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휴대폰을 바꿨더니.

in #kr-writing7 years ago

내 스마트폰 입문은 2011년 초입이었을 것이다. 1~2년간 '아이폰 혁신이 어쩌고, 폰으로도 인터넷이 어쩌고, 문자메세지보다 나은 무상 메신저가 어쩌고'하는 상투적인 광고와 감탄을 아무렇지 않게 귓등으로 넘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피쳐폰에 만족했다. 나는 항상 변화를 귀찮아했고, 표준요금제로 간단한 통화만 '용건만 간단히' 주고 받았으며 간혹 이력서에 붙여 넣는 것 외에는 사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시 피쳐폰에도 mp3 파일을 넣어 벨소리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폰은 그 정도로만 똑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전혀 연고도 없는 동네로 이사한 직후의 어느 휴일 오후, 길을 걷다가 문득 '걸으면서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지도도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바로 옆 폰 가게에 들러 덜컥 폰을 계약했다. 그러면서 10분 넘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점원의 이야기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만큼이나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저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음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특별한 희열이나 만족감이 있지는 않았지만 평소와는 달리 가게를 나서며 바로 박스를 버리고 내용물만 백팩에 넣어 집으로 향했다.


우선 전화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기계를 들고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배의 안내대로 차근차근 따라해보았다. 왜 만들어야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gmail 계정을 만들고, 왜 폰의 기본기능을 사용하는데 마켓인지 스토언지에 들어가야하는지 의아했으며, 무료로 다운로드 하게 해놓고는 왜 이름을 장터로 만들었는지도 이해가지 않았으나 그런 느낌을 말하는 족족 '조용히 시키는대로 하라'는 후배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왠지 물 없이 고구마 서너개 먹고 목막힌 듯한 말투였다. 내 폰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라는 후배의 말에 나는 해맑게 숫자를 읽어주었다. 암호처럼 보이던 그 숫자의 비밀을 후배가 풀어주었는데 실로 놀라웠다. '45만원 정도의 기계값을 3년 할부로 납부하며 월 3만원 정도의 통신요금을 추가로 내야한다'는 그 목 막힌 소리 뒤에 아예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보탠 내용에 나는 노란 하늘을 보며 비틀거렸다. '형, 그거 지금 인터넷 보니까 그거 기계값 10만원에 살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사용후기 보니까 그거 그냥 쓰레기네 쓰레기. 그 쓰레기를 그 가격에 살꺼면 내한테 용돈 30만원 주고 내 폰 받아가지 그랬어."


나는 다시 그 가게로 달려가 죄송한데 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환불을 해달라고 했고, 당연히 그 점원은 ‘이미 뜯은 건 환불이 안 된다’고 답했다. 난 후배에게 전수받은 단어를 떠올리며 엄숙한 목소리로 ‘개통철회를 원한다’고 말했으나 제갈량의 출사표만큼이나 엄중한 점원의 말에 이내 기가 죽고 말았다. ‘아 그러시려면 소비자원에 고발 넣으시던가.’ 나는 일곱 번째 생포당한 맹획마냥 깨갱거리며 ‘어.. 죄송한데 정말 방법이 없나요?’라고 말했고 제갈량은 온화한 목소리로 ‘10만원 더 주시면 이 기계로 바꿔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눈으로 대충 살핀 폰 모델명을 되뇌이며 작전타임을 외치고 가게 밖으로 나와 후배에게 자문을 구했다. ‘형, 원래 기계가 재활용 쓰레기면, 방금 형이 말한 그 폰은 음식물 쓰레긴데?’


