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2회] 예의(공포물)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이 글은 @marginshort 님의 백일장 참석을 위한 글입니다.

<주의>

공포물이므로,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은 뒤로......


이 글은 실제로 겪은 글임을 먼저 밝혀둔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어리버리한 이등병이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이며

말 그대로 '열심히 구르는'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에 다녀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군에 가면 특수 보직을 제외하고는 필수적으로 '초소 근무' 라는 것을 서게 되어 있다.

가끔씩 해안가 도로를 달리다 보면,

군과 인접한 해안가 도로에 초소가 서 있다.

그 곳에 총 든 군인 아저씨 둘이 목석처럼 서 있다면, 그것이 초소 근무라고 이해 하시면 되겠다.

적이 낮에만 침공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론 초소 근무는 야간에도 이루어진다.

물론, 밤에 초소 근무 나가면 피곤하기 때문에

야간 초소 근무는 계급이 낮은 순으로 많이 나가게 되어 있다.

초소 근무 나가는 시간 만큼 잠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나 역시 열외는 아니어서, 정말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자면서 초소 근무를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처음 보는 초소명이 근무지에 적혀 있었다.

'제3 고가 초소'

다른 것보다 '고가' 라는 말이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저건 안 봐도 '높을 고' 가 분명 했으니까.

어쨌든 나는 야간 근무 교대조를 모두 머릿속에 암기한 후,

나와 함께 초소 근무를 나갈 고참을 찾아갔다.

어김 없이 그는 나에게 앞 근무와 뒷 근무 교대조를 물어보았고,

미리 외워간 나는 다행히도 틀림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하필 앞 근무가 나의 사수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사수는 툴툴거리며 더 일찍 깨우러 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 밤, 하필 시간도 11시께였다.

달도 없이 컴컴한 밤이었다.

나는 긴장을 바짝 하고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인데다가, 사수 뒤를 제대로 못 따라가면 올라가서 엄청 깨지기 때문이다.

근무 신고를 하고 사수와 함께 터덜 터덜 밤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사수가 나에게 물었다.

"야, 너 3고가 한 번도 안 가봤지?"

"예, 이병 ㅇㅇㅇ! 안 가봤습니다!"

"아...... 이 새끼...... 밤에는 좀 작게 말해라 귀 떨어지겠다. 지금부터 관등성명 빼고 대답한다. ㅇㅋ?"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사수가 내 옆에 바짝 붙더니

"너, 수통에 물 떠 왔지?"

라고 묻는 것이었다.

계급이 높아질 수록 수통 무게도 귀찮다고 야간에 수통에 물 안 채워 가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난 이등병 햇병아리였으니, 수통에 물은 가득 차 있었다.

"예. 가득 떠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사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대뜸

"그 물 쓸 일 있으니까 다음에도 3고가 올 땐 수통 물 빼 먹지마라."

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하늘 같으신 고참님에게 어찌 먼저 질문을 하겠는가.

그냥 묵묵히 따라 걸을 뿐이었다.

드디어 처음 보는 갈림길이 나왔고, 고참은 하늘 꼭대기를 가리키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는 산 저 너머를 가리켰다.

"저어어어어~기가 3고가다. 우리 20분 안에 주파 해야 되니까, 빨리 가자. 아 참, 물통 꺼내고."

선임은 물통을 꺼내더니, 물을 세 번 붓고는 잠시 묵념을 했다.

그리고는,

"뭐 하냐? 너도 해야지."

라고 내 뒷통수를 퍽 쳤다.

나는 얼떨결에 선임을 따라 물을 세 번 붓고는, 묵념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그 곳은 무덤이었다.

'고 XXX 병장의 묘'

갑자기 소름이 오싹 돋았다.

"가자."

선임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군말 없이 선임을 따랐지만 너무나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헉헉대며 선임에게 감히 질문을 했다.

"ㅁㅁㅁ 상병님.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선임은 예상했다는 듯이, 건방지게 이등병이 질문이냐는 소리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마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았다.

"저 묘? 궁금하지?"

"예, 그렇습니다."

