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공통점이 싫은 당신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그림 by @zzoya



두달여간 스페인을 여행했던 적이 있다. 한달은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다른 한달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동부 카탈루냐 지방을 거쳐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혼자 여행했지만 길동무도 만나고 어쩜 우연히도 지인을 만나 하마터면 그 사람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할 뻔한 적도 있다.

그 때의 여행이 많은 여운을 남겼기에 그 뒤로 누가 스페인을 간다느니, 갔다느니 하면 내 일처럼 설렜다. 아직 한달에 한두 번씩은 페이스북에 들어가던 때였는데, 중학교 동창 하나가 스페인에 다녀왔다고 써놓았다. 반가운 마음에 ‘스페인 너무 좋지!’ 라고 댓글을 달았다. 얼마 뒤엔 그녀가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간다고 했다. 빠에야의 원조인 발렌시아에 가서 삼시 세끼 빠에야를 먹던 행복한 기억에 ‘발렌시아에 가면 빠에야 꼭 먹어ㅠㅠ’ 류의 댓글을 또 남겼다.

그런데 그녀의 대댓글은 왠지 냉랭했다. ‘나 스페인 이미 여러번 다녀옴’, ‘발렌시아에 빠에야만 있는 줄 아냐.’ 등등. 어느 날은 내가 스페인 지명 오타 낸 것을 바로잡는 게 끝이었다. ‘○○가 아니라 ○□ 거든’.

나는 이미 한국이 아니었기에 그녀와 직접 만난 것은 1년도 더 지나 있었고, 연락이나 페이스북을 자주하지 않아 몰랐는데, 그녀는 그 해 여행사로 이직을 했고 그 때문에 스페인에 자주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둘러보니 스페인의 기념품이나 맛집 등을 종종 소개하고 있었고 ‘부럽다’, ‘멋지다’ 는 댓글이 가득했다. 거기엔 그녀의 친절한 대댓글이 달려 있었다.

처음엔 그녀가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는지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우린 꽤 훈훈했고, 불과 얼마 전 그녀의 고양이 카페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내 댓글에선 얼른 한국에 와서 만나자고까지 해 놓았는데.

나는 이 중 하나라고 결론을 지었다. A 그녀는 스페인이 싫다. 이직하고 출장을 자주 다니며 힘든 기억이 가득한데 나는 그녀 속도 모르고 즐거워한 것이다. B 내가 너무 나댔다. 그녀는 여행사 직원이고 나는 수많은 여행객 중에 하나인데 내가 전문가 앞에서 주름을 잡은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그녀가 여행한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게 되었다.


▲스페인 발렌시아(Balencia)의 식당 Canela 에서 먹은 빠에야(Paella)

최근 뉴비가 많이 유입되면서 이런 류의 글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와 같은 분야’, ‘나와 캐릭터가 겹치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내심 걱정이 된다는... 아차 싶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환영받지 않는 존재였겠구나, 가 처음 든 생각이었고 나 또한 과거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달갑지만은 않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물론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전에는 특히나 내 경험이나 방식, 나의 감정까지도 그것이 특별하고 고유한 것임을 인정받길 원했다. 그래야 내가 유일하고 가치있게 느껴졌으니까. ‘니가 뭘 알아’, ‘그건 내 꺼야’ 생각하면서, 어지간히도 남들과 다르고 싶었다. 어지간히도 남들 같았다는 소리겠지. 그 속에서 내가 누군지를 밝혀 내고 싶었던 거니까. 지금은,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니까, 자꾸만 뭐라도 같은 점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도, 나도 맞장구 치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밝혀내고 싶은 건 아닌지.

스팀잇을 하며 글도 많이 썼지만 댓글도 참 많이 달았다. 특히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초면이면서 혼자 그렇게 반가워하고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는 뒤늦게 내가 상대방 속도 모르고 너무 나댄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반가워해 주지만, 당연히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나야 이제는 남들과의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것이 기쁘지만, 상대방이 나와 같으리란 법은 없다.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테고, 심지어는 내가 탐탁치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다 알아서, 다 이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나의 외로움을 나누고, 내가 이해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나는 절대 세상의 하나 뿐인 당신이 될 수가 없고, 당신 또한 세상 특별한 내가 될 수 없지만, 혹시라도 그래서, 혼자같아 외로울 때면 내게로 오라고. 그때 우리 서로를 반겨주자고.

@spri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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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댓글이 많은걸 보고 궁금해서 왔습니다!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처음엔 '김종욱찾기' 생각나다가 '내생각'났어요. 나댐... 나대는거 별로 좋아하지도 미덕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데 이곳 스팀잇에서는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줄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나대면서 낯선이에게도 아는이에게도 들이대고 나대고 있습니다. ㅋㅋㅋ

에너자이저님! 저도 '김종욱찾기' 인상깊게 보았는데. '내생각' 도 영화인가요? +ㅁ+ 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대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스팀잇에선 제게 나대주시는(?) 분들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기에 저도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에너자이저님도 마구마구 들이대주세요 >ㅁ< 외로웠던 뉴비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마음 알고 늘 감사하지요!

