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in #kr-writing5 years ago (edited)

그는 오랜 경력의 뛰어난 디자이너다. 그는 한 모임에서 자신이 나이 들면서 '우리 것', '우리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소위 ‘선진국’의 디자인과는 다른 우리만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우리만의 것,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한 사회가 갖는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가 아니라 예술, 종교, 패션, 국악, 전통 의상 같은 신문의 문화면에 소개되는, 바로 그 지엽적인 문화였다. 또한 '민족주의'와 '주체성'을 같은 것으로 보는 전통적(전형적) 관념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도 '주체적인 우리 문화'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멜로딕 데쓰 메탈'이라는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가 있다. 그 장르의 음악을 노르웨이, 폴란드,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만들면 각 지역의 개성 때문에 음악이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같은 형식의 '문화(제도, 정치, 예술 등)'가 유입돼도 지역의 고유문화와 융합되면서 새롭게 변형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그 문화의 형식은 외래의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것과는 다른 '우리만의 것'이 된다.

'주체적인 우리 문화'라는 말에서 '우리'란, '민족'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지역, 같은 시간에 모인 사람들이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 모인 사람들이 생물학적 DNA나 문화와 정서가 비슷한 전형적 의미의 민족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멜로딕 데쓰메탈'처럼 같은 문화 형식이 전 세계로 번져서 그 지역만의 개성과 정서가 담긴 음악으로 새롭게 변형되는 경우도 있고,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다른 민족이) 한 지역에 모여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주체적인) 음악(문화)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예: superheavy, 홍대 앞 불가사리)

'superheavy'는 다른 인종,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여러 장르의 음악이 혼합된 프로젝트 음악 그룹이다. '홍대 앞 불가사리'는 홍대 앞이라는 특정 지역에 다른 인종,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이벤트다. 여러 음악 장르와 형식이 뒤섞여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 음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민족, 지역에 상관없이 '그들만의 우리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오랜 경력의 디자이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것(주체성)'을 반드시 전통의상, 전통 풍습, 생물학적 민족 같은 것만을 강조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Sort:  

그런 점을 포용성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단일민족’을 외치다보니 배타적인 DNA가 너무 짙어진 것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하고요.

“민족, 지역에 상관없이 '그들만의 우리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런 시각이 하루빨리 확산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3
JST 0.032
BTC 60906.91
ETH 2920.56
USDT 1.00
SBD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