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의 책 속 한 줄 #3> "싸구려 같아요, 제 인생이 말이에요."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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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의 책 속 한 줄"은 좀 더 친근하고 쉬운 독서를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직접 고른 책 안에 있는 몇 개의 구절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나루의 책 속 한 줄 #1>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은 느닷없이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라고"
<나루의 책 속 한 줄 #2>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죠"

나루의 책 속 한 줄 #3

오늘의 책

" 안나 가발다 -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2002 / 프랑스 / 북로그 컴퍼니 / 이세욱 옮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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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버님·······. 싸구려 같아요, 제 인생이 말이에요·······.

"그냥 이름을 보고 샀던 거야. 네 장미 나무처럼 말이다·····."
"그래요. 세상에 제 이름값을 하는 게 얼마나 되겠어요. 다 엉터리죠,
제 인생이 그렇듯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어.
일 밖에는 할 게 없었어.
그냥 죽어라고 일만 했지.

일은 나의 위장이자 알리바이였지.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였어.

그날 저녁에 나는 밖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어. 고통스러웠지.
뭔가가 빠진 것 같고, 팔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것처럼 아팠어.
그건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어.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식당의 종이 냅킨에 실루엣 두 개를 그렸던 일이 생각나는군.
왼쪽의 실루엣은 그녀의 앞모습이었고, 오른쪽의 것은 뒷모습이었어.

"아, 사실은 당신한테 편지를 쓰는 거라기보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 소풍 가기, 낮잠 자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 먹기, 새우와 크루아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 사기, 신문 읽기, 가게 진열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 지하철 타기, 열차 시간 확인하기,
둘이 앉는 자리를 당신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투덜대며 옆으로 떼밀기, ······ 빨래 널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 가기, 바비큐 해 먹기, 당신이 깜빡 잊고 숯을 안 가져왔다고 볼멘소리 하기, 당신과 동시에 양치질하기, 당신 팬티 사주기, 잔디 깎기, 당신 어깨 너머로 신문 읽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바보처럼 굴기,
공연히 당신 이름 불러보기, 당신에게 야한 농담하기, 뜨개질 배워서 목도리 떠주기, 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 주인 없는 고양이와 개를 거두어 먹이기, 자전거를 빌려서 타지 않고 그냥 놓아두기, 해먹에 누워있기······.

눈을 반쯤 감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어.

행복이 찾아왔었는데,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행복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어.
너무나 간단했는데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다음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는거였는데 말이야.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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