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미소를 가졌던 너에게 보내는 편지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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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애를 처음 본건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봄날이었어.

그 당시 나는 광주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었어. 학교 입구에는 사루비아 꽃들이 한가득 피어 있었고, 그 반대편 정원에는 미모사들이 건물 입구까지 쭈욱 심어져 있었어. 미모사 알지? 그..손으로 톡 건드리면 움츠러드는 식물말이야. 나는 친구들과 늘 팔짱을 끼고 걸으며 사루비아 꽃을 떼어 물었었어. 운이 좋을 때에는 달콤한 사루비아의 꿀을 맛봄과 동시에 아직 손이 가지 않은 미모사들도 만질 수 있었지. 내가 계속해서 꽃이야기를 하는건 그곳이 정말 꽃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야.

2학년이 되고 나는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었어. 새로운 학교에는 더이상 달콤한 사루비아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였는지 전학 첫날 나는 복도에서 엉엉 울었어. 낯선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보처럼 엉엉 울고 있었지. 겨우 진정하고 반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애를 봤어. 내 앞자리였거든. 그래, 그 날 그 애는 웃고 있었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소였지. 그리고 그게 마지막 미소였어.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이 남자애에 관한 이야기야. 그리고 그 아이에게 쓰는 편지야. 20년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애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하지만 밝히지는 않을게.


예쁜 미소를 가졌던 너에게 보내는 편지



잘지내니? 너가 나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처음 내가 반으로 들어가던 날을 기억하니? 전학 첫 날은 너무 정신이 없었어.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하느라 바빴거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어. 너와 인사하고 이야기 했을 때에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2교시가 끝나고 반에 있던 여자애가 형광펜과 색깔펜으로 너의 머리에 대고 마구 긁었을 때에도...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그 때 너무 놀라서 그 여자애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었어. 걘 장난이라고 했어. 염색해준거라고. 너는 짜증섞인 얼굴이었지만 이내 웃었어. 그래서 나는 정말 너가 괜찮다고 생각했어. 며칠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았어. 너랑 함께 웃으면 안된다고. 함께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너는 왕따였어. 아니 전따였어. 전교에서 단 한명도 도와주는 친구가 없는 전따.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그래도 너랑 접촉하거나 종종 이야기하는 애들이 있었어. 학년이 올라갈 수록 넌 우리 학교의 병균이 되었어. 발자국이라도 새겨놓은 듯 너가 지나간 곳을 피해 걸었어. 남자애들은 너에게 씌운 모자를 여자애들에게 씌웠어. 그러면 여자애들은 심각한 병이라도 걸린것마냥 하루종일 목놓아 울었지. 너에게 닿는다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어. 그런 분위기에도 남자애들은 끊임없이 괴롭혔어. 우리 학교에 키크고 힘센 애가 있었는데 너를 때리고 재밌다며 깔깔 웃자 옆에 있던 모두가 웃었어. 통통한 뺨이 살 때문인지 부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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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지 너에게 새로운 별명이 붙었어. 치킨. 매일 밤 아빠가 사오기를 기다렸던 그 행복한 치킨말이야. 하지만 너에게 붙은 그 단어는 행복이 아닌 불행이었어. 너라는 존재를 넘어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에 대한 조롱. 너의 어머니는 치킨집을 하셨어. 학교를 기준으로 우리집과는 반대쪽에 있는 곳이었어. 골목의 작은 가게에 궁서체로 치킨이라는 글씨가 크게 써 있었어. 넌 늘 혼자였는데 어떻게 안걸까.

"꼬꼬댁, 꼬꼬댁"

너의 주변에 가면 이런 소리들을 수도없이 들었어. 매일 그런 소리를 들어서 일까. 넌 정말 치킨처럼 바보가 되었어. 울지도 웃지도 반항하지도 않는 그런 애가 되었지. 이상해진 너를 눈치챈건지 누군가 귀뜸해준건지 언젠가 너의 어머니가 학교에 왔어. 너랑 친하게 지내라며 치킨을 한아름 들고 오셨어. 힘차게 "네!"라고 대답하며 웃던 얼굴들이 기억나. 네 어머니가 떠나고 치킨은 대부분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더러워"

내 짝궁이었어. 몸단장도 깔끔하고 평소 지우개도 잘 빌려주던 짝궁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갑자기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어. 그 치킨을 버리며 나도 바보가 되었어.

