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라는 미신 : 굳이 노력하지 말자

in #kr7 years ago

사람들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자존심이 '노력'이란 말에 담겨 있다. 이 점은 서양의 저 유명한 힐링용 속담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말에도 잘 드러난다.

문제는 '노력'이라는 건 ( - 아마 롤스J. Rawls로 기억되는데, 이런 지적을 한 사람은 많고 많기에 출처는 생략해도 좋겠다 - ) 이미 '노력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으로서 타고난 거라서, 설사 노력이라는 말에 뭔가 의미가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는 하나마나한 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할 수 있는 재능껏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뒤집어 말하면, 노력하지 않는 건 노력할 수 있는 재능껏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일 테고, 그건 결국 타고난 이상으로 노력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핵가족 제도 속에서 유전과 양육은 시너지를 내어 노력은 멱함수(=지수함수)의 방식으로 가중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나아가 모든 이에게 '노력하면 잘 될 거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거다'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실패하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리라도 한 양. 하지만 우리의 원리에 따르면, 누군가가 행한 노력과 성공/실패 사이에는 상관성이 없다. 미리 예정된 양의 노력이 있을 뿐이요, 그 양의 크기에 따라 이른바 성공/실패도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력하라'라는 명령은 성공한 자를 실패한 자에 대조해서 더 잘 정당화해 주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차라리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노력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 편이 낫다. 멜빌의 소설 '바틀비'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 "I would prefer not to...(하지 않고 싶어) 만일 모두가 이렇게 외치기 시작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잘 작동하지 못하리라. 성과급은 정당화되지 못하며, 경쟁도 의미를 잃게 되리라. (성공, 실패 같은 말들은 일상적인 뜻에서 사용한 말이니 심각하게 따지지 말라.)

관건은 노력의 재능이 천부적인지 여부를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데 있지 않다. 증명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 거고, 아마 증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노력하라'가 이 사회를 작동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주시해야 한다. 패자가 패배에 승복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노력이 결과를 더 낫게 만든다는 미신이므로.

패자가 더 이상 패하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한, 다시 말해 이미 타고난 재능(노력+양육)에서 자연스럽게 귀결된 결과일 뿐 패한 건 아니라고 우기는 한, 패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래, 네 잘못은 아니야! 역설이지만, '노력하지 않겠다'는 태도야말로 강자로 생성하는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노력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첨언.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제도는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제도를 바꿔야 한다.
첨언 더. 자유의지라는 주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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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야기하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면 운, 태어난 환경, 재능, 노력 등을 쉽게 손 꼽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 꼽은 것들 중에 운도 내 멋대로 안되고, 태어날 부모를 고르는 것도 불가능하며, 재능을 골라태어나는 것도 내 손으로 할 수 없는데,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요소들 중에 제가 할 수 있는게 노력 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노력을 강요하지 않는게 타인을 대할 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력이 중요한걸 알아도, 갈피를 못잡거나 요청하는게 아니면 노력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노력은 하되, 자신에게만 강요하고 노력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족하는 자신에 불만을 가지지 않으면 행복하지 싶습니다 ^^

대체로 맞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노력'의 재능도 타고났다는 게 학자들의 중론이어서요.
이게 사실이면 노력에 비례한 (말하자면 성취에 비례한) 보상이라는 시스템이 문제가 되거든요.
누구는 나면서부터 노력을 잘 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면, 뒤이어 나올 결과의 불균등이 차등 보상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는 거지요.
분배 정의를 논할 때 항상 제기되는 논점이어서, 몇 자 적었습니다.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노력도 재능이라는 것을 핑계삼아 할 수 있는 것도 등한시 하는 후천적 성향이 발현될까 걱정에 한 자 적었습니다 ㅎ 재능 중엔 후천적으로 생기는 것도 있으니까요. 나의 노력에 남의 평가가 따른다는게 결국 문제인 것 같습니다.

네, 그렇지요. 후천적 측면과 관련해서 교육이 참 중요한데, 이것도 사회적 인프라에 속하는 거라서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노력하라도 다단계 아닌가 싶습니다. 내 밑으로 깔아야 성공할 수 있고 누군가는 깔릴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이 노력해도 안 되는 걸 깨닫고 노력 안 하기 시작하면 무너지고...

다단계, 멋진 통찰입니다!
(적어놓아야지. 끄적끄적~)

공감합니다 ㅎㅎ

'네가 그런건 노력을 안 해서 그래'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개인의 노오력으로 탓하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죠

노력해봤자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먹이사슬 중간단계쯤밖에 안 되는 사람들도 이미 구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고 아무런 노력을 안 해도 먹이사실 최상위 포식자인 자들도 이미 정해져있는건데 말이죠 ㅎㅎ

얼마전에 제가 비슷한 내용으로 노력신화를 부정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ㅎㅎ

https://steemit.com/jjangjjangman/@tizianotiziana/5gqcjd-by-tiziano

말씀하신대로 저 또한 노력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서 죽을만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정해져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과 아무런 재능을 가지지못하고 태어난 사람 또한 존재하는 법이니 노력해서 평등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사회적 기만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습니다 :)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ㅎㅎ

인생은 원래 불평등이고 재능은 애초에 다 타고나는거라고 인정을 하니까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게 제대로 보이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보팅이 안 되니, 여기에 약간 ^^;

노력하는 거 자체도 노력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것이다.. 읽는 내내 끄덕끄덕했어요.

네, 사실 그 지점이 쟁점이지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입으로만 노력했지 ... 그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은거 같네요 ㅎㅎ

ㅎㅎ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죠.~

제 인생모토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입니다.
armdown님의 글을 읽고 나니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랄지.... 동지를 만난 느낌이랄지..... ㅎ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리스팀합니다..^^

최선을 다할 땐 하더라도, 제발 남에게 '노력해라'라는 말은 안 했으면 해요.

노력하면 될줄알았는데. 그 노력조차도 부족했을때가 많더군요..
나름데로가 안먹히는... 글보면서 다시한번 깊게 생각해보게되요.ㅠ
왠지 지금 저한테 가장 위로가 되는말이기도 하네요.

도움이 되셨다니 저로서도 기쁘네요.
마음을 비우는 게 좋은데, 그게 쉽지는 않네요. 저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괜히 무리하면 더 탈날 수도 있는 일이죠.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남에게 노력하라고 강요하지 말자는 거예요.
자기야 할 만큼만 하는데, 주변에서 자꾸 뭐라 꼰대질을 해대서요.

기묘한(?) 우연이로군요. 잠시 전에 비슷한 주제의 다른 글을 제 블로그에 올렸는데... '노력'을 '코나투스'의 관점에서 보니 조금은 다른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행복의 길은 고통을 마주하는 선택일지 모릅니다. https://busy.org/@hermes-k/7a2jtn

잘 읽어보겠습니다.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해서도 더 정돈된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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