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여행기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낭만浪漫에 대해서 글쓰기를 한다는 @garden.park님의 글을 보자마자 '아 이건 써야해'라는 근거없는 낭만적 확신이 불현듯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내가 알고 있다 생각했던 낭만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학교 잔디밭에 앉아서 깡소주에 새우깡을 먹던 것을 낭만이라 불렀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낭만이라기 보다는 가난으로 인한 궁핍인것 같고, 그렇게 마신 술에 취해서 호기롭게 시계탑을 기어올랐다 추락해서 119에 실려간 것을 낭만이라 주장하려고 보니, 그건 주정에 가까운 것 같다.

낭만浪漫 : 주정적 또는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일, 혹은 그렇게 하여 파악된 세계 라고 검색에 뜻이 나온다. 주정적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본다 혹은 모든 것에 감정을 주입하여 감정을 통해 세상을 본다 라는 의미 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낭만이라는 한자어는 Romance를 일본인이 '로망'으로 읽고 한자로 음차하여 생긴 밑도 끝도 없는 단어다. 물론 한자어 자체의 뜻으로 제멋대로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자어에 담긴 뜻 보다는 로망스 혹은 로맨티시즘으로 생각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쩌면 낭만에 대해서 혹은 낭만적인 것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의 방탕과 일탈을 낭만이라고 불러 주기엔 다소 감정의 낭비 같은 느낌이 있다. 그것은 아마 낭만이었기 보다는 질풍노도라는 말이 더 어울렸을 것이고, 지금 중년에 다다른 내게 있어서 추억의 다른 이름 정도의 자리 매김이 좀 더 온당하다.

내가 자란 어린시절에는 세상을 볼 수 있는 통로가 좁았다. 기껏해야 텔레비젼이고 신문이었다. 시선이 좁으니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좁다. 주어진 환경에서 선택되어지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고, 자연스레 당위성을 부여해서 잘 된 선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살아내면서도 엇나가지 않고 '모범생'의 꼬리표를 무난히 달고 버텨냈다. 꼬리표에 묶여 있으면서 잠깐 잠깐 친구들과 작당하여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가고, 일부러 인적이 드문 저녁 방파제에 올라 소주를 마셔보는 정도의 일탈이 그 시절의 유일하게 혈기방장한 청춘의 감정 소모 였던 셈이니 낭만이라 부르기에도 참으로 알량하다.

이성적이라고 스스로 자평하는 사람일 수록 사실상 감정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크다.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아니 사실은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데도,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가 두렵다. 어린 시절에 한번 붙여진 꼬리표는 그렇게도 오랫동안이나 따라다닌다. 제멋대로 좀 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 반듯한 사람이었고 이어야만 하는 강박은 최대로 감정적일 수 있는 순간 마저도 그럴 수 없는 인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헤어진 애인의 집 앞 놀이터에서 밤새워 기다리며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편지를 쓰고 싶지만, '그게 너를 위한 일이라면..., 사랑했었다' 같은 말도안되는 신파를 날리며 쿨한척 돌아선다. 쿨하기는 개뿔, 그런 순간에도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인간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딱 부러지고 날이 서 있던 그 반듯한 청년은 조금씩 주책맞은 중년으로 변해간다. -호르몬의 영향은 절대 아니라고 여전히 격렬히 부인하고 있지만-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만 보이던 드라마가 막 가슴을 후벼파고, 남의 인생 이야기에 같이 슬펐다가 기뻤다가 감정이 요동친다. 김광석의 이야기 처럼 할레이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머리 노랗게 물들이고 가죽바지입고 유럽을 횡단하고 싶기도 하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라는 노래 가사처럼 뱃고동이 울리는 부둣가에서 도라지 위스키 한잔-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도라지 위스키는 실존 했던 위스키다. 최초의 위스키로 원래 도리스 위스키 였는데 상표권 문제로 도라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위스키 원액은 한방울도 섞여있지 않아서 말그대로 가짜 위스키였다고. 필자는 이 위스키를 알 정도의 나이는 아니나 우연히 주류박물관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읽었다. 진짜다. - 하고 싶기도 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인생중에 해야할 지랄의 총량은 같다 즉, 젊은 시절에 할 지랄을 다 못하면 결국 나이 들어서라도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법칙을 이제 '낭만 총량의 법칙'으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꼭 일탈이 아니어도 감정에 충실한 순간으로 낭만을 누려야만 했던 순간이 인생의 어느때라고 정해진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스팀잇에서 나는 여행기를 쓴다. 여행기만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아이디에 걸맞게 아니 여행기를 염두에 두고 아이디를 만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있어서는 낭만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어릴적 부터 전가의 보도로 삼고 살아왔던 '공부'나 '인생의 성공'과는 반대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글쟁이 되면 밥 굶는다고 했던 어른들의 말이 남긴 반감에 대한 동경이 만든 환상일 수 도 있겠지만, 왠지 내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어 누군가가 읽어주고 동감한다는 것이 주는 쾌감 같은 것이 있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스팀잇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닌 내 '글'을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적확하고 딱 떨어지는 문장으로 부러 심오한 어휘를 선택하여 쓰는 논문이나 보고서에 지쳐 있던 나로서는 젊은 시절 써댔던 연애편지 이후로 처음으로 읽는 사람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여행기를 쓰는 것은 신변 잡기나 혹은 에세이 같은 것을 쓰기엔 나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함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엔지니어 혹은 관리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문득 문득 묻어나는 엔지니어의 무식이 부끄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기를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했다. 여행지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여행기보다는 여행지에서 여행자로 느끼는 감상을 적고 싶었다. 그렇다고 여행지를 배제한 생각만을 담은 여행기가 되기 보다는 여행지의 '인상'을 담은 사진과 그곳에서 내가 느낀 정취를 감정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여행자로서 여행지를 걷는 이의 낭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낭만은 떨어지는 낙조의 쓸쓸함이어도 좋고, 고민을 가득 안고 떠난 여행지에서의 인간으로서의 고뇌여도 좋을 것이다.

