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아무도 모른다' 리뷰... 13년 전에 쓴 글 발굴
자그만치 13년 된 오마주입니다. 2005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
아는 사람이 요즘 이 영화를 봤다길래요.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 쓴 글이라... 귀엽네요.
저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놓아주었습니다.
이후로 나온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죠
그 사이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더군요
감독의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오로지 따뜻함만을 칭찬하는 평가 일색에 지쳐서
다시 찾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나의 보석이 모두의 보석이 된 게
싫어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여전히 제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고의 작품은 데뷔작 '환상의 빛'입니다.
이 순간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고, 반대로 할 말이 그닥 없어서이기도 하고 하여간 복잡한 심정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 이 영화를 본 이후 3일간 꽤 여러 사람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 좋다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쁘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에 대한 일단의 평가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듯했습니다. 모두들 쉽사리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거라 짐작합니다. 단순히 '슬프다'라는 한마디 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던 게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이 별로 없는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화두는 언제는 '생과 사'입니다. 이 사람만큼 한가지 주제에 천착하는 영화 감독도 드물것입니다. 젊은 감독들은 특히나 그렇지요. 장르적 유희에 탐닉하거나 영화 만들기를 하나의 재밋거리로 생각하는 감독들을 만나고 그 감독들의 어떤 영화들에 대해 천재성을 거론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될수록 영화에서 철학적이고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어떤 감독을 만나기란 점점 어려운 일이 됩니다. 물론 꼭 어려운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알고 그 그릇안에서 최대한의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언제나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환상의 빛> 이후 10년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나이를 먹어가고 경력이 쌓임에 따라 커져가는 자신의 그릇을 무의식중에 인지해 왔고, 꼭 그만큼의 이야기를 해왔으며 <환상의 빛>과 <아무도 모른다>의 차이는 그 10년의 사이만큼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력이며, 결실이고, 완결이 아니라 과정이었습니다. 차기작 <하나요리모나호>를 완성하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수 없지만 그것 역시 완결이 아닌 과정의 하나 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완결인듯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인 것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한 편 한 편이 그 자체의 완결이면서 다음 영화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환상의 빛>의 카메라는 무척이나 정적이고 담담합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떠한 극적인 순간에도 카메라는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것처럼 일체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카메라는 무서우리만치 한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피사체가 겪고 있는 모든 순간을 가감없이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이쿠오를 잃은 나오코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관객과 피사체 사이에 놓여있는 카메라는 단 10%의 감정도 더하거나 빼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환상의 빛>은 젊은 감독의 데뷔작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 보는 것 외엔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죠. <아무도 모른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 매체에서 호들갑스럽게 다루기 쉬운 선정적인 소재와 소재 자체가 가진 엽기성, 극적으로 과장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한 내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생각밖의 차분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고도 남을만한 일입니다. 양쪽 눈에서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수건을 흠뻑 적시고도 남을 이야기가 정반대의 방식으로 다루어진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가슴이 그렇지 않은 영화를 본 것보다 훨씬 무거워지는 것은 왜 일까요? <환상의 빛>과 <아무도 모른다>사이의 10년이라는 적지 않은 간격이 그 답을 말해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치밀함을 먼저 말해야겠습니다.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를 비롯한 세 명의 동생과 YOU라는 범상치 않은 가명을 가진 엄마 역의 배우까지 다섯명은 모두 영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왕따를 당하는 소녀로 나온 하나에 칸이 스즈키 세이준의 <피스톨 오페라>에 나온 적이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연기를 해본 배우가 이 영화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환상의 빛>의 주연을 맡은 에스미 마키코나 아사노 타다노부가 그 당시에는 연기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신인 배우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때 고레에다 감독의 이러한 캐스팅 방식은 다큐-드라마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 혹시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100% 사실만을 담는 그런 것이라고 믿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 몰라 언급합니다만 그만큼 창작자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반영되기 쉬운 장르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 영화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영화 연기를 하지 못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그들에게 대본을 보여주지 않은 채 상황 상황을 그저 귀띔해주는 것만으로 촬영되었습니다. 그것도 각 계절마다 2주씩 촬영을 하고 감독은 배우들을 해산시킨채 편집을 하면서 다음 촬영 분량을 계획하는, 상업 영화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무려 1년간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맏이 아키라 역할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사춘기에 돌입하여 변성기가 오고, 자연스럽게 극중 아키라또한 변성기가 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밝힌 것처럼 이 영화에는 고레에다 자신의 삶이 반영되어 있고, 야기라 유야 또한 자신이 야기라이면서 아키라인 1년간의 삶이 통째로 녹아있습니다. 실제로 네남매로 나온 배우들은 꼬박 1년간을 극중 모습으로 살아야했습니다. 더벅머리조차 가발이 아니었던 것이죠. 다큐를 방불케하는 극영화 제작 방식은 고레에다 감독의 특기입니다. 