스받을때 울화통이 밀어오를수도 있죠 그래서 좀더 나은 한국을 위한맘도 있죠 !

그렇군요. ㅋㅋㅋ 1년에 6개월씩 나눠서 사는 것도 재밌겠네요. 천국과 지옥 사이ㅋㅋ 어쨌든 한국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요즘은 헬조선에서 조선으로 가는 중인 것 같긴 합니다. 물론 그 길이 아직 멀기만 하지만요. :)

이러다가 헤븐조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ㅋㅋ 북조선으로 가는 선로와 도로도 열려서 여행이 자유로워졌음 하네요~ㅎㅎ

천국과 지옥모두 의미가 없죠.
어차피 내가 있는 장소는 이곳이니까요.
내가 있는 이 장소를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네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ㅎㅎ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 같아요.
완벽한 천국이나 지옥은 이 세상에 없을테니까요~

전 그래도 영원한 지옥은 매우 무서우니, 천국을 못 간다면 연옥인 헬조선에라도 계속 있었음 좋겠어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적당한 만족을 위해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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