중간 과정을 다 뛰어넘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기계를 14개월간 매우 잘 썼다. 비록 구매 사흘 뒤부터 그 폰이 매일 홈쇼핑에서 10만원에 팔리는 걸 봤지만.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네비로 쓴답시고 핸들에 거치한 그 폰은 항상 내 위치를 이어도 앞바다로 표시하긴 했지만. 남들 다 잘하는 앵그리버드, 고무줄을 당겨 손가락을 놓으면 2초 뒤에 발사되긴 했지만. 잘 썼다고 표현해야만 한다. 그 때까지 내가 내 돈으로 산 어떤 기계보다 비싼 놈이었으므로. 개인적으로 그 점원에겐 좋은 폰을 싸게 팔아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밤늦게 술에 취해 집에 오다가 그 가게가 보이면 2주에 한 번꼴로 가게 문에 오줌을 눴다. 만약 가게측에서 용의자를 알았더라면, 먹은 것을 뱉어낼 때까지 과음하지 않는 나의 습관에 그 다소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3년 할부로 폰을 팔면서 1년 뒤에 오면 다른 기계를 공짜로 주겠다는 그 점원을 떠올리며 12개월 차에 가게를 들러 말을 꺼냈을 때, 거기 있던 직원들이 합창하듯 ‘그 때 있던 직원들 다 바뀌었고 사장도 바뀌었어요.’라고 친절히 답했던 게 생각난다.


내 폰의 육신은 대구에 있지만 영혼은 서울에 있는지 GPS를 켤 때마다 서초구 어느 곳을 2~5분간 머물다가 대구로 좌표를 옮기곤 했다. 매번 내 폰의 유체이탈을 지켜보며 후배의 가르침대로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 신세계가 또 없었다. 그 신인류들은 중상급의 스펙을 지닌 0원짜리 기계를 사서 3개월을 쓰다가 해지하고, 쓰던 기계는 10만원에 파는 일을 매 3개월 주기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 신인류의 창조경제 활동에 동참하였고 수많은 폰들이 내 손을 거쳐갔다. 대개 성능은 나쁘지 않지만 인지도가 낮은 제조사의 폰들이었다. 그러다가 ‘밤에 줄서서 폰 사는 일 없어야’한다는 누군가의 말과 함께 나의 부업은 끝났다. 그 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푼돈에 나온 휴대폰과, 주변 사람들의 휴대폰을 싼 값에 바꿔주고 받은 중고폰들은 취미삼아 책꽂이에 모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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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책꽂이의 폰 박스들이 너저분하게 느껴져서, ‘이제 처분해야겠다. 내 취미는 이제부터 휴대폰 수집이 아니라 코인 수집이야.’라는 생각으로 정리하다가 4년전에 생산되어 6개월 가량 빛을 보고 봉인된 폰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이 왜 그렇게 흘렀는지, 내가 쓰던 삼성의 플래그십 기종을 보며 이 폰의 성능은 나한테 과분해, 갤럭시를 팔고 구형폰을 쓰자는 결론을 내렸다. 갤럭시는 중고시장에서 새 주인의 품으로 떠나갔고, 그는 내 손에 30만원이 좀 덜 되는 돈을 안겨주었다. 이 만남, 어땠을까. 몇 가지 빼고는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 몇 가지가 내 삶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이라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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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고 큰 화면에는 매우 만족한다.

출시된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보급형으로 출시된 기계라 카메라 성능이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라서 포스팅을 생각하며 폰을 꺼냈다가 여러 번 단념하게 되었다. 아마 카메라를 따로 들고 다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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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멸치 사진, 염라대왕이 즐겨먹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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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치킨 사진. 맛있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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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사는 사람을 ‘차가운 도시남자’라 불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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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셋팅을 맞춰서 실제 그 순간의 느낌을 살렸다.

최신형폰이면 으레 갖고 있는 지문인식을 통한 본인인증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나름 지문인식 기능이 있지만(국내에서는 가장 빠른시기에 탑재되어 불륜폰 따위의 별명도 있었다) 금융 어플에선 사용이 불가하다. 있을 땐 몰랐는데 다시 없어지니 불편하다. 배터리 교체식인 건 참 좋다. 사격 게임에서 탄창을 하나 더 얻은 느낌, 실제로 예비 배터리로 교체하는 순간에는 뒷 커버를 열고 탄창을 빼듯이 탁 흔드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노후의 영향인지 지속시간이 짧아 결국 하나짜리 배터리와 시간상으론 별 다를 게 없다. 메인보드도 낡아서 그런지 게시판이 잡다하게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면 저절로 재부팅이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사직서 쓰기 전에 꼭 보셔야 할 글’, ‘왜 우리 회사 사장님은 아침마다 이런 말을 할까요’와 같은 글을 클릭하면 폰이 꺼지는 바람에 아직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스티밋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게시판의 잡다한 글을 보며 낄낄거리는 시간이 줄었다. 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는데 아래 사진이 뜬다. 아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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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노트북,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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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게 노트북 쓰려는데 저러면 정말 짜증나지요.
핸드폰 쪽으로 정보가 매우 밝으신듯 합니다.
한번 상담을 드려봐야할듯... 저는 그냥 죽으나사나
삼성핸드폰을 쓰거든요. ^^;
아마 굉장히 비효율적인 상품을 쓰고있을듯...

