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안되는 일에 속상하고...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bookkeeper예요. 오늘은 아침부터 슬픈 일이 있어, 나를 오프라인 상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넋두리를 해 보고자 해요. 누구한테라도 이야기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펑’하고 터져버릴것 같아서지요.

해외 생활을 하며 단 한 순간도 허투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제 자신을 다잡으며 살아 왔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생전 접해보지 못한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따위 공부를 하며 석사 학위도 따고, 혹시나 한국에 돌아가면 비어있을 커리어를 생각해서 꾸준히 프리랜서로 한국어 선생도 하고 번역도 하고... 딱히 힘들지도 않고 재미도 있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나름 ‘내가 사회에 속해 있다’라는 생각, 어딘가 소속이 되진 않았어도, 내가 내 가족, 특히 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내 인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부심 같은 것도 있다고 할까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렇게 정말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해외생활은 이렇게나 길어지고, 아이들도 이제는 남의 손에 맡기고 아침 저녁으로 보살펴도 될 것 같아서 최근에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이곳 대형 병원의 한국인 통역사를 뽑는데 다행히 서류심사도 통과해서 오늘 최종 면접을 보러 갔다 왔어요. 워낙 자신도 있었고, 준비도 많이 해서 인터뷰 보는 중에도 너무 느낌이 좋은게 내가 다 된 것 같았지요. 인터뷰를 한 30분 정도 했는데 마지막에 저에게 아이들 이야기를 물어 보더군요.
아이들요... 우리 엄마들이 그저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이쁘고 착한 우리 아이들요. 열 세살 딸아이와 여섯 살 아들... 제가 얼마나 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그런 가운데서도 내 삶을 열심히 살아 왔는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이야기 했더랬죠. 사실이니까요.

근데 갑자기 저한테, 그럼 일을 하면서 아이들 문제가 많이 생기지 않겠냐고, 일을 하면서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일하는데 지장이 많지 않겠냐고... 계속 그런 질문을 하는거에요... 순간 마음 속으로, 아 내가 괜히 애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말을 지껄였다는 생각을 하고, 나 한국 사람이야...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고, 일을 하게 되면 ‘당근’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조율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 하지 않겠냐고.......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인터뷰가 끝이 났고 지금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 그 순간들을 복기하고 있어요.

내가 그 일을 너무 하고싶고, 내가 알아서 준비하고 내 개인적인 일을 조율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마치 아이들이 걸림돌이 되는 양 이야기 하는 그 인터뷰어들이 괘씸해지기 시작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그렇게 한 게 순간 후회가 되서 그건 크게 문제가 안된다고 한 사실이 너무 슬픕니다... 이렇게나 아이들 열심히 키웠고, 빛이 나는 내 아이들인데, 아이들 낳아서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살고, 이제는 내가 배우고 쌓아온 것을 현장에서 쓰면서 다른 행복을 누리고 싶어 생각한 것이, 오늘의 인터뷰로 다 내려앉아 버리는 기분이 들고 있어요.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만약 잘 안된다면 내 마음 속에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오래도록 박히게 될 죄책감에 벌써부터 힘이 쑥쑥 빠집니다.

아니, 아이들 잘 키우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으면 남들보다 더 점수를 많이 줘야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면전에서 그렇게 아이들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그런 마음들이 너무 야속합니다. 그리고 화가 납니다. 엄마이고 아내이기 이전에 내 인생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너무 화가납니다...


그냥 이렇게라도 주저리주저리 풀어냅니다. 그리고 다시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갑니다. 인터뷰에 떨어져도, 나는 이 아이들의 엄마인건 변함이 없고, 여전히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내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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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스스로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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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줄 알았더니
외국도 마찬가지네요 ㅠ ㅠ
제 친구들도 입사 면접에서 남자친구는 있냐
결혼은 언제할 거냐 결혼과 일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등등
여자로서만 받는 질문들이 워낙 많아서
무조건 남자친구 없다. 결혼 안한다 라는 대답을 정답으로
외우고 가기도 했었죠...

화는 나지만!
좋은 결과 있으실거라 생각하고 응원합니다 :)

응원 감사해요~ 아마 외국인이라 다른 잣대를 가지고 그러는거 같아요. 일반 회사에서 외국인을 뽑을 때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비싸니까 일을 많이 시키는 경향이 있거든요... 잘 되면 좋겠으나....

글 읽는 제가 다 화나내요
아이들이 있냐, 잘지내냐 이러한 질문들은 많이들 하지만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말하는거는 너무 큰 실례에요
예의에 어긋나는 거 같네요
글을 보는 제가 이정도인데 @bookkeeper 님은 오죽하시겠어요ㅠㅠ
친구한테 얘기하든, 여기에 글을 써서든 기분 푸세요
잘못한건 그쪽 사람들이니까요

팔로우도 하고갈게요~

감사해요~ 정말 큰 위로가 돼요^^

사진처럼 훌훌 털어버리세요!
사실 저 인터뷰 상황에서 누군들 같은대답을 하지않았을까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마세요~ ^^ 화이팅!!!

