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상에 집착하는가

in #kr-writing8 years ago (edited)


이 글도 역시 고인물 갚은 플랫폼에 몇 달 동안 존재하던 글. 사실 이 글이 그 고인물의 첫번째 글이었다. 고인물에 쓰여진 4편의 글 중 두번째를 공유해본다.



라이프스타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로 떠올랐고, 우리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 것일까. 왜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일과 삶의 균형, 소위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 직장을 선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여행은 관광이 아닌 영감을 얻고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을 찾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으며, 집은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뉘이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보다, 시간을 보내고 공간에 머무는 다차원적인 '경험'이 더 고급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나 머무를지 모를 월셋방도 대충 꾸미고 지내고 싶진 않아졌고, 그저그런 카페에서 맛 없는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졌으며, 빠듯한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는 경험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좀 더 쫀쫀하게 일상의 밀도를 높여가는 방식을 이리저리 연구해보고 있는 중이 아닌가 싶다. 바쁘고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휴식과 망상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잠깐 머무는 공간에도 물건들이 진열된 배열과 각도, 분위기의 온도에 신경을 쓴다.


이렇게 내가 먹고 보고 듣고 느끼는 사적인 감각과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 감정들이 일상의 관심사를 결정하고, 호불호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개인위 취향은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남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하며, 그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낳고 꼬리게 꼬리를 물어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킨다. 나만의 기준, 나만의 취향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이어서 누구를 만나 어떤 맛집에 갈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세상사에 대한 나의 관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의 색과 질을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다.


유명한 작가의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인기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독립서점은 매우 적은 양의 책으로 대형서점이 주지 못하는 감성을 채워주기도 한다. 할인도 포인트적립도 해주지 않고 영업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곳들을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매력을 느낀다. 굳이 교통도 불편한 골목길 한켠의 독립서점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름 모를 신진 작가의 일러스트를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자칫 사소해보이는 일상의 감정들을 서술한 에세이 한 권을 구매하기도 한다. 독립서점과 독립서적들은 느린듯 빠르게 퍼져나갔고, 지금도 역시 현재진행중이다. 독립서점에는 대형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들도 있고 아닌 책들도 있는데, 때로는 책 자체가 아닌 책을 경험하는 방식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점 주인이 선별한 큐레이션이 그 서점의 성격을 결정하고, 1:1 상담을 통해 책을 추천해주거나, 블라인드 방식으로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책을 사는 과정은 책 안에 쓰여진 글 만큼이나 특별하고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닌, 과정과 수단이 되어 관심사나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그렇게 형성되는 커뮤니티는 주말에 취미를 위해 모이는 직장인 동호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쯤되면, 책과 서점의 변화는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을 새롭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각자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이 아닌가 싶다.


이는 한 분야의 이야기만으로 그치지 않는 전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백화점 대신 골목길을 찾아가고, 럭셔리 리조트 보단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유명인사의 성공담 대신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젊은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새로운 경험을 쌓아올리고 나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소수의 이야기로 치부했던 것들이 전체에 미묘한 틈을 내고 있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양날의 검이 존재한다. 고민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는 가벼운 책이 과연 소장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될 때도 있고, 개성으로 뭉쳐진 골목길이 때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거나, SNS인증용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개인의 주관성이 중요해진 만큼 전세계는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고 의식하는 과정에서 취향이 평준화되는 부분도 부정할 수 없다. 마치 소비와 문화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다. 삶의 질이 올라갈수록 소비와 문화의 경계가 흐릿해져가고, 이는 끊임없이 허세와 소비를 부추긴다.


그렇다고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함은 누군가가 기준을 정해주고 모두가 그 선을 넘지 않기로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각자 라이프스타일의 주인이 자신인 만큼 적절함이라는 것은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우리는 일상이 중요해졌다.


학교에서 공부를하고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만큼 지하철에서 듣는 플레이리스트도 중요하고, 카페에 앉아 잠깐 읽는 책 한권도 중요하다. 내 방의 향을 지배하는 디퓨저도 중요하고, 매일 운동하는 시간도 너무나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삶의 목표와 성공에 비해 너무나도 하찮고 쓸데없는 것들이었지만, 성공의 의미에 의구심을 품는 시대가 되면서 미래가 아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단순히 오늘 하루를 즐기기위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써버리려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쌓아 한달을 만들고, 일년을 만들어 내 라이프스타일을 내가 구성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명품백은 없어도 되지만,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타지로의 여행을 손꼽아 기다린다.


오늘 하루가 중요한 만큼 매일의 일상을 쌓아올려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관점도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관점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스스로의 균형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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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이 중요해졌다 라는 말이 맘에 와닫네요

지금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 포인트인것 같기도 하구요!!

네 지금의 시대에 화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이 중요해졌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단순히 바쁘게만 사는게 아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지네요 :)

네, 돈만벌고 성공만하면 되는 시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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