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in #kr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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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CT기계가 돌자 작은 네 눈동자가 커졌다.
-겁에 질린 듯한 검은자, 그 검은자가 아빠 오른손에 스마트폰을 떠나 CT기계를 향한다.
-네가 촬영 중 몸을 비틀어 영상이 제대로 안 나오면, 너를 주사약으로 재워 다시 찍어야만 한다고 의료진은 말했었다.
-작년 이맘때, 약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지금보다 작은 너를 볼 때, 아빠의 마음은 미어졌다.
-이번엔 주사로 재우는 것 피하고 싶다.
-네 양손을 포개 잡은 아빠 왼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빠 여깄어. 와 피카츄 나왔어? 아니면 리자몽이 나왔나?”라고 아빠는 열심히 말을 건다.
-네 눈동자가 다시 스마트폰 속 포켓몬 만화영화를 향한다.
-까맣고 긴 속눈썹.
-네 입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마스크 때문에 알 수가 없다. 망할 코로나.
-10초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다.
-너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스마트폰을 봤다가 CT기계를 본다.
-10초라며. 뭐가 이렇게 길어. 10분 같은데.
-덜컥. 조종실 문이 열린다. “끝났습니다. OO아 잘했어.”
-끝.
-탁, 아빠 몸에 긴장이 풀린다.
-네 눈이 원래 빛을 찾는다.
-아빠는 급히 방호복을 벗고 너를 안는다.
-너를 안고 나오는데 아빠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가만히 있어준 네가 대견하고, 이런 거 찍게 해서 미안하다.
-공복으로 오래서 너는 어제 밤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었다.
-평소엔 안 될 일이지만, 아빠는 네가 하고 싶다는대로 밥도 안 먹은 네게 과자를 사줬다.
-너는 아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20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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