"나도 맨 처음에 군에 와서 왠 군대 안에 병장 묘가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면서 썰을 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병장은 전역 대기를 일주일 앞둔 병장이었는데, 산 속 소대막사에서 대기하다 너무 심심해서 본대로 내려 오는 도중, 차가 전복 되어 세상을 떴다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사고 지점 근처에 묘를 썼고, 그 부모님들이 기일마다 찾아와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 뭐 그런 이야기지. 어쨌든 우리 보다 고참 아니냐. 그래서 항상 3고가 나가기 전에는 인사 드리고 가는 거야. 너도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예의라 생각하고 인사 드리고 다녀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연 있는 무덤을 지나쳐, 우리는 무사히 근무 교대를 마치고 초소 근무를 서게 되었다.

이 부대가 산을 깎아 세운 부대인데다가, 근처에 마을이 있어 하필 3고가 근처에도 무덤이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겨울이라 바람은 엄청 불고, 날은 어둡고......

처음 와 보는 곳이라 지형도 익숙하지 않았다.

"어, 춥다."

교대자가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선임은, 약속한 것 처럼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근무 잘 서고, 불빛 같은 거 보이면 깨우고. 쓸 데 없는 걸로 깨우면 죽는다."

"충성!"

그렇게 나는 혼자서, 어둠과 싸우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을씨년 스럽게 솟아 있는 무덤군들을 바라보며 3 고가에서의 첫 근무를 서게 되었다.

서 있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게 진짜 죽을 맛이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데 무섭기까지 하면 말이다.

산 속에서 괜히 나뭇잎들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뭔가 부르는 소리 처럼 들리는 데다가......

눈을 감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잠과 무서움을 떨쳐 보려고 애썼다.

그 때 였다.

'으흐흐흐흐흐.......'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화들짝 놀라 초소에서 떨어질 뻔 했다.

놀란 가슴을 부여 잡고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세찬 바람만이 내 뺨을 치고 지나갈 뿐......

총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 기분 나쁜 휘파람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뭐 그런 종류의 소리를 잘못 들은 거겠거니, 하고는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으흐흐흐흐흐흐흐흐'

이번에는 확실히 들었다.

영하 두 자리의 혹한 속에서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에이 설마, 귀신이 어딨겠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다리가 후덜거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추위와는 상관 없이, 이가 딱딱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초소 안으로 들어가, 사수를 깨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참을 수 있는 귀신 보다는

안에서 곤히 주무시는 사수가 더 무서웠다.

'정신차려. 너 지금 잠도 모자라고, 처음 오는 데인데다가 너무 어두워서 헛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때 였다.

저 멀리서 희미한 푸른색 불빛이,

천천히 일렁이는 것이......

나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입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다행히 총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불빛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한 번만 더 보이면 초소 안으로 뛰어 들어가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오히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무덤 쪽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보이기만 해 봐라. 보이기만 하면 뛰어 들어 간다.'

그 와중에도 그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는, 계속 내 귓가에 들려왔다.

"바람 소리다, 바람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에 지나쳐서 나는 소리야."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말을 걸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람을 맞추어 놓은 시계가 울렸다.

그렇다. 나는 그 시간을 버텨낸 것이다.

드디어 이 공간에 혼자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초소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서야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선임이 자면서 무슨 좋은 꿈을 꾼 건지 안에서 으흐흐흐흐흐 웃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사히 근무가 끝나고 교대를 마치고는, 우리는 같이 하산하였다.

하산하면서 나는 선임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고, 선임은 미친듯이 웃어댔다.

"야, 너 진짜 깡 좋다. 그걸 버텼어? 나 같으면 뛰어 들어 왔겠다."

선임은 계속 웃으면서 말했다.

"너 그럼 도깨비 불도 본 거네. 그거 무덤 근처에서 자주 떠. 처음 보면 겁나 무서운데, 보다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처음 봐서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 뭐 아무튼 그게 귀신은 아닌 거잖아. 잘 했네."

그러면서 선임은 걱정 된다는 듯이 고가 위를 쳐다 보았다.

"저 놈은 미신 같은 거 안 믿는다고 인사 안 하고 다니는데, 인사 좀 하고 다니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저는 꼭 하고 다니겠습니다."

"그래,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그 때 였다.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온 것은......

이번엔 선임도 아니었고, 나도 아니었다.

"야, 너 지금 장난치냐?"

선임의 말에,

"아닙니다, 저 아닙니다. 저도 지금 들었습니다."

둘은 같이 오싹해졌다.