스프링필드님 포스트는 사진도 좋지만 글도 너무 좋네요. 마음을 짠하게
울린다고나 할까요.. 깊은 밤 좋은 글을 읽고 잘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반겨줄 그날까지.. 화이팅~

밤지기님 :-) 밤지기님의 좋은 감성으로 봐주시니 그렇지 않을까요. 특유의 저속함:)과 진심이 느껴져서 그런지 밤지기님의 칭찬은 제게 더 따뜻하게 와 닿는답니다. 늘 반갑습니다 :-)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다는 건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늘어나서 좋습니다 :)

c1h 님 :-) 모두가 c1h 님처럼 생각한다면 이런저런 시너지효과로 세상이 정말 쑥쑥 성장할텐데요. 저도 @c1h 님과 이렇게 이야기 나누어서 좋습니다 :-)

쉽게 다른사람들과 소통하지만 또 그만큼 상처받기 쉬운게 sns인것 같아요..:)

켈리님 :-) 아무래도 표정과 목소리를 알 수 없으니 더 그렇겠죠? 그러니 짐짓 추측하다가 더 소심해지기도 하고 ㅎㅎ 하지만 켈리님도 저도 스팀잇의 순기능을 적극 활용해 모두와 윈윈하는 걸로 >ㅁ<

스프링필드님한테 가야겠다..^^

쪼야님은 제 옆자리 비워뒀어요!! >ㅁ<
제 글이 쪼야님 그림을 입으니 확 살아났어요. 그림이 날개네요 :-)

야밤에 속시원한 글 잘보고 갑니다!!ㅎ 저도 여행업에 있고, 책을 위해 취재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여행에 전문가라는 용어는 잘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에 정답은 없다고 보거든요. 크게 신경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

김작가님의 공감이 왜 이리 위로가 되지요? 여행전문가는 저도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렇게 생각해야 제가 조금이라도 덜 억울해서.. 우스운게 그래서 다른 분들의 스페인여행기를 일부러 피했어요. 김작가님도 @brianyang0912 님 외 다른분들도 우연히 한창 스페인여행기 쓰신 적이 있는데 제가 반갑다고 또 막 숟가락 얹을까봐 ㅎㅎㅎ 김작가님의 시선, 경험, 여행기는 제가 따라할 수도 없는 것들이라 참 좋아한답니다. 사실 예전에 제 글에서 김작가님을 아주아주 짧게 언급한 적도 있는데 모르시죠? (속닥속닥) 야밤에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오늘은 그 글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ㅋㅋ 한 주 출발 힘내시구요^^

아.. 그럴 때 있죠.. 친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댓글을 달았는데 묘하게 나한테만 냉랭한 반응. 그게 자신의 특별함이 침범당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springfield님 덕분에 하나 배워갑니다ㅎㅎ 파이팅이요!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세요!

@earthturtle 님두 그런 경험이 있으시다니 속상하셨겠어요. 저두 사실 정확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열심히 연구하고 주변에 물어본 끝에 저런 결론이 났어요. 지구거북님의 공감과 응원에 거북이 등껍질에 숨어있던 마음이 다시 슥 나오네요 :-)

저같은 소심이들은 먼저 댓글 달아주는 사람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죠.
몇번 인사하고 그런 후에는 괜찮은데...
첫번째 포문을 열어주면 그렇게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sintai 님 기억나세요? 제가 @sintai 님한테 먼저 나댔던거? ㅋㅋㅋ 우리 같이 @danihwang 님 프로젝트 지원받을 때였는데. 제가 막 반갑다고 ㅋㅋㅋㅋ 사실 그러고 나서 짤막한 댓글에 '아 이 분 당황하셨겠다' 싶었는데 (소심인증 ㅎㅎㅎ) 어느새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줄이야 :-)

sintai.JPG

ㅋㅋㅋㅋ 기억나네요
하지만 봄들님은 잘나가는 입사동기처럼...
이제 너무 승진해버리셨어...8ㅅ8
저를 잊지 마세요...ㅋㅋㅋㅋ

@sintai 님이야말로 잘되시면 저 잊지 말아주세요 ;ㅁ; (플랑크톤끼리 ㅎㅎㅎ)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네요...
저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 미묘한 어려움이 싫어서 잘 얘기를 안하게 되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수 없는 관심은 어쩔수가 없지만요 ㅋㅋ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보는 만큼 보이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아.. 그리고 글 제목 다시 보니... 그 친구분, 공통점이 싫었던건 아닐것 같아요!

이유님 :-) 역시 대화의 가장 좋은 기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ㅎㅎ 저도 너무 무턱대고 마치 스페인이 내것마냥 반가워했나 싶었던 것 같고. 공통점이 싫은게 아니면 음 뭔가 파이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어렵네요. 그냥 그날 그녀 기분이 나빴던 걸 수도 있는데.. 제가 보는 만큼 보았던 걸 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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