너가 얼만큼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지냈는지 나는 몰랐어. 하루하루 얼만큼 괴롭힘을 당했는지 얼마나 울었을지 나는 몰랐어. 너에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때때로 우당탕 너를 괴롭히는 요란한 소리가 들릴때면 고개를 돌렸을 뿐 너에게 관심이 없었어. 너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었어. 웃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괜찮다 안도했어. 너에게 지우개를 함께 던지면 내가 지우개를 맞을 일이 없었어. 너는 우리에게 있어 방패였어.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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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 대해서 기억하는 마지막을 알려줄게. 그 날은 비도 오지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봄날이었어. 너를 처음 만난 날처럼말이야. 6학년이 되자 너를 괴롭히는게 시들해진건지 그날은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않았어. 조용한 날이었지. 그렇게 끝나야 했어. 학교에서 뚱뚱했던 남자애가 다가갔어. 그 애도 너만큼은 아니었지만 종종 맞았어. 평소 조용히 있던 그애가 너에게 다가가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했어.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애들이 재미난 일이라도 있는 듯 수근수근 대기 시작했지.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너는 빨리 도망쳐야 했어. 그 남자애가 너의 팔목을 잡아 끌기 전에 아주 멀리 도망쳤어야 했어.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일은 없었고 너는 3-4명의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지. 훌륭한 관객들도 10명가량 있었어. 그래 나말이야. 나는 그자리에 있었어. 평소에 너를 무시하던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갖고 초롱초롱 눈을 빛내던 유일한 날이었어. 너는 맞았어. 한명이 때리고 비틀거리면 또 한명이 와서 때렸어. 남자애들에게 맞으며 너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 질수록 우리의 표정은 빛이 났어. "원 모어 타임!!"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듯 너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외쳤어.

"원 모어 타임!!!!"
"원 모어!!!!!!"
"더!! 더더!!!!!!"
우리의 함성은 점점 더 크게 광기가 어렸어.

"으아아아아!!!!!!!!!!!!!!!!!!!!"

그 때였어.
너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어. 처음 본 날부터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외침. 그 동안의 모든 설움이 한번에 터져나온듯 서럽게...

"으흐..윽...끄윽...으어어어"

그만 하라거나 왜냐는 물음도 없이 너는 그렇게 울었어. 눈물이 강물처럼 흘렀어. 우리는 일순간 조용해졌고 끄억끄억 우는 너를 지켜보았지. 남자애들은 주춤했다가 자존심인지 뭔지 그런 너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더 때렸어.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지. 재미없다며 찜찜한 표정으로 하나둘 애들이 떠났어. 너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만 슬퍼보이지도 않았어. 괜찮아졌다라기보단 뭐랄까...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런 표정. 악을 지르고 울어 반항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참함이었겠지.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는 서울로 전학을 왔어. 거친 애들은 있었지만 왕따도 없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너에 대해 잊었어. 아니, 사실 잊을 수가 없었어. 살면서 왕따에 대한 영화나 글을 볼 때마다 너 생각이 났어. 아닌척 그들을 위로하고 가해자를 비난했지만 그럴 때마다 너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이 났어.

방관자도 가해자다. 맞는말이야. 나는 너를 다치게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을 다치게 했어. 한번은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너를 찾아볼까도 생각했어. 그런데 어떤 글을 읽고 그만 두었어. 한 왕따가 가해자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제발 용서를 구하지 말라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조용히 잊고 잘 살아가는 나를 들쑤시지 말라고. 내 성급한 행동이 상처를 들쑤실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나만 아는 옛이야기로 너를 묻었어.

