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와인, 말벡malbec

in #kr-writing6 years ago

자기 입맛은 잘 알아도 남의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선물할 와인을 고르거나 여러 사람과 함께 마실 와인을 고를 때 그 어려움은 더 커지죠.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와인을 싫다고 말할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와인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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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프랑스 카오르 지역의 와이너리 '샤또 라그레제트 Chateau Lagrezette'와 그곳에서 말벡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Claude Boudamani 씨. 이곳의 와인이 원체 뛰어나기도 하지만, 그의 유쾌하면서도 신랄한(?) 말솜씨도 와인의 매력을 높이는데 한몫 하더군요.

이하는, 샤또 라그레제트 와인을 만난 후 WineOK.com에 기사 형식으로 올린 짤막한 글인데요. 이 글을 통해 말벡malbec이라는 품종이 지닌 '사연'과 고급 말벡 와인의 특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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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이 좋은 말벡 와인은 깊고 어두운 색,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과즙,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 높은 알코올 도수와 짙은 과일 풍미를 드러낸다. 그래서 누구든 쉽게 좋아할 수 있다.”(“Malbec”, Jancis Robinson)

위 문장은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이 “아르헨티나의 말벡 와인”에 대해 설명한 글의 일부분이다. 실제로 오늘날 말벡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이며, 소비자들이 접하는 대부분의 말벡 와인도 아르헨티나에서 나온다. 이 때문인지 말벡이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린 곳이 프랑스이며, 한때 프랑스산 말벡이 그 짙은 색과 풍미로 유럽 전역을 매료시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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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보르도 와인은 색이 연하고 묽었다. 그래서 말벡처럼 어둡고 짙은 와인을 섞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프랑스에서 오세루아(Auxerrois) 또는 코(Côt)라고도 불리는 말벡은 중세와 근대에 걸쳐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남서부 지역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나무뿌리진디) 창궐, 20세기 말의 대혹한 등을 견뎌내지 못하고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말벡 와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바로 카오르(Cahors) 지역이다.

중세 시대만 해도 카오르의 말벡은 짙고 어두운 색 때문에 "black wine 검은 와인"이라 불리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와인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보르도에서 “the Privilege de Bordeaux 보르도를 위한 특혜”라는 정책을 도입했을 정도다. 보르도 와인이 다 팔리기 전까지는 카오르를 비롯한 다른 지역 와인이 보르도 항구에서 선적되는 것을 금지하는 이 정책으로 인해 보르도 와인 산업은 대단한 수혜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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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카오르(의 말벡 와인)은 근육질이 느껴지고 장기 숙성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정제되고 벨벳 같은 느낌이 강해지며, 섬세함이 뚜렷해지고, 여운은 거의 무한대로 지속된다.”

‘세계 최연소 마스터 소믈리에’의 타이틀을 가진 뱅상 가스니에는 그의 저서 <와인 테이스팅 노트 따라하기>에서 카오르의 말벡을 위와 같이 묘사한다. 또한 최상급 카오르 말벡 와인은 검은 과일, 향신료, 말린 허브, 초콜릿, 송로버섯, 가죽 향이 나고 견고한 타닌, 농축미와 섬세함을 겸비한다고 덧붙이며 너무 어릴 때 마시지 말고 몇 년 기다릴 것을 권한다.

지난 해부터 수입사 나라셀라를 통해 국내 수입, 유통되고 있는 ‘샤또 라그레제트Chateau Lagrezette’ 2007년 빈티지(위 사진)는 가스니에가 설명하는 고급 카오르 말벡 와인의 모범 사례다. 10년 가까이 숙성된 이 와인은 강렬한 색과 향으로 우리의 감각을 먼저 사로잡은 뒤 솜사탕 녹듯 입안 전체에 스며들며 즐거운 반전과 충격을 선사한다. 소비자가격은 9만원대이며 육류 요리, 양념이 가미된 버섯 요리, 라구 소스 파스타 등과 함께 즐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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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만원대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샤또 라그레제트의 다음 두 가지 와인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나는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레제트Chevaliers du Chateau Lagrezette’, 다른 하나는 ‘퍼플 오리지널 말벡Purple Original Malbec’이며 소비자가격은 각각 6만원대, 3만원대이다.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레제트의 경우, 살집 있는 과즙이 관능적으로 느껴지며 붉은 꽃을 연상시키는 향이 은은하게 더해져 무척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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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한민국 주류대상>의 ‘레드 와인 구대륙 5만원 미만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저력을 지닌 퍼플 오리지널 말벡은, 비교적 저렴한 3만원대의 가격으로 프랑스산 말벡의 장점을 훌륭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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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까르띠에Cartier의 CEO였던 알랭 도미니크 페랭(현재 까르띠에 현대 미술재단 대표)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먼지에 덮여 있던 라그레제트 성을 인수하였고 25년에 걸쳐 복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위 사진은 예전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은 샤또 라그레제트. 1503년에 이곳에서 말벡 와인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은 세계적인 와인메이커이자 양조학자인 미셸 롤랑이 합류하여 카오르 말벡의 정수를 담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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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참 좋은 포스팅이네요. 그런데 바쁘신지 활동이 뜸하신 것 같네요ㅠㅠ
활동 자주 해주셨음 좋겠습니다:D

게을러서요.....ㅠ.ㅠ

이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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