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13 백수일기] 스스로 맺는 백수일기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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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시까지 푹 잤다. 그러고도 낮잠을 잤다. 식은 땀 흘리며 저녁잠을 또 잤다.
며칠 밀린 잠을 몰아서 잤다.


앨범 발매와, 그 공연이 끝난 다음 날인 17년 12월 14일부터 백수이길 자처했다. 백수면서도 생업에 관한 일을 멈추진 않았으니 진정한 의미의 백수는 아니었지만 나는 음악을 하지 않길,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무언가를 하지 않길 간절히 바랐으므로 스스로 백수가 되었다.

음악을 등지고, 팀을 나오면서 행복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도,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그런 것들이 버겁게 느껴졌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지극히 가까운, '내 사람들'하고만 음악을 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의 만남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음악이 싫었던 건지, 사람이 싫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쉬고 싶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부족한 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저들 모두가 이유일 것이다.

도망가는 마음으로 일본을 갔고, 다녀와선 쫓기듯 내 방으로 들어와 긴 시간을 보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음악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인 것도 같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벌이진 않았지만, 내게 들어오는 일까지 거절할 용기는 없었기에 부탁받은 일은 했다. 처음에는 그 연락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공연 섭외나 작업 의뢰를 받으면서도 '대체 왜 나를 가만두지 않지?'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쨌든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니,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조금씩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작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전보다는 행복했다. 어느 순간 그들과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연주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 시기에 인도네시아를 가게 됐고, 인도네시아를 다녀오면 이 백수 생활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녀와서는 정말로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공연은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하는 큰 공연이었다. 나는 공연 날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제 공연을 하면서 느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기분 좋을 수 없다는 걸. 나는 어제 아침부터 행여 뭔가를 놓쳤을까 하는 마음에 극도로 불안했고, 아침 내내 손을 풀면서도, 악기를 챙기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리허설 시간뿐 아니라 화장할 시간, 렌즈 낄 시간, 커피 마실 시간, 군것질할 시간까지 정해놓고 그대로 행동했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게 날이 서있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몸이 너덜너덜해졌다. 대기실에서 30분 동안 누워 있었다. 그대로 집에 가서 뻗어버리고 싶었지만, 저녁엔 홍대에서 합주가 있었다. 공연 의상을 바리바리 들고, 홍대에 가서 늦은 저녁 합주를 했다.


그동안은 늘 바쁘고, 고됐다. 그래서 음악을 직업으로 가진 내 모습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긴 시간 쉬면서야 공연날이 내게는 특별해졌고,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보다 예민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져있다는 것도 어제 처음 알게 되었다.


스스로 정했던 백수 기간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받았던 상처와, 스스로 몰아세우며 남긴 생채기들이 나를 뒤덮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간은 일의 성취감으로만 행복을 느꼈고, 지나고보니 그게 기형적이었음을 알게 됐다.

백수 일기를 끝낸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 것이다. 다만 이 백수일기를 스스로 마치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확신을 다시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의 일부는 스팀잇에서 기인했다.

나는 음악만 하고 싶었기에 인생엔 음악 밖에 없었다. 음악 외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계기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기에 주변엔 동료뿐이었다. 스팀잇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직업군,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좁게 갇혀있던 시야가 넓어졌다. 사람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음이었고, 새로운 사회의 확장이었다.

이곳에 매일 무언가를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리고 음악과 책을 옆에 두려 노력했다. 이곳엔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담고자 했다. 잘 됐는진 모르겠지만 돌아보니 이곳에서 참 많은 위안을 얻었다.


나는 김동률의 음악으로 나원주를 알게 되었고, 나원주를 통해 자화상을 알게 되었지만, 자화상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곡을 쓰고 싶어 안절부절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150일간의 백수 시간은 불안하고 고독했지만 내가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 내가 이 일을 얼마나 깊게 사랑하는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투박하지만 쉽게 낡지 않고,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따뜻한 음악을 오래오래 만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

(+ 그리고 그 곡들을 조금이라도 이곳에 올릴 수 있으면,
그래서 그 음악을 당신이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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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7b13님 안녕하세요. 여름이 입니다. @torax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인생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ㅎ

그러게요. 평상시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고, 죄악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 모든 걸 내려놓는 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꼈습니다:)

잠시 고민하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을 가지셨군요?
멀리서나마 음악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네. 지나고 보니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고민하는 시간만큼 조금은 성숙해진 것도 같아요. 감사합니다!