그러다 얼마전에 엄마랑 강릉 여행을 갔어. 처음으로 엄마와 바다를 보면서 소주한잔 했어. 그러다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처음 너 이야기를 했어. 우리반에 왕따가 있었다고. 조용히 듣고 있던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 나도 따라 울었어.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울었어. 나는 그렇게 너가 없는곳에서 20년전 작은 남자애를 위해 울었어.

너가 이 글을 읽고 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은 없을지도 몰라. 앞으로 너에게 용서받을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너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다른애들이 괴롭힐때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았던 것. 모두가 웃을 때 함께 웃었던 것. 울고 있던 너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


방관자였던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에는 직접 피해를 입힌 가해자보다 나같은 방관자들이 더 많을거야. 우리는 어쩜 내가 한일이 아니라며 안도하고 있었을거야. 나는 원래 개인주의이고 주변에 무신경해서 몰랐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야. 하지만 틀렸어. 우리는 가해자야. 우리는 그러면 안됐었어. 주변의 소외받은 이들에게 등을 돌리면 안됐었어. 어렸다는 것에 변명을 두면 안돼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많이 망설였어. 이걸 올리는 것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난받을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꼭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는 더 이상 나의 어리석음을 외면하지 않을거야. 미안함을 안고 주변의 소외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 따뜻한 인사, 위로의 한마디.. 내가 할게.

앞으로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려해, 너희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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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제가 위로받은 느낌이에요. 용서를 바랐던 건 일찍이 접고 용서를 했지만서도, 만약 그들이 용서를 구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새벽이네요. 글에서 사랑이 묻어나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해서 저도 사랑한다고 말할래요. 그럼 좋은 밤 되세요.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시린님이나 윗미님이 읽기를 조금 바라고 있었어요. 그때 네편이 되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그렇게 미안해하며 살아가는 아이가 분명 있을거에요. 이말이 절대 과거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을것은 알지만...예전에 시린님이 글에서 그들을 용서했다고 하는것에서 눈물이 났어요. 나는 가해자들이 쓴 사과의 말은 단 한번도 읽지 못했는데 피해자들의 용서의 글을 읽는구나..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벌써 지금도 이 댓글로 오히려 제가 위로 받고 있어요. 저도 사랑합니다. 늘 시린님이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나는 가해자들이 쓴 사과의 말은 단 한번도 읽지 못했는데 피해자들의 용서의 글을 읽는구나..

으...ㅠㅠ 눈물나는 ㅠㅠ 말이에요 ㅠㅠㅠ

용기내서 이런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이 편지가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도 왕따는 여전히 있어요.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이죠. 성격이 이상해, 음침해, 괜히 섞이고 싶지 않아. 이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게 친절한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관자가 되었었던 경험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피해나 방관의경험이있다면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이 방관자였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도 해요. 우리 학교에는 그런애 없었어-라며.. 실제로 함께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중 몇몇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더라구요. 누군가에겐 평생의 상처인데...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분을 찾을수 있다면 찾아가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평생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거예요 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상처를 들쑤시는 것이 될까 찾는것을 그만두었었어요. 중학생이 되자마자 서울로 와서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친구들에게 그 아이의 행방을 물었었어요.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너가 한일도 아닌데 오바하는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 말에 숨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withme 님의 글을 읽으며 때때로 방관자들에게 상처입었다는 내용을 볼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다시 그 친구의 행방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용기를 가진 꼬드롱이 되길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고.. 동시에 방관자죠.
아마.. 거기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런 사회를 바꿔야할 책임이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만큼은 우리같지 않을수 있어야 하니까요.

요즘엔 학교폭력 예방 대책이 많이 생긴것 같아요. 물론 그것으로 모든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 이슈가 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것이 중요하죠. 하나하나 노력해 바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숙하지 못한 어릴 때 가한/당한 일이라 할지라도 잊혀지거나 용서되지는 않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더 큰 상처가 되는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 사회가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리기에 더 잔인했던 어린 날의 기억일까요.. 이렇게 드러냈기에 그 상처를 다시 돌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용기낸 꼬드롱님에게 격려를...

격려받을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해요. 확실히 글을 올리고 난 뒤 책임감이 더 생기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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