다큐멘터리 작가로 출발하여 극 영화 작가로 옮겨간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를 거쳐 <아무도 모른다>에 이르기까지 다큐의 어떤 특징을 줄여가면서 극영화적 성격을 강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음 영화인 <하나요리모나호>에서는 전혀 다큐적 성격을 부여할 수 없는 사무라이 시대극을 만든다고 하니 극영화로 옮겨가는 발걸음이 차기작에서 바야흐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영악하게도 일체의 가공의 연기를 배제하고, 조명조차도 아파트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 일색인 <아무도 모른다>는 그렇게 다큐적인 냄새를 풍기고, 과장된 조명이 없기에 평평하기 그지없는 화면을 두시간 내내 봐야하는 심심함 속에서도 기이하게 경이롭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다큐인듯하지만 다큐가 아니라 분명한 극영화입니다. 따라서 영화적인 배치와 설정이 등장합니다. 집을 나선 아키라가 어딘가를 가기 위해선 높디 높은 계단을 항상 지나야합니다. 몇달만에 가까스로 집밖으로 소풍을 나선 네남매가 철조망뒤에서 발견한 것은 하수도 블록 사이에서 자란 이름없는 들꽃입니다. 돌보는 이 하나 없고, 존재조차 아무도 모르는 네 아이지만 아이들은 먹고 자고 하루가 지나면 키가 자랍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객은 위태로움을 느끼고 불안해집니다. 맏이 아키라에게 과연 동생들을 돌보아야 할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그 자신이 아이에 불과한 아키라는 금새 유혹에 빠집니다. 공과금을 내야할 돈으로 게임기를 사고, 동생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식량을 사야할 돈으로 친구들에게 군것질 거리를 사줍니다.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는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유혹과 일탈에 대해서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점점 비참해집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비추어 관객들에게 보여줄뿐입니다. 마치 고레에다의 카메라는 관객과 아이들의 사이를 의도적으로 떼어놓는 듯합니다. 고레에다의 카메라는 알고 있습니다. 다가갈수록 의도적인 과장과 감정이 증폭된다는 것을. 아이들의 모습에 점차 드리워지는 그늘을 관객 자신이 느끼는 것 외에는 특별히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카메라는 철저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전달합니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그 모습들은 고스란히 관객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킵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그렇게 냉정하고 잔인한 역할에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교코의 손에 발라 주고간 빨간 매니큐어가 흔적만 남을때, 막내 유키가 아끼던 아폴로 초코가 단 한개밖에 남지 않았을때, 아키라의 하나뿐인 운동화가 새까맣게 더러워졌을때, 아키라가 유키의 생일날 뽁뽁이 신발을 꺼내주었을때 카메라는 그것들을 잡아냅니다. 겉으로 증폭시키는 큰 감정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안타까운 속내를 품고 있지 않다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고레에다의 카메라는 짚어줍니다. 목소리를 높여 윤리적, 도의적 책임을 묻지 않지만, 그래서 모든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머리속에 남지만 그것이 큰 파장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 그때문입니다.
<아무도 모른다>에 이르러 고레에다는 카메라에 진정성을 담는 방법을 깨우친듯 합니다. 렌즈 앞에 놓인 배우는 단순한 피사체가 아닙니다. 영화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여만 주면 되는 꼭둑각시도 아닙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한 감독의 진정성이 담긴 영화를 만나는 것은 실로 오래간만입니다. 왜 유키가 떠난 후에도 아키라와 두 동생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변함없이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삼각김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시게루는 장난을 치고, 아키라는 그런 시게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누구보다 큰 슬픔을 겪었어도, 한 아이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났어도, 남은 아이들의 삶마저 끝난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상의 빛>에서 나오코의 남은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아키라 남매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불행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섣부른 일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더 아파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생과사'라는 절대절명의 화두를 다루면서도 죽음보다는 '삶'을 이야기하는 감독인 이유는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놓아 버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誰もしらない自分も生きる’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아무도 모른다'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 자신도 살고 있다'는 원래의 제목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기 때문에 우리가 꼭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피할 수 없는 인간 관계망 안에 놓인 우리들이지만, 그래서 타인과 손을 잡고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산다'는 그 자체라는 것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강조합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이지만 그 겸허함은 '영화 만들기'의 근본에 대해서, 나아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한방울의 눈물보다 강한 물음표를 되새기게 만듧니다.
사족 :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키라에게 그나마의 온정을 베풀어주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누나가 왜 영화 중간에 사라졌는지 의아해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유키를 묻고 돌아오는 아키라와 사키 위로 '보석'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흐를때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편의점 누나로 출연한 '다케 다카코'였습니다. 편의점 누나는 끝까지 아키라를 돌보아 주지는 못했지만 누나의 남은 감정은 그 노래 가사를 통해 절절히 느낄 수 있더군요.
날이 너무 덥습니다......덥다 ㅠ
아련해지는 슬픈영화
슬픔의 깊이가 너무 깊은 영화죠...
글 감사합니당~ ^^
찬란한 슬픔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리스팀 감쏴합니다. ㅎㅎㅎ
일본에도 이렇게 어렵게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했던 먹먹하게 여운이 남았던 영화네요. 언제적 본 영화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통통했던 동생의... 그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습니다. T^T
당황스러울 정도의 덤덤함과...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정말 먹먹하기만 했던 영화였죠...
와... 이 명작 ㅠㅠ 저도 이맘때 봤던거 같아요
결말이 너무 안타까웠던 영화ㅠㅠ
뭘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안타까움이...
봐야할 영화가 생겨 좋습니다. 혼자인 시간에 차분하게 봐야겠네요^^
저는 모르는 감독이네요, 한 번 찾아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 디스턴스... 로 시작해서 그렇게아버지가된다, 바닷마을다이어리.. 올해는 '어느가족'까지 온 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