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처럼 달여 먹는 상처.

in #kr7 years ago (edited)

저는 매일 밤 자기 전 상처를 달여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한 번에 감당하기는 어려우니 조금씩 달여 내어 마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양 조절과 분류 구분을 잘 하지 못해 힘들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나니 대부분의 것들은 부담가지 않는 사이즈로 척척 나눌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어느새 인가부터 매일 밤 잠들기 전 쓴 한약 한 첩을 마시듯 저는 상처를 약처럼 달여 먹었습니다.

어쩐지 상처로 남는 것들은 배울만한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리고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하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에 생긴 것 같은 상처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세세한 상처들에 균열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지요. 그렇기에 상처는 자신을 이해하고, 내가 마음을 썼던 사람을 이해하고, 복잡한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을 줍니다.

유명한 석학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분노와 슬픔에 대해 말하다 - Speaking of Rage and Grief'의 강연에서 슬픔은 폭력과 파괴를 잠재우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버틀러는 슬픔이 슬픔에서 빚어진 아픔을 멈추고 남아있는 것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파괴와 고통을 멈추기 위해선 더 슬퍼하며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다소 역설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환부를 들추어내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방치하거나 외면하게 된다면 사태는 더욱 더 심각해지죠. 이유 없는 폭력과 파괴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무게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크기와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조금씩 달여 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슬픔을 멈추기 위해선 슬퍼해라.
참으로 섣부르고 책임감 없는 말일 수 있으나
그래도 누군가에겐 꼭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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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더 이상 슬퍼할 건덕지가
더 이상 슬퍼할 힘이 없을 때까지
깊고 깊게 슬픔을 건너고 나면
슬픔은 증발해 버립니다
가끔 슬픔을 걷어낸 추억이 씁쓸하게 남긴 하지만 그마저도 추억 안에선 소중하지요

제 비법은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입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가끔은 제가 헤집어놓은 퍼즐을 다시 맞추기가 곤혹할 때가 있는것 같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라는 마지막 한숨을 뱉으면
더 이상 힘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비슷한 습관이 있어요. 아픔과 슬픔이 사라질 때까지 곱씹고 반추하는 습관. 닳여 마신다는 말과 참 어울리는 것 같네요.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제가 흑백사진도전중인데 혹시 시간여유가
있으시면 도전해 보실 수있나해서 이렇게 실례합니다

제가 사진 잘 못찍는데...
한번 해보겠습니다!
매번 감사드려요...

상처를 달여내는것도 어려운거같아요~^^;님 처럼 조금씩 상처를 달여보내볼려고 해볼까해요~상처를 치유하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드네요~^^잘읽고 갑니다~

좋은글 잘읽었씁니다. 슬픔으로 인해 더욱 성숙할수있는거 같습니다. 누구나 원해서 겪는것은아니나 그걸 이겨내는 또한 잘 살아가는 방법중의 하나인듯하네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

상처입고 끝내는것이 아니고 상처를 통해 배울것이 있다면 상처는 상처가 아니게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그렇습니다.
상사들이 흔한 말로 개저씨가 많아서 하하 하고 넘어가고 네네 하고 넘어가다가 어느 순간 한계가 왔나 봐요. 길을 걷다가 갑자기 과거 일이 생각나면 훅 하고 가슴 한견이 답답해 와요.

요즘엔 안 그래도 직설적인 성격이니 ㅎ 할 말 다 하는데
하고싶은 말 못하고 꾹 참으면 그게 훅 올라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정말 안타깝네요...
위에 말한 버틀러라는 석학이 상처가 폭력으로 바뀌는 것은 자신의 절망을 남에게 옮기는 태도라고 하는데 아마... 몇몇의 개저씨분들이 그러는 것이 아닐까 쉽네요.
괜찮은 분이 들어와서 조금 바꿔줬으면 하는 마음 밖에 없네요...
스트레스 풀어가면서 힘내시길 바랄게요

상처로남는것들은 배울만한것이있다 이말뭔가 공감되는것같아요
하지만 적당히 드세요 너무많이 달여먹으면 너무나도 힘든습관이 될것같아요!ㅎㅎ

유의하겠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첫 문장을 보고 시인 줄 알고 들어와 글을 읽었어요. 슬픔을 멈추려고 회피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항상 멋진 글을 쓰시는 분이
잘 읽었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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