백수일기 끝 축하드려요. 제가 처음 나루님을 만났을때보다 지금은 훨씬 자신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으시는것 같아 뭐랄까... 엄마마음같아요! 뿌듯! ㅎㅎㅎㅎ 오랜만의 공연도 축하드리고요! 좋은 음악 많이 기대할게요!!! 저도 스팀잇을 통해 참 많이 변한 케이스라서 누구보다 기쁩니다.

에빵님 늘 지켜보고 계시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곳이 편해지기도 하고, 애정도 생기다보니 이곳에 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커지더라고요. 요즘은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다정한 엄마 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져요. 감사합니다.

얼마 전 8년만에 정규앨범이 나왔었군요.
대학교 신입생 때 대학가요제에 입상했던 선배가 있던 동아리 오디션을 자화상의 '나의 고백'으로 보았었는데, 여러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택배보관함에 선물이 도착해 있었는데 이제야 받아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트랙, '나의 고백'은 음원으로 들을 수 없는 아쉬움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새로이 녹음한 나원주의 데뷔곡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났다. 이 곡이 맘 깊은 곳에 남아 있을 누군가를 위해 선물한다. -앨범 소개 중-

ㅎㅎ 나의 고백은 말해 무엇하나 싶은 명곡이지요. 피아노와 화성이 어쩜 그리 예쁜지 ㅠㅠ 나원주의 솔로 앨범들도 무척 좋아라합니다만, 왠지 자화상의 음반은 어떤 시대가 담겨있는 것 같아 더욱 좋아합니다. 오래된 느낌이 좋아요.

스스로 선택한 백수의 시간, 그리고 오롯이 즐기고 마음을 치유한 시간들이 아주아주 소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 또한 스티밋을 하며 위로받고 스스로에게 있던 상처를 치유하는 중입니다. 저는 재가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언제 한 번 공연하시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네. 뒤쳐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다시 없을 소중한 시간이네요. 매일 매일 글을 쓰고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단다는 것 자체가 저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중에 당당하게 포스터도 올리고, 그럴 수 있음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좋은음악으로 대박나시길 기원할게요..응원합니다.

네! 우선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집중해볼게요. 다시 또 곡을 쓰고 싶어집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자발적 백수... 실행할 수 있음이 부럽습니다. 순간 순간을 누리세요

백수가 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는데 막상 해보고 나니 별 것 아니네요! 이제 더 편한 마음으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려놓기 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지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brickmaster님의 순간순간도 항상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화이팅! IMF 때 첫 직장을 관두면서 엄청 두려움에 떨었죠. 근데 밖에 나와보니 새로운 기회가 많더라고요.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고 관심 없던 것들까지 경험할 수 있고요. 응원합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전 이미 틀렸어요 ㅋㅋㅋㅋㅋ

내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여유가 생겼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brickmaster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실패한 시기라는 생각이 짙었는데, 지나고 보면 인생에 있어 굵은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감히... @brickmaster님께 아직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지금 드는 생각은 그때 더 과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젊을 때 치열하고 고민하고 실천하시면 나중에 정말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인생 선배의 애정어린 조언을 받아들여 더욱 과감하고, 치열하게! 임해보겠습니다. 답이 없는 인생에서 자꾸 답을 찾아가려하다보니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네요. 그러면서 또 성장하는 것이겠지요. 감사합니다:)

백수인가? 일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때 가장 나다운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루님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이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지요. 아마도 나 답다는 것을 찾고 살아가는 인생이 몇%나 될까요? 90%이상은 그냥 살아가지요. 돈이 목적이 되든 가족이 목적이되든 명예가 목적이되든 말이지요. 그래도 각자의 인생은 의미가 있는거 같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태어난 이상 사라진다는 고통을 겪고 살고 있기때문이지요. 그래도 나루님께서는 자신의 재능과 나다움을 찾아서 살고계신것 같습니다. 10년하고 1년차 백수 피터의 부러운 질투심입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운 것인지를 살피는 것

이 말이 참 좋네요.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말도 무척 좋구요. 백수 고참님 앞에서 백수를 운운하니 부끄러움도 있지만, 각자의 삶의 무게가 또 다른 것이겠지요?

덧붙여주신 음악까지 완벽한 글입니다. 제 이름에 담긴 의미를 긴 삶동안 천천히 찾아보아야겠어요:) 늘 감사합니다.

투박하지만 쉽게 낡지 않고,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따뜻한 음악을 오래오래 만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오래된 의자 하나가 떠오릅니다. 석양을 마주하고 커다란 느릅나무 한 그루를 등지고 있는 낡고 따뜻한 이야기 몇개쯤은 능히 스며들었을 법한. 네, 그런 음악 만드실 겁니다. 그러실 줄로 압니다. 암요! ;)

감사합니다. 그 의자에서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참 예쁜 비유네요. 마음에 와닿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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