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송에서 무엇을 욕망하는가

in #kr6 years ago (edited)

영상 몇 개를 올리고, 여러 가지 코멘트를 들었다.

사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준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친분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영상 자체는 부족한 부분이 많음은 잘 안다.

특히 화질과 음향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좀 더 투자를 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이렇게 좀 아마추어 같은 영상을 그냥 올리는 것보다 낫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고품질의 영상을 송출하는 탑 다운 방식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글을 자주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원래 자기 얼굴 공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왕 찍는 거 최대한으로 잘 나오게 찍는 게 더 성향에 맞기도 한다.

그런데 좀 고품질로 찍어보려고 하니 1분짜리 티저를 찍어도 100만원 이상은 깨지게 되더라. 전문 촬영가와 조명과 음향 담당을 한 명씩만 불러 야외 촬영을 해도 그렇게 된다. 티저는 그래도 100만원에 찍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토론 프로그램 2시간을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찍으면 편당 최소 500만원 이상이다. 나는 최소한 10편은 찍을 생각인데 그럼 5,000만원이다. 5,000만원은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에게 큰 돈이다. 게다가 영상 한 번 촬영해본 적 없는 사람이 이런 돈을 쓴다는 것도, 운전면허를 처음 따고 페라리를 모는 것과 똑같을지도 모른다. 돈이 있든 없든 중고차를 타서 잔뜩 긁어도 문제가 안 되게 하는, 결국은 바텀 업 방식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좀 공부를 해서 미리 시행 착오를 줄이고, 그래서 돈을 좀 적게 써도 리스크가 없게 하는 찍는 방식도 물론 있다. 다만 내 스타일 상 뭐라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이나 카메라를 공부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가 아니라 그냥 영이다. 지금이야 뭐라도 올렸으니, 내 소장 언제 접수하냐고 시간 단위로 클라이언트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사람들의 피드백을 주의 깊게 살피는 거지, 그렇지 않은 상태로 영상을 이론적으로 공부할 가능성은 없다.

어떤 목적과 컨셉을 잡아 양질의 방송을 처음부터 송출하고, 그렇게 해서 단기간 내에 수십만의 시청자를 확보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그냥 하나의 설일 뿐이다. 게다가 그게 설이 아니라 정말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할 의향도 없다. 사람들은 변호사가 어렵다는 기사는 흔히 접하고, 인기 유튜버가 수익이 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내가 개업하고 느낀 바로는 변호사가 자기 업에 충실해 월 1,000~2,000만원을 가지고 가는 것이 유튜버로 그 정도 수익을 버는 것에 비해 훨씬 쉽다. 이건 아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변호사 업이라는 게 신뢰와 인맥이 쌓이면 사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에 반해, 인기 유튜버는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들 앞에 매번 신기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돈이 목적이라면 사무실 영업에 더 신경쓰는 편이 합리적이다. 물론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파워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금전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어차피 특정 목적을 위해 나 다움을 버리고 연기를 하며 살 위인은 못되는 이상 그것도 큰 의미는 없다.

나는 원래 보편성을 추구하며 산 사람은 아니다. 보편성을 열심히 습득하며 나를 바꾸려는 시도를 했던 적은 딱 두 번 있다. 젊어서 최대한 많은 여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았을 때가 한 번이고(추후 관심 대상이 서양 여자들로 바뀌면서 죽어라 노력해 영어 발음을 뜯어 고치게 된다), 두번째는 변호사 시험에 떨어져 내 공부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생존을 위해 자인할 수 밖에 없었을 때이다.

내 관점에서, 자신을 어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인기를 욕망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매력이 없다. 생존의 문제라면 그래도 구걸이라도 해야겠지만 내게 있어서 보편적인 방식을 추구하며 사람들에게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과시하고 싶고 주목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어떤 점에서는 남들보다 훨씬 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내게 한국 대통령을 하는 길과, 금발의 백인 미녀와 결혼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후자를 택할 생각인데 한국 대통령은 끽해야 5년 밖에 못할 뿐더러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 것에 반해, 금발 백인 미녀와 예쁜 혼혈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은 '매일' 나를 신기하게, 그리고 '다르게' 쳐다볼 것이기 때문이다('우러러'라고는 안 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최악의 선택일 수도 있기에). 당연히 이 쪽이 가끔 동창회나 나가서 자랑할 수 있는, 강남에 부동산을 사줄 수 있는 장인을 둔 딸과 결혼하는 것보다 내게는 이득이다. 내 입장에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보편적이지는 않다.

