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알렉산더 맥퀸
안녕하세요. @baaam입니다.
여러분 알렉산더 맥퀸을 아시나요?
오늘은, 한 때 천재성을 지닌 패션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해 보려합니다.
브랜드 스토리
알렉산더 맥퀸의 본명은' 리 알렉산더 맥퀸'으로 영국의 평범한 가정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3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초등학교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어려운 형편으로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그러던 어느날 맥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영국 런던의 최고급 맞춤 양복점거리 새빌 로에 견습생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께서 신문 기사를 보고 맥퀸에게 권유를 하십니다. 이후 맥퀸은 16세에 학교를 그만 두고 견습생의 일을 시작하면서 패션과 가까워졌습니다. 테일러링 기술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고, 이 견습생 생활을 통해 그는 재단 기술과 테일러링을 습득하는 중요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런던의 유명 쇼 무대 의상을 제작하는 무대의상 전문업체 '엔젤스 앤드 버먼스'로 자리를 옮겨 일을 배웠습니다.
레미제라블 의상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역사적인 의상, 19세기 의상에 대해 충분히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것은 후에 맥퀸의 작품 세계 구축에 큰 자원으로 다가왔습니다.
1994년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의 패턴 튜터 자리에 지원하였으나,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학교 측의 권유로 석사과정의 학생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이곳에서의 배움은 맥퀸이 패션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곳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갈고 닦아 나갔으며, 센트럴 재학 중이던 당시부터 이미 그는 삼차원적 디자인에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맥퀸은 탄탄한 기술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센트럴에서의 디자인 교육을 통해 창의적이고,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완성했습니다. 1992년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 살인범 ' 잭 더 리퍼'의 실화를 바탕으로 졸업 작품을 디자인 했는데, 이것이 영향력 있는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이사벨라 블로우의 선택을 받으며 그는 패션계로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이사벨라 블로우는 그의 작품을 전부 구입 했고, 그를 비공식적인 PR 스타일리스트로 고용하며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고객이자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맥퀸은 센트럴을 졸업 후 자신의 컬렉션으로 패션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첫 컬렉션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한 그는 1994 F/W 컬렉션 'Taxi Driver'에서 범스터 바지를 선보이며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 범스터는 극도로 짧은 밑위길이의 바지나 치마를 지칭하는 것으로, 1960~70년대의 로우 라이즈 팬츠를 부활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컬렉션에서 범스터를 지속적으로 선보였으며 이로 인해 그는 선동적이고 전위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첫 컬렉션 이후 그는'Nihilism', 'Banshee', 'The Birds', 'Highland Rape' 등 발표하는 쇼마다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구축해 나가며 패션계, 소비자,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1996년 정체기에 빠져있던 지방시를 구제하기 위해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되어 4년간 활약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맥퀸의 거칠고 암울한 감성과 지방시 하우스 아틀리에의 뛰어난 기술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지방시에서의 활약은 맥퀸으로서는 독립된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테일러 출신으로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었지만 부드러움이나 가벼움을 이해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있었던 맥퀸은 지방시에서 활약하며 이런 부분을 보강해 나갔고, 그의 완벽한 테일러링과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의 결합은 그의 모든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어냈습니다.
극적이고 파격적인 쇼는 맥퀸 컬렉션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S/S 컬렉션 '무제'에서 잉크를 푼물로 가득 찬 특수 아크릴 소재 위로 모델들이 금빛 비를 맞으며 걸어 나왔고, 같은 해 F/W 컬렉션 'Joan'에서는 용암이 넘쳐흐르고 불꽃이 폭발하는 모습을 연출했으며, 1999년 F/W 'The Overlook'에서는 거대한 눈보라 속에서 화려한 자카드와 모피로 만든 옷을 입은 모델이 스케이트를 타고 나오는 모습을 선보였다.
매 시즌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에 대한 풍자를 선보이며 극단적일 정도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던 맥퀸은 2010년 2월 측근들의 잇단 죽음으로 힘들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맥퀸의 천재성과 기발함이 곧 브랜드였기에 그의 부재로 인해 브랜드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의 개인 어시스턴트였던 사라버튼이 이어받아 맥퀸의 메인 모티프로 사용되던 페티시와 낭만주의 코드를 조금 더 여성적이고 밝게 해석하며 브랜드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사라 버튼
저는 천재성을 가미한 그의 활동들을 보니 흥미로웠지만 이미 죽어있는 맥퀸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군요.
스티미언님들은 어떤 것을 느끼셨나요?
이미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lxlwlsl&logNo=220037606490
브랜드 스토리 제공처
http://www.mezis.co.kr/bbs/board.php?bo_table=news_kr&wr_id=182&page=2
맥퀸도 너무 좋아하는 디자이너에요!
알렉산더 맥퀸으로 초반에 쇼 했던것들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 새를 이미지화 해서 만든 씨리즈 엄청 좋아했었어요 ㅎ
자살했을때도 엄청 슬펐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때 생각이 막 나네요
우체부?였다가 디자이너가 된 정말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죠
흑... 그 재능 나 주고 가지 ㅠㅠ...
패션 세계에서 맥퀸을 싫어하는 사람을 뽑기가 어려울 정도로 맥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죠.
그 재능 저도 가지고 싶었는데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여기 계셨었네요??ㅋㅋㅋ
아방가르드 패션의 별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
이제는 제 패션 포스팅에 두두님이 없으면 섭섭할 거 같습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 ㅜㅡ 이런 디자이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
맞습니다. 정말 안타깝죠..ㅜ
Great post there, keep up good w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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