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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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음악인들은 공휴일과는 먼 생활을 해서인지 강제로 길게 쉬어야 하는(그러면서 일도 못 하는) 명절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나만 해도 당장 돌아오는 주에 공연이 두 개나 있는데, 한창 달려야 할 시기에 명절이 껴 애매해졌다. 모두의 일정을 쥐어짜다 보니, 수요일부터는 진짜 지옥이 시작된다.

하여간, 그런 건 다 잊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명절에 친척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네 가족만 모이게 되는데, 원래는 본가에서 모이다가 나의 제안으로 작년부터는 부모님이 올라오시곤 한다. 나는 지금 스타벅스에 있고, 동생과 엄마, 아빠는 동생집에서 자고 있다.


아침마다 바깥으로 나도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기벽인 것 같다. 아침만 오면 무슨 에너지가 이렇게 샘솟는지. 가족들이 일어나 꾸물꾸물 아침을 준비하면 10시~11시쯤이 될 것이다. 그때부턴 꼼짝없이 가족들하고 있어야 하니, 지금 푹 쉬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명절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는 명절을 무척 좋아한다. 네 가족이 함께 있는 소란하고 수선스러운 집을 사랑한다. 내가 바깥으로 나돌 수 있는 힘은 잠을 자는, 일어나선 나를 기다릴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에는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


다음 달엔 무용 공연을 다시 올린다. 가을엔 모두가 바쁜지 모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공연 연습은 한 무용수 언니의 출강 날에 맞춰 그 학교에서 하고 있다. 무용실엔 피아노가 없어 쓰지 않고 공연장에 짱박아둔 내 키보드를 옮겨 놓았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모이는 학교는 내 동생이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석 때 동생집에 있는 김에 연습을 명목 삼아 언니의 도움으로 동생집에 키보드를 옮겨 두었다. 수요일 오전엔 언니가 다시 동생 집에 와 건반과 나를 싣고 연습실로 간다.

키보드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여기서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동생집이 무척 좋아졌다. 돌아가서 아침을 먹고, 가족들이 늘어지면 연습을 할 생각이다. 함께하면서도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공연이 끝나면 그 키보드를 그냥 동생집에 둘까 고민하고 있다.


여섯 시쯤 일어나 작업을 마무리했다. 어제저녁 열 시쯤 작업을 시작했는데, 효율이 너무 떨어져 덮어두고 아침에 하기로 정했다. 열 시에 했다면 한 시까지도 질질 끌고 있었을 작업을 한 시간 만에 끝냈다.

오후엔 내 집에 가서 이삿짐을 싸기로 했다. 바빠서 이사 준비를 하나도 못 했다. 당연히 이 일정은 내가 짰는데,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다. 그렇게라도, 이럴 때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이럴 때 따스함을 느끼지만, 이렇게 말하니 불효 같기도 하고...


크레마 사운드 액정이 깨졌다. 가장 바빴던 월요일에, 평소보다 많은 물건을 가방에 넣게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잠깐만 놓으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 언제나 멀쩡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생각. 언제나 멀쩡했던 게 아니라, 늘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건데...

고장난 김에 아이패드나 아이패드 미니를 살까 생각중인데, 불필요한 전자기기가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 새집에 들어가면 데스크탑을 하나 맞출 생각인데, 하는 것 없이 그냥 기계만 늘어가는 기분이다.


이번 주에 (드디어) 이사를 한다. 그날은 가까운 지인 몇 명이 스타렉스를 끌고 온다. 전쟁이겠구나. 방 구조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방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다. 한 시간 뒤에 밥이 되니 그때 들어오라는 말.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우리 집은 늘 명절에 밤이 들어간 갈비찜을 먹는다. 그래서 오늘 아침 메뉴도 밤이 들어간 갈비찜이다. 갈비찜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떠올리면 벌써 따뜻해진다. 조금 더 행복해질 우리 가족과 이번 명절,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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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네요! 원하시는 꿈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갈비찜. 흰 쌀밥- 정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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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네요 ㅋㅋㅋ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가족이 모여서 함께먹는 따뜻한 아침. 생각만 해도 좋네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달짝지근한 갈비찜을 김이 모락모락나는 흰쌀밥위에 올려 먹으면 정말 맛있게어요 ㅎ
연휴 행복하게 마무리 하시고 이사준비도 잘하세요 나루님^^

추석 연휴에 여러 음식이 있긴하지만...
명절에 먹는 흰쌀밥과 갈비찜은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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