네 그럴께요 ~ 정말 감사해요 위로가 됐어요^^

워킹맘이 힘들고 우리나라에 여성경력단절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겠네요..ㅜㅠ 가족이 아프고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가족을 우선시하게 되는거 아닌가요? 그게 마치 매일 있는 일이고 일에 너무나 큰 지장을 주는 것 처럼 이야기하는게 참 화나고 속상하죠..저도 면접보러 갔을때 거의 확정이 나는 듯 했는데 결혼하고 아기가 없다고 했더니 너무 당연스럽게 우리는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해서 안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었어요...그때는 좀 속상했는데 나중에 차라리 저런 회사를 안들어간게 다행이다. 일하다 이상하면 너무 힘들었을 텐데 하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었죠. @bookkeeper님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아이가 없으면 곧 낳을테니 안되고 있으면 있어서 안되고... 여자가 일하기 힘들어요... 답글 감사해요~^^

좋은 결과 있으실거예요~ㅎㅎ
사실 저는 그 인터뷰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인데요 ㅎㅎ
저희도 인터뷰 하면서 항상 물어보는 것이 아이를 케어해줄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아이가 아파서 일하러 오지않은 직원이 있었거든요.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배려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프다거나 아이의 운동 경기가 있다는 것이 결근이나 조퇴의 이유가 되지 않지만 이곳에선 충분한 이유가 된답니다^^
속상해하지 마세요^^

감사해요 다른 입장에서 말씀해주시니 또 이해가 되네요. 근데 다른 지원자들 서류를 막 들추는데 얼핏 봐도 어린 여자들이라구요. 아무래도 일의 특성상 여자를 뽑으려는 모양인데, 그런 조건들을 가지고 비교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러는거 같아서 마음이 상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런 이유로 안된다면 참 속상할거 같아요.

오히려 엄마, 아빠들을 뽑는 게 더 좋아요, 저는. 책임감이 있거든요. 배려심도 있고.
잘 되실거예요^^

감사해요^^

그런 일이 참 화딱지 나는 일이죠! 어쩜 그런.....ㅠㅠ
하지만 좀 더 머얼리서 그 일을 보면...
10년 뒤에 그 일을 돌아보면...
저 높은 대기권 밖에서 그 일을 떠올리면...
견딜만한 일일거에요.^^

하지만 생각하니 열받넹...ㅠㅠ***

네 ㅎㅎ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도록 할께요. 위로의 답글 감사드려요^^

각자 다른 입장에서 충분히 속상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 되네요~
면접원은 본인의 의무로서 물어볼 수 있는 것을 물어본것이니 화푸시고~~ 북키퍼님은 본인의 의지를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 생각이 듭니다~
워킹맘들이 더 위대하다고 다시금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아직 끝난건 아니니 좋은 소식도 기대해봅니다~~~

네 감사해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생각도 들고 해요. 아까는 정말 폭발할까 같더라구요. 내가 조율 할 수 있다는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속시원하게 답을 못 준 거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있었던거 같고.,. 면접관이 그런 부분을 critical하게 생각 안한다면 기대해 볼 만한데, 주말에도 밤에도 VIP문제가 생기면 올 수 있겠냐 막 이런걸 물어봐서... 그냥 depressed 상태에요...

힘내세요~
외국에서는 가족관련일을 최우선으로 해주는곳이 많은줄 알았더니 ~ 속상하셨겠어요~

사실 저도 좀 놀랬어요. Family orientation이 과한 나라에서 가족 가지고 마치 일하는데 방해되는 양... 근데 아무래도 다른 눈높이로 접근한거 같아요.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줄 것이고, 리얼 온리 상대적으로, 한국인이니 그런거 별로 없을 것이다 하는 그런 다른 잣대로..

오늘 정말 춥네요 ㅜㅜ
좋은 컨텐츠가 즐거운 스티밋을 만드는거 아시죠?
짱짱맨이 함께 합니다

항상 감사해요 짱짱맨!!

한국만 그런줄 알았는데... 여러가지 감정으로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엄마해본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엄마가 얼마나 힘든 일이고 그걸 해낸 사람은 얼마나 강한지.
그걸 알아주는 더 멋진 기회가 생기길 같은 엄마로서 바래요.

감사해요ㅜ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나네요. 보통 한국인을 특정해서 현지 회사가 사람을 뽑을 때는, 상대적으로 월급이 높게 측정이 되기 때문에(한국에 비해서가 아니라 이곳 낮은 인건비에 비교), 많은걸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ㅜ 거기다가 다른 경쟁자들하고 비교해서 나이도 많고 딸린 식구가 많으니, 그쪽에선 그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생각은 드는데... 막판에 너무 코너로 몰려서 울컥했던거 같아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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