제가 가장 선호하는 구성은 한 세대가 지난 갤럭시S 모델과 3~4만원대 요금제입니다. 최신형 중급기계보다 한세대 지난 최상급모델이 여러모로 좋더라고요. 어제 갤럭시S9가 출시되었으니 아마 5월쯤 갤럭시 S8의 가격이 좀 내려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ㅎㅎㅎㅎ 저는 정말 스마트 폰이 필요 없는 사람인데 그마나 쓸 때가 지도 보는 거 밖에는 없는거 같아요 ㅋㅎ

아... 노트북 ㅎㅎ 쬐에금 기다리셔야겠네요. 저럴땐 정말 그 빠른 시간이 느리게 가는 ^^

저한테도 스마트폰은 웹서핑, 지도, 은행, 메신저, 동영상 감상이 주 기능입니다. 별거 없어 보이지만 모든 기능이 갑자기 사라지면 불편할 기능들이죠. 삼성 플래그십 휴대폰을 방출하면서 삼성페이를 못 쓰게 되었는데 이것도 상당히 불편하네요. 노트북 업데이트 기다리면서 설거지 한 번 했습니다ㅎㅎ집사람이 저 업데이트에게 고마워하네요.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재미있는 이벤트들, 감사합니다. 사진이 뒤죽박죽이라 응모하지는 못하고 댓글의 사진들 잘 보고 왔습니다^^

오늘도 ㅋㅋㅋ하며 잼나게 읽었네요~ 어떤 이야기든 시트콤화 시키는 재주가 있으시다니까요ㅋㅋ
전 갤2로 입문해서 노트2-노트4-노트8 테크트리 탔어요.
갤2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이란.. +_+
지금 쓰는 노트8은 예약판매때 제 값주고 샀음에도 놋북보다 더한 애정과 가치를 느끼며 사용중이네요~

당시 애플의 혁신을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이 이해가 갑니다. 요즘에야 상향평준화로 다들 비슷한 폰이지만, 그 땐 정말.. 이젠 폰이 더이상 단순한 폰이 아니지요. 가격도 노트북만큼 비싸고, 기능도 풍부하고, 몸에 항상 지니다보니 애정도 많이 가고. 저도 지금 쓰고 있는 베가 폰으로 좀 버텨보다가 갤럭시S8이나 노트8로 가야겠습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폰테크 하시다가 나중엔 중고로 정착하셨군요ㅎㅎㅎ

핸드폰 시장에 밝은 분들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전 G2 - V10 엘지폰만 연속으로 쓰다가 이번에 갤구로 갈아타려구요. 사전예약했는데 갤럭시 폰은 처음이라 벌써부터 설레이네요ㅎㅎ

이번 갤8~갤9 사이의 변화가 갤7~갤8 만큼의 변화에 비해 미미하다는 평이 많은듯하지만 그만큼 더 안정화, 최적화가 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출시 직후의 폰을 쓰시는 점이 정말 부럽네요. 저도 예전에 LG 뷰2, 옵티머스LTE3 등의 중급 기계를 쓰다가 갤럭시S4로 넘어간 적이 있는데 완전 신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치고 싶은 버릇인데.. 뭐든 좀 쓸만하면 '내 분수에 과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 거부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쓰는 중고폰이 지 멋대로 재부팅되곤 하지만 더 마음이 편한 걸 보면 참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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