아직은 나의 글도 또 그 글이 표현하는 여행기도 제대로 여물지는 못했다. 글이라는 것을 제대로 써보기 시작한것도 고작 두달이 좀 넘었을 뿐인데다가, 문학적 소양도 부족한 공돌이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일것이다. 내가 갑자기 @peterchung님이나 @bookkeeper님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 충분히 인정한다. (두분이 심사위원이어서 언급한 것이 절대 아님을 밝힌다. 진짜다.) 하지만, 나는 이 스팀잇에서 글 쓰는 것이 즐겁고 그것이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이 즐겁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거기에 덧붙여서 보상도 있고, 이루어 보고 싶은 꿈도 함께 꿀 수 있으면 이것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면 무엇이 낭만적인 것이겠는가.

낭만적이라 해도 좋고 철이 없다 해도 좋지만, 난 내가 이곳에 써나가고 있는 여행기들을 언젠가 모아서 '낭만적 여행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이 꿈을 위해서 조금 더 정성 들여 사진을 찍고, 글을 쓸때도 어제 쓴글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점점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스스로의 기준이 올라가고 또,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즐겁고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작은 일탈이라고 한다하더라도 나는 이것을 낭만이라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내 낭만을 함께 해 준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줄 이웃님들도 우리가 나누는 이 이야기들을 '채굴의 필연'이 아닌, '우연의 낭만'으로 여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중년의 낭만은 꽤나 무섭다. 역시 '지랄 총량의 법칙'은 건재 하다.


Fin.


written by @travelwalker



Sort: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제 0회 짱짱맨배 42일장]2주차 보상글추천, 1주차 보상지급을 발표합니다.(계속 리스팅 할 예정)
https://steemit.com/kr/@virus707/0-42-2-1
현재 1주차보상글이 8개로 완료되었네요^^
2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travelwalker님 안녕하세요. 모찌 입니다. @hersnz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머어머어머 우연의 낭만 대박~~ 이런걸 어떻게 지어내지? ㅋㅋ 트워님 되게되게 감성적이고 낭만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정 반대였군요. 시계탑 낙하는 쫌;;;;; 아프셨겠어요 ㅋㅋㅋㅋ 웃으면 안되는데... 🙊 지랄 촐량의 법칙이라... 전 얼마나 더 써야 방전될까요? ㅋㅋㅋㅋ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ㅋㅋㅋㅋ

ㅋㅋㅋㅋ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용량은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ㅋㅋㅋ 많으시면 많이 쓰실수 있으니 걱정마시길...
이상 28세 불문과 여대생 트래블워커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늘 보기에 좋고 낭만도 팍팍 느껴져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낭만이 철철 넘치는 글 많이 올려주시고 원하시는 꿈을 위해 응원합니다.

ㅎㅎㅎ 응원 감사합니다. 태국 소식도 자주 전해주세요~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저는 아직 대학생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논술에 취약해서 문과생에게는 필수라는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를 노려야만했죠 그래서인지 저는 나는 글을 잘못쓴다 내가 글과 관련된 일을 할 날은 오지않을거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제가 스팀잇을 하고 있다는게 신기하고 글을 쓸 때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합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글쓰기가 스팀잇에서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온통 이 일에만 열중하는 제 모습이 어색하더군요.. 낭만.. 저도 아직 이 단어에 대한 확실한 생각은 없지만 돈이 없어서 학교 잔디밭에서 간단한게 먹은 것이 그 당시에 조금이라도 슬픔 혹은 아쉬움이 있었다면 낭만이 아니고 그 어떤 시간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면 낭만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이듭니다 (너무 허접하네요 ㅎㅎ) 많은 생각을 해주게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이 낭만을 즐길때이겠네요... 부지런히 즐기시길... ^^

멋진 여행자 @travelwalker님의 낭만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낭만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전 아직 깽판 쳐야할 게 많은 거 같은데요. 큰일일세.......
여행은 열정의 의미에서 충분히 낭만적입니다...

글고 이 이벤트는 7일부터이고 글자수는 1400에서2000자 까지래요..^^

흑흑... 7일 부터인줄 몰랐어요 ㅜㅜ 깽판좀 치면 어떤가요... ^^ 낭만적으로 깽판을... ㅎㅎ

잃어버린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예전엔 감성보단 이성이 먼저였죠!!!
하지만 지금은 이성은 저멀리 놔두고 감성을
더 먼저 중요시하며 살아가고 있다보니
''낭만이 뭐니''를 알고 있더라구요.^^

확실히 낭만을 낭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기는 청춘은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
세월이 있어야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ㅎ
더더 낭만적인 시간들 되시길...

@홍보해

홍보 감사합니다 ~!! ^^

중년의 낭만에 흠칫 놀라고 갑니다^^;;

흠칫...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낭만에 놀라신건가요? 중년에 놀라신 건가요? ㅋㅋㅋㅋㅋ

Coin Marketplace

STEEM 0.33
TRX 0.11
JST 0.034
BTC 66530.34
ETH 3251.57
USDT 1.00
SBD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