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2 (화)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22 (화)
■ 민수기 34:1-29
[ 약속의 성취를 위해 지명하신 지도자들 ]
하나님께는 모세에게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대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하였던 약속의 땅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실상이 됨을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받게 될 땅인 단에서 브엘세바 곧,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지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3-12). 이처럼 광대한 땅의 경계를 밝히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제 성취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입니다(창12:5-8). 하나님의 약속은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될 구체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사십 년동안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끈질기게 하나님의 배반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행로를 택하여 가려던 이스라엘을 결국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은(2), 비록 지금 그 땅에 원주민이 차지하고 있더라도 이미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는 이스라엘의 기업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반드시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됩니다. 또한, 약속의 성취는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입니다. '사방 지경'이라는 말씀은 땅 끝에서 땅 끝까지를 말씀하신 것으로서 약속의 말씀이 완전히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남쪽에 위치한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를 유다 자손이 분배받고, 그 외의 모든 땅들을 각 지파들이 말씀하신 대로 분배받으므로 약속의 완전함이 증거 되었습니다(수15:1). 또한, 하나님께서는 땅의 경계를 정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지파가 불모지만을 얻지 않도록 불모지와 경작이 가능한 기름진 땅을 골로루 분배받도록 그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을 약속의 땅의 남쪽 경계는 애굽의 시내를 건너 북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5). 노예로 핍박받던 민족이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독립국가로 선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세상과의 영적인 경계를 구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불편함이나 속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신 것이며, 더 이상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러한 자부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피난민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아홉지파 반쪽이 제비 뽑아 받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13). 이는 열두 지파 중에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쪽의 땅을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14-15). 그러나 요단 동편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비록 그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곳에 정착하도록 허락하셨지만, 그곳은 이스라엘의 식민지와 같은 곳일뿐 약속의 땅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에 대한 경계까지 점령한 시기를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서쪽 접경의 블레셋 사람의 땅마저도 이스라엘 영토 안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불완전한 것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은 칼과 창으로 점령한 곳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미 받은 약속의 땅을 그 경계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노력할 때에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은 은혜로 받은 것이지만, 내 삶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악한 세력과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 신앙의 가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이웃과 불화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상태가 바로 약속하신 경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땅의 원주민이 강하여 이스라엘이 점령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불신이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요인이 되었으며, 진멸의 명령을 어기고 살려둔 원주민의 일부가 가시가 되고 미혹이 되어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은 기업에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세워가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무능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세상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성취해야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구원에 안주하며 종교적인 생활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면 오히려 세상이 우리의 가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모세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족장들의 이름을 부릅니다(16-29). 이들 족장들의 이름으로 나열하여 기록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족장들의 이름이 일일히 불려질 때에는 먼저 인구조사 감독관을 세울 때와(1장), 열두 지파에서 정탐꾼을 세워 가나안 땅을 살필 때였으며(19장), 그리고 약속의 땅을 분배받을 때입니다(34장). 인구조사는 곧 광야에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행진을 시작할 때였고,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할 때에는 반역과 원망의 주모자들과 그 책임을 물을 때였으며, 약속의 땅을 분배받을 때의 호명은 곧 새로운 땅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부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나가는 전환점마다 필요한 지도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는 곧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경계가 되며, 나만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워갈 수 있다는 거만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도자가 훌륭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들에게 겸손히 자리를 물려줄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모세가 지명한 각 족장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지명하시고 모세를 통해 모든 이스라엘 앞에서 선포하도록 하신 것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인정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받게 하신 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사람들이 정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자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29). 오늘 우리가 교회의 직분자들을 임명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자나 인기있는 자들을 선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흠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자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에는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나가는 전환점마다 합당한 자들을 세우셔서 일하시기 위한 것으로서,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함께 동역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각 지파 지도자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분배받게 될 약속의 땅의 위치와 거의 흡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철저한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우신 지도자와 함께 한마음으로 동역하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이미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 속에서 내 삶과 주변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성취해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는 자로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 나가는 노력과 헌신임을 알게 하셨으니, 온전하신 뜻을 따라 세우신 지도자들과 한마음으로 교회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