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공지능 담론과 생각 착취

in #kr6 years ago

내가 인공지능 담론과 관련해서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시간’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생각하고 논의할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논의 가능한 주제들 중에서 중요한 순서대로 비율을 나누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내가 비판하는 논자들은 ‘시급함’의 층을 혼동하고 있거나 혼동시키는 이들이다.

약인공지능

나는 우선 약인공지능(특화된 인공지능, 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약인공지능은 계산, 데이터 분석, 최적화 같은 한 가지 문제를 푸는 데 특화된 인공지능으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곳에서 이미 엄청난 연구를 진행했고 실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를 놀라게 한 알파고, 구글번역, 음성인식, 내비게이션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에 개인별 광고가 덧붙거나 아마존에서 도서를 검색하면 추천 도서가 함께 뜨고 넷플릭스에서 추천 영화가 제시되는 것 등이 현재 접할 수 있는 상업 서비스의 실례이다. 약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기에 일거리일자리, 교육경제체제 전반에 걸친 변혁이 시급하다.

특히 약인공지능은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원리는 이윤 증가이다. 규제가 없으면 대기업이 떡볶이 장사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할 몫을 저임금의 형태로 남겨뒀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본이 냉정하게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해 가능한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무서운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는 역설적인 상황도 예상된다. 일거리와 일자리 감소로 실업자가 늘어나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소수 독과점 기업을 제외한 기업과 구매자들이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구매력 감소는 이윤 감소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따라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제안될 건 분명한데,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만일 기업이 주도할 경우, 사람들은 가까스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만을 얻게 될 것이고, 대다수의 삶은 계속 비참한 수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정부(유권자의 뜻을 존중하는)가 주도하면, 약인공지능이 창출한 부와 편의를 대다수가 누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결말 부분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네트워크 인공지능

내가 그 다음으로 시급하다고 보는 것은 ‘네트워크 인공지능(network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아직 개념으로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기에 내가 정립하려 하는 개념인데, 약인공지능들과 인간들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일종의 강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범용인공지능, 일반인공지능)을 가리킨다.

네트워크 인공지능은 훨씬 폭발력이 큰데 인공지능에게 잘못된 데이터를 학습시키거나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파괴하거나 테러를 가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가 약인공지능들을 경제적, 정치적 의도를 갖고 통합해서 활용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아니 이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최근의 페이스북의 사용자 데이터 악용 사태). 현재로선 실현 불가능한 강인공지능보다 인간의 탐욕과 과실이 개입되는 네트워크 인공지능이 사회에 훨씬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치적, 법적 수준의 논의가 절실하지만, 실제로 이에 대한 논의는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강인공지능 담론은 생각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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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인공지능에 대한 담론을 일종의 ‘생각 착취’라고 부르고 싶다. 약인공지능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할 시간의 일부를 분산시켜 강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에 쏟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이 절박하냐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서 생겨난 일이라고 본다.

내가 강인공지능 논의들을 허무맹랑하다고 보기보다는 한가하고 위험하다고 보는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인적 역량도 크지 않고 그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논의 시간 총량도 많지 않다. 인공지능 담론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를 쓴 이유도, 강연과 토론을 통해 담론에 개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상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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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한가한 일이 아닙니다. 바둑 인공 지능이 인간 프로 기사를 이길 시기는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그 예측이 여지없이 무너졌죠! 하드웨어의 발달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역시 급격한 속도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어! 하다간 기계에 의해 인간이 종속되는 것을 못 막을지 모르죠.. 누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도 모를일입니다.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특정한 일만 잘하기 때문에, 강-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약-인공지능의 문제로 논의해야하지 않을까요?

약-인공 지능 맞습니다. 문제는 구글의 딥마인드 알파고 팀이 바둑 인공 지능에 뛰어들기 전엔 바둑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인간 프로 기사를 이기는 것은 2050경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었는데 그걸 무려 30년을 앞당겼습니다. 그 후로 알파고 팀의 알고리즘을 벤치 마킹한 딥젠고나 절예등 여타 다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도 인간을 넘어서게 되죠. 강 인공 지능이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딥마인드사같은 복병 강인공지능 프로젝트팀이 언제 나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죠... 생각 착취로 미루기엔 강-인공지능은 너무 위험합니다.

딥마인드는 알파-스타크래프트 개발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걱정 말아요 그대.

좋은 의견이라 생각됩니다
강인공지능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죠^~^;;

말씀에 동의합니다.
강인공지능처럼 나오기 보다는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정의처럼 인간의 의도적인 활용이 훨씬 가깝고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인공지능은 항상 인간의 의도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요.

그러게요 관심 가져야 겠네요 개념도 정리하고.....
모른척 관심없는 척 냅두면
괴물이 등장할 수도 있을듯요!!

특정집단이 구굴의 데이터정보들을
우리 꾹뻥원처럼 이용해먹으로 네트워크인공지응으로 활용한다면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일이 가능하겠네요..

인공지능도 분류에 따라 다른게 이야기가 되나보네요. 이렇게 분류해서 논의되는 건 처음 알았네요. 신기합니다.

만약 기업들이 주도할 경우에 소비를 위해서 정부에서 사람들에게 일정한 돈을 주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그럼 얼마나 현명하게 잘 소비하느냐가 중요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이 있군요

현실과 디테일을 물고 늘어질 능력이 부족해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양분되는 머나먼 미래만 논하는 것 같습니다. 주구장창 강인공지능만 파는 사람들은 좀 무책임해 보여요.

kyunga님이 armdown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kyunga님의 『오마주 프로젝트』 - 지금껏 몰랐던, 동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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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주 프로젝트 로 재 발굴한 글입니다. 오마주 프로젝트는 armdown님과 stylegold 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applepost 님에게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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