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프라하, 프라하 안녕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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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순간에도 헤어지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안녕'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그들은 불현듯 깨달았다. 각자의 길을 향해 뒤돌아서, 서로의 뒤통수 반대 방향으로 한 발짝 내디던 것과 거의 동시였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나눌 수 있는, 아마 가장 완벽한 작별인사였다. --- 정이현 <사랑의 기초: 연인들>



'안녕 프라하'라고 시작했던 이 생활도 이제 '프라하 안녕'과 함께 방점을 찍는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교환학생으로 프라하에 첫 발을 딛고 골목을 누비면서 느꼈던 그 기분. 오렌지색 가로등, 알록달록한 건물이며 내 케리어를 괴롭혔던 돌 길까지. 처음 와 본 유럽은 황홀했고, 휘둥그레진 눈과 함께 촌티나는 관광객의 모습은 숨길 수가 없었다. 거리를 걷다가 잠시 멈춰서고 구글맵을 찾아보곤 하는 것. 멋있는 건축물을 발견했을 때 휴대폰을 꺼내 셔터를 눌러대는 것. 트램을 처음 타보고서는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는 것. 이 모두 다 기억한다. 사소한 일상 마저 소중했던 시절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지금 내가 무슨 느낌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정리할 생각조차 없어서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감정을 쏟아낼 뿐이다. 시원섭섭하면서도 후련하고, 다시 한국 간다는 생각에 반가움도 들지만 다시 시작될 레이스가 두렵기도 하다. 맘 편히 살 수 있었던 이 시절이 그리울 것인지, 프라하라는 도시가 그리워질 것인지 헷갈린다. 어쨋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곧 비행기에 내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숙사 방이 텅 비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때와 똑같다. 그 때는 채워넣어야 할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비워내야 할 공간이 되어버렸다. 갈피 꽂힌 채로 책상 위에 던져져 있던 책, 버리지 않은 맥주캔 그리고 방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빨랫감들도 이제 없다. 라디에이터의 열기보다 따뜻했던 것은 사람의 온기였나보다. 어제보다 날이 풀렸는데도 방이 썰렁하다. 친구들도 하나 둘씩 다 떠났고 마지막으로 나 혼자만 남았다. 나를 배웅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적잖이 쓸쓸하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도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식사, 마지막 인사, 마지막 까를교, 마지막 프라하성, 마지막 산책....언제 다시 올지 기약하지 못하는 공간과의 작별인사다. 그래서 오늘은 낮에 프라하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발이 닿는 대로 향했다. 평소 눈에 안들어오던 벽돌 한 조각까지 아름다워보였다. 해도 잠깐 뜨고, 눈이 내렸다가 비도 오는 기괴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낯선 도시였던 프라하는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올 때면 항상 느꼈다. 체코어로 된 간판과 프라하의 트램을 보면 안도감이 몰려오곤 했다. 여행 중에 유지하고 있던 긴장은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풀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떠난다는 실감이 잘 안난다. 내일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긴장을 하게 될까 안도감을 느낄까. 맥주를 한 캔 깠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질 않는다. 더 깨어 있어봤자 이불킥 할 흑역사만 양산할 것 같다.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짐정리나 한 번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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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기숙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워서 자주 산책 갔다. 보랏빛 노을이 강렬했던 날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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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번에 Kr-art 이벤트를 내셔서 2등이었던 스티밋 마스코트 그리기를 아트소모임에서 다음 이벤트로 진행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립니다!!

제가 총대를 매고 kr-aet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아이디어를 사용해도 될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답변주세용!!

오...잊고 있었는데 제 아이디어가 2등이나 했군요!! 저야 정말 감사하죠 ㅎㅎㅎ
총대 메고 제발 해주세요ㅋㅋ저도 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걸 보면 좋겠습니다 ㅎㅎ :)

오오 감사합니다ㅋㅋ 멋지게 이벤트 만들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도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식사, 마지막 인사, 마지막 까를교, 마지막 프라하성, 마지막 산책....언제 다시 올지 기약하지 못하는 공간과의 작별인사다. 그래서 오늘은 낮에 프라하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발이 닿는 대로 향했다. 평소 눈에 안들어오던 벽돌 한 조각까지 아름다워보였다. 해도 잠깐 뜨고, 눈이 내렸다가 비도 오는 기괴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던 그 곳에서 이런 경험이 있어 어떤 마음과 감정, 생각으로 이랬는지 공감이 됩니다. 그러고보니 떠나온 벌써 10여년동안 그 곳을 가보지 못하고 있네요~ 아침부터 사진과 글에서 감성에 젖습니다.

이 글 올렸을 때 여기 시간으로 밤이어서 감성 충만했네요 ㅋㅋ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이 곳을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가...제일 맘에 걸리네요. 좋은 추억들이 가득한데, 다시 이 길을 갈으면서 곱씹을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나중에 기회되시면 그 길을 다시 걸으러 갔을 때... 정말 만감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그런 추억 하나 가슴 속에 간직하는 것도 나중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아요. ^^

015B의 이젠안녕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비록 잠시 헤어진다해도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요! ㅎㅎ
돌아오시는 길 조심히 오시길 바랍니다 :)

오오 ㅋㅋ듣던 중 가장 반가운 댓글입니다 ㅎㅎ 헤어짐이 영원하진 않죠! 덕분에 다시 프라하 올 날을 기약해봅니다 :)

저도 벤쿠버 워홀이 끝나고 떠날때 모든게 그렇게 다 소중하고 아름답더라구요^^ 힘들었던 기억마저 한 조각의 추억이 된다는게...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오던 길의 많은 장면들이 스냅샷처럼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로부터 10년후인 작년에 다시 가봤는데 제가 일했던 건물, 자주 다녔던 커피숍, 모든게 다 그대로라 참 따뜻하고 신기했네요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다시 그 도시를 방문했을 때 자주 가던 식당, 카페가 그대로 남아있으면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ㅜㅠ 10년이 지나 다시 방문하면 어떤 느낌일까요...ㅋㅋ저도 조심스레 카운트다운 시작해봅니다 ㅎㅎ

묘하게도 사진을 남발하지않으면서 감정은 스며들게 만드는 힘이 있으시군요.
시원하님 친구할게요.(내가 부르고픈 대로 부름ㅎ)

밤에 써서 그런지 감성 충만했습니다 :)
시원하! ㅋㅋ재밋는데요 ㅋㅋ후아린님? ㅋㅋㅋ

우리 찻집 놀러오실래요?^^

이야기 찻집 블로그 말씀하시는 건가요? ㅋㅋㅋ

벌써 몇차례 들르신듯한 ...?

한국 오셔서 좋은일만 생기시길 바랍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제일 가고 싶은 곳인데요 체코 프라하.. 부럽습니다

사진이 너무 좋네요 . 팔로우 하고 갑니다~ 맞팔 환영합니다 ^^

유럽에 올 기회가 있다면 프라하 한 번 들려보세요 ㅎㅎ
감사합니다~ :)

이제 안녕 한국 하실 차례네요. 오시는 길 편안하시기를.

안녕 한국...ㅎㅎ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곧 비행기 타네요

돌아오시는군요..
그곳에서의 추억이 막 전해지는것 같습니다.

전 1박2일로 짧게 들렀던곳인데도 지금도 생생한데 말이죠..^^

@zamini 님은 친퀘테레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ㅋㅋㅋ 프라하에서는 좋은 시간만 보내셨다고 생각해봅니다~ 1박 2일은 너무 짧아요!!ㅎㅎ

애보느라 어디 여행도 못갔는데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있네요 ㅎ
글 감사하고 자주봬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응원합니다..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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