이 방송을 진행해가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간을 할애해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은, 늘 조언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더 보완을 해 나갈 생각이다. 특히 장비나 음향 이런 부분은 더욱 그렇다. 편 당 500만 원까지는 아니지만 본 방송은 내 나이 대 대기업 직장인 한 달 월급은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언젠가는 어떤 목적성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사실 나는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치밀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오인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지적 유희의 일종으로 내 삶에 어떤 사관과 색깔을 입히는 걸 즐기는 사람이지, 의외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얼핏 예민하고 소심한 일면 때문에 오인하기 쉽지만 사실은 어이 없을 정도로 무신경한 구석도 많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한 번에 간파했던 것처럼, 사실 나는 놀고 싶어서 개업을 했다. 적당히 생계비만 벌고 아침마다 조조 영화나 보며 영화 리뷰나 쓰고 소설이나 쓰려고 했다. 나는 사내변호사 출신이고 아무 인맥도 없어서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 of 헤딩이었다. 근데 사무실을 열자마자 일이 폭주해서 영화는 단 한 편 밖에 보지 못했고 글도 많이 못 썼다. 방송 하겠다고 말한 것도 몇 달 전인데 사실 너무 늦었다. 누군가는, 사내변호사 시절부터 어떤 플랜을 짜고 나왔기에 이게 가능한 게 아니냐고 묻는데 전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자수성가를 한 사람조차도 자기 성과에 대해 자랑스레 이야기하면 사실 고까운 법이고, 그게 오래 가지도 않는 법인데, 자기 힘으로 뭘 이루지도 않은 사람이 고작 세 달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은 잘 안다. 다만 원래 목적이 굶어죽지 않는 것이었으니, 갑자기 어떤 사건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사람과 한 약속은 잘 지켜야 하고, 특히 돈이 결부된 문제라면 더 그래야 한다는 것, 나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설령 그 신뢰가 내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그 심플한 명제를 제외하고는. 현 시점에서 그것들을 제외하면, 역시 절박하게 보편성을 추구할 가능성은 낮다.

예전 이소룡이 죽었을 때, 수많은 젊은 무술 배우들이 포스트 이소룡을 꿈꾸며 그의 동작과 촬영 방식을 흉내내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꿰찬 것은 이소룡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었던 성룡이다. 그는 자신을 제 2의 이소룡이라고 부르는 언론 앞에, 자신은 그를 무척 좋아하고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은 첫 번째 성룡으로 기억되고 싶지, 두 번째 이소룡으로 남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도, 누군가를 모방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어느 시점에 또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이미 깨달은 사람과 유사한 모습을 띄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이 시점, 이러한 생각들은 참으로 오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관통하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리법칙으로서, 만약 내 생각이 오만하다면 나는 반드시 처벌 받을 것이다. 뒤집어지고 깨지고 그래서 다시 바닥에서 무언가를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면 그것도 내 운명이다. 그 처벌이 늦어지는 것도 운명이고, 혹은 내 생각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 어떤 결과물을 겸손하게 안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운명이다.

어느 쪽이든, 아마도 결과에 대한 욕망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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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도전에는 재밌는 결과가 따라오겠죠. ㅋㅋㅋ 힘내세요. ㅎㅎㅎ

응원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투자도 좋지만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상 사실 엄청 고품질일 필요까진 없습니다. 당장은 시행착오 과정으로 여기시고 하나하나 고쳐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

토론 프로그램이라면 카메라 앵글을 고정시켜 놓고 찍으면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큰 비용 절감이 가능할 거로 봅니다. 물론 방송이라는 게 하나하나 욕심부리다 보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추가되긴 하지만요 ㅠㅠ

ㅎㅎㅎ 시행착오 없이 뭘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컴퓨터를 하이마트에서 살 수준으로 기계치고 디카 한 번 사본 적이 없어서 너무 기초적인 것도 모르긴 했더군요 ㅎㅎ

그래도 본방은 최선을 다해 찍어볼 생각입니다. 관심 및 격려 부탁 드립니다 ^^

제 생각에도 적당히 제작비 고려해서 만드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사람이 모이고 그로 인한 수익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때 퀄러티를 조금씩 더 갖추어 나가도 되지 않을까요? 응원합니다~ 가즈앗!!!

저도 그럴 계획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뭐 수익이나 사람 모이는 게 없어도 그냥 꾸준히 하려고요 ㅋㅋㅋㅋ 관심 및 격려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자신을 다양하게 실현하고픈 바탕 욕망이 아닐까요?

굳이 말하자면 그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당 헤헷

기대가 큽니다

관심 및 기대 감사드립니다 ㅎㅎ
곧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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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방송인 줄로 알고 들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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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오해하셔도 무리는 아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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