이 길은 높아서 근무자 아니고는 순찰도 잘 안 돌고, 아까 근무 교대를 마치고 내려왔으므로 이 길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둘 다 미친 듯이 길을 타고 내려 왔다.

소리만 안 질렀다 뿐이지,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뛰어내려 온 것이다.

그 때 앞에 무엇인가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정말 크게

"으아아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선임은 선임인 모양이다. 나처럼 볼썽 사납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라이트를 꺼내어 그 곳을 비추는 노련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아닌 아까 교대한 다른 선임이었다.

"야? 왜 니가 여기 자빠져 있어?"

나의 사수의 말에 그 선임은 눈물 범벅이 된 상태로 자초지종을 말했다.

평소때 처럼 근무를 올라 오는 도중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발이 미끄러져서 밑으로 굴렀는데, 자기랑 같이 온 부사수가 자기는 쳐다 보지도 않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너무 무서워서 계속 불렀지만, 부사수는 사라져 버렸고.

자기는 다리가 잘못 된 것 같아서 움직이지도 못 하고 거기에서 그렇게 30분 가량을 혼자 떨고 있었다고 했다.

일단 나의 사수가 상황실에 연락해서 의무병을 불렀고, 의무병이 도착하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3고가로 향했다.

지금 올라간 녀석에게 상황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도 근무 잘 서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시간에 전 근무자들이 나타나자 기절하듯이 놀랐다.

그리고 초소 안에 있어야 할 자기 사수가 초소 문을 열었을 때 보이지 않자, 정말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녀석 말로는, 자기 사수는 평범하게 자기랑 같이 올라와서는, 근무 서라고 하고는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이 때 까지 근무 서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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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 백일장 주제에 납량특집을 괜히 넣었나봅니다 .. lekang 님도 그렇고 rt4u 님도 그렇고 제대로 무서운 얘기 올려주시네요;;; 사실 군대귀신 얘기가 진짜 제일 무서운 얘기죠 ..ㅋㅋ

아 괜히 결산을 밤에 한다고 했다가 지금 연타로 봉변당하는 중입니다. ㅠㅠ 오늘은 불키고 강아지 안고 자야겠습니다..

그래도! 참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

제가 감사하죠 ㅎㅎㅎㅎ

한 두어개 더 할까요? 납량특집 :) (해맑)

오오... 자기 모습을 한 선임이.... 같이 올라갔다...이것 참 소름돋는 괴담입니다... 들었다 놨다 하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ㅠㅠ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lekang 님 글이야 말로 간결하게 끊어치는 공포의 묘를 보았습니다 :)

군대이야기가 참 무서운데...
이거 참 무서운 이야기네요 ㄷㄷㄷㄷ

중요한 건 실화라는 겁니다 ㄷㄷㄷㄷㄷ

저희 부대 나온 사람은 아마 보면 알 수 있을 지도요 ;

오 근무서라고 초소안으로 들어간 사수는 대체 누구인거죠? ;;;

그...... 그러게요 ㄷㄷㄷㄷㄷ

도대체.......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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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군대얘기라고 하더니
실감이납니다.
공포든 유머든 ...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사실 가위 눌린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별로 저한테만 무섭지 ;

남한테는 안 무서울 거 같았습니다......

한 번 올려보세요.
누가 알아요.
다들 화장실 못 갈지

군대 이야기라면 지겨운데 다 읽고 갑니다....^^

슈퍼 파워 율님!!!

다 읽고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 귀신은 안믿지만.. 무서운 영화는 못보는-_-;;
사실 만약 귀신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럼 죽고 난후에 끝이 아니니까

윤회설은 어느 정도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커다란 네트워크 안에 있고

파란 약과 빨간 약을......

(음?)

죄송합니다 ㅋㅋㅋㅋ
안무서워요 ㅋㅋㅋㅋㅋ
얘기는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아요 영화나 직접적으로 뭔가 귀신이 나올법한 상황이 되며 좀 무서운데
하지만 스토리는 굉장이 신선했습니다

괜찮습니다 ㅎㅎ

저는 저 때 미치도록 무서웠거든요 ㅠ

✈ 전 이 글을 보자마자 어! 이거 왠지 실화 같은데! 하고 봤는데 역시 실화였네요... 군대 귀신 이야기는 실화가 많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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