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자의 낙관적인 세상

in #kr-philosoph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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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D 보(Kathleen D. Vohs)와 조나단 W 스쿨러(Jonathan W. Schooler)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실험이 있다. 학생들을 나누어 각각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글을 읽게 했다. 그 후 부정행위의 기회를 열어놓은 시험을 치르었다. 결정론에 대해 읽은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했고,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글을 읽은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자유의지의 실존과는 무관하게 자유의지를 믿은 것만으로도 자신의 인격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 인지하며 자신의 인격의 품을 위해 노력한다. 반대로 결정론에 대해 읽으며 자유의지에 대한 약간의 의심을 품은 것으로도 행동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로이 F 바움에이스터(Roy F. Baumeister)와 E J 마시캄포(E.J. Masicampo), C 네이선 드월(C. Nathan Dewall)은 실험을 토대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이들은 기꺼이 도울 의지가 줄어들고 공격성이 증대된다는 결론을 내었다. 이 실험들은 자유의지를 증명하지는 못 하지만, 자유의지가 허상일지라도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도덕성을 유지할 의지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결정론자들은 비관적이고 부도덕한 인간일까?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자신의 인격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지하지 않는 결정론자는 기꺼이 자신의 인격의 품을 떨어뜨릴까? 한번 반대로 이야기해보자. 노벨상 수상자의 결정론에 관한 글을 잠깐 읽은 것으로 무너질 양심이, 과연 선함에 속하는가? 그런 양심이 과연 극단적인 상황에서, 정말로 양심이 필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양심은 그저 온실 속 난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론자들은 악인에 대해 더욱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악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이미 편향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범죄자, 부도덕한 인간 등으로 해석하여도 좋다.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가 있는 이들은 악인을 무엇이라 보겠는가? 악인을 자유의지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해석하면 스스로의 의지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다. 반대로 결정론자라면 악인을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악행을 저지른 인간으로 볼 것이다. 따라서 악인에게도 공감의 여지가 있으며 개선의 여지 또한 남아있다. 만약 명확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면 사형 외의 형벌은 위선일 뿐이다. 인격이 자유의지를 토대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면, 변화의 여지가 없다. 재사회화란 외부의 영향으로 개인의 인격이 변화할 수 있음을 가정하고서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결정론에 대해 읽은 것만으로도 행동이 바뀌었다면, 이것이 결정론의 증거이기도 하다. 외부의 영향을 긍정하는게 결정론이다.

이번에는 다른 사례를 토대로 해석해보겠다. 예전에도 인용한 적 있어 피니어스 게이지를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바로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이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두개골이 관통당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으나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온화하고 성실했던 그는, 어느새 다혈질에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 직장에서는 해고 당하고 가족, 친구들에게 버려졌다. 자유의지가 실존한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를 어떤 인간으로 볼 것인가? 반대로 결정론에 따른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는 어떤 인간인가? 피니어스 게이지는 외상에 의한 것이라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결정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결정론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일까, 결정론자들은 갱생의 여지를 부정하는게 아니냐는 오해가 잦다. 하지만 상기하였듯, 오히려 결정론이 갱생을 긍정한다. 범죄가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면, 조금 더 일상적인 사례를 가져오겠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들을 보셨을 것이다.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들을 길거리에 버리는 이들은 문제가 있는 인간인가? 자유의지에 따른 해석은 그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토대로 해석하는 등 끊임 없이 사회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일회용 컵을 길거리에 버리는 모든 이들을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는건 너무 비관적이기에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낙관적이다. 환경만 개선되면 개개인의 행동은 어렵지 않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낙관적이다. 인간사회는 계속해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긍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결정론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믿는 이론이다. 흉악 범죄자조차도 갱생할 여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 결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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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읽었습니다.평소에 인간의 성향이 나쁘게는 바뀌어도 착하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있었는데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군요.

긍정적인 변화가 더 어려운 것 같기는 합니다.

결정론이라는게 이런거군요!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개선가능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는 결정론의 긍정적인 해석이 인상깊습니다.
하지만 범죄를 합리화하기에는 그 논리적 비약이 너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길거리에 종이컵을 버리는데는 주위환경과 본인의 양심중 어떤것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결정론으로 행위를 합리화하기보다는 그 부정적 행위의 선택이 불변의 것이 아니고 환경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으로 보는것이 맞다는게 이 글의 요지인거죠?

맞습니다.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에 가까운 행동이 서두에 제시한 실험에서 나타났지요. 하지만 결정론을 통해 악인과 악행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게 된 배경을 철저히 분석하여 말 그대로 새사람이 되도록 재사회화 할 수 있겠지요.

결정론의 긍정적인 측면인 것 같군요...

사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 긍정, 부정을 나눌 수 없지요.

그렇죠. 과학이나 결정론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요^^ 다만 그 결정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긍정적인 측면을 만들 수도 부정적인 측면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가장 중요한 변수 같습니다 .

태어날 때 얻은 형질, 양육, 교육, 교우관계, 사회제도 등 개인을 둘러싼 모든 것이 환경이라 한다면 "환경이 중요하다"는 표현은 "모든게 중요하다"와 같은 말이 아닐까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보니 스티밋 세계도 낙관적으로 느껴지는군요!
조급함을 버리고 환경을 개선해나가는데 일조해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실 다툼을 낳기도 하는 생각이랍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사상을 확고하게 받아들이면 개인의 인격과 행동을 분리해서 보게 되는데, 사람들은 인격이 아닌 행동을 지적해도 이를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곤 하니까요.

인격과 행동에 대한 공격을 구분해서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죠. 내가 잘못한 사항에 대해 마땅한 지적을 받아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자유의지가 오히려 자신들이 구상하는 사회를 위한 보수를 실천하는 것일수도 있군요.
그리고 결정론은 근거와 원인과 결과를 기반으로한 과학이 대표라고 할 수 있겠군요!
아침부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무한한 평행우주를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니까요. 길거리에 일회용 컵을 버리는 내가 여기 있으면서, 반면 버리지 않는 선택을 한 나도 다른 평행우주 어딘가에 있겠죠. 그 중 하나의 나로 결정된 것이 과연 나의 선택일지 아니면 우주의 확률에 의한 무작위일지는 구분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선택과 확률이 어떻게 유일한 현실로 수렴되는가에 대해서는 또 복잡한 문제가 생기겠지만요. 결론은, 잘 되면 내 선택, 안되면 우주 탓인 겁니다. ㅎㅎ

길거리에 버린다는 선택지를 떠올리지도 못 할 나도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그런 세상입니다.

여전하시네요~!! 댓글에 대한 답글이 더 긴 남자... 철학도 케이엠 리.. ^^

그럼요.

절묘한 타이밍에 큰 숨 한번 돌릴 글을 올리시네요.
철학자이자 센스쟁이 이십니다....................^^

결정론에 대한 글은 율님 같은 애독자께는 이미 지겨울텐데요. 오늘도 이른 시간에 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글은 언제 누가 내어 주는냐에 따라 .....어라.....
저 꼭 철학도 같죠......ㅋㅋㅋ

이른 아침부터 웃음 짓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ㅋ 삶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 모두는 철학도입니다. 저도 학문으로서의 철학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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