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지켰으면 된거야. 쇼핑백아 고맙다~

in #kr-write9 years ago (edited)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 업무는 늘 그렇듯이 항상 즐겁다. 주말을 맞이하기 위한 전초전이랄까. 머릿속은 쇼파에서 뒹구는 행복한 주말을 생각하며 손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하고 있는데 와이프한테 톡이 왔다.

닭도리탕 해놓을께
오늘 말복이구나
ㅋㅋ

'오 왠일? 오늘은 저녁을 먹지 말고 일찍 집에 가야겠군.'

평소엔 늘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편이다. 임신 8개월차인 와이프랑 다섯살 된 아들은 저녁을 6시쯤엔 챙겨먹는다. 대다수 직장인이 그렇듯 상사 눈치를 보며 퇴근을 못하는 시간이고 퇴근을 해봤자 7~8시는 되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아들은 9시에는 잠들기때문에 내가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엔 가족의 생활패턴이 무너져서 거의 먹고 들어가는 편이다.

그렇게 무상무념으로 계속 키보드를 두들기자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옆에 김과장님이 묻는다.

식사 하실거죠?

아니요 오늘은 집에가서 먹을겁니다 ^^

왠일이래?

닭도리탕 먹으러 갑니다 흐흐.

회사 근처가 버스종점이라 평소에는 버스를 이용한다. 앉아서 갈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하철+버스환승보다 오래걸리지만 앉아서 부족한 잠을 청할 수도 있고 코인관련된 내용도 읽고 스티밋을 할수도 있다. 집사람의 닭도리탕을 기대하며 빨리 갈수 있는 지하철을 탔다. 평소 버스의 과격한 흔들림과 다른 부드러운 지하철의 승차감을 느끼며 몸을 싣는다.

30여분 후 버스환승을 위해 지하철에서 내렸다. 버스정류장을 가기 위해 지하철 출구를 나가려는데 출구쪽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이 까맣게 아우성이다.

'무슨일이지?'

사람들 어깨, 머리너머로 바깥을 보았다. 소나기가 퍼붓고 있었다. 한주간의 피로를 한방에 씻어내려는 듯 퍼붓는다. 비를 맞지도 않았는데 맞는 것처럼 시원하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와 출구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고 이리저리 집이나 친구 지인에게 전화나 톡을 하며 부르는 모습이다.

' 일단 택시라도 불러보자!'

카카오톡 택시 중형, 대형, 모범을모두 콜해본다. 소용 없다. 콜택시를 이용하기에는 비의 기세가 너무도 거세다.

'하긴... 이럴때 콜택시가 오겠어?'

이내 단념하고 비가 그치길 잠시 기다리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모두들 비가 두려운 듯 움츠러들며 이리저리 연신 폰만 만지작 거린다. 조금 더 지켜보자 조금씩 사람이 빠진다. 차가 데려 가기도 하고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도 있었고 부모님을 데리러 오는 자식들도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새로 산 스마트폰인 양 우산을 품안에 들고 온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비가 그치는 기대를 접고 전략을 구상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집근처 정류장에서 내리고 보자. 내릴때쯤 그칠수도 있고 정류장 근처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며 다시 기회를 엿보자'

역과 정류장은 불과 10m 남짓. 눈에 담배를 파는 작은 컨테이너박스가 보이고 한사람이 비좁게 들어갈만한 컨테이너 처마가 보인다. 한달음에 처마밑으로 숨었다. 비가 컨테이너를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빈 참치캔에 샤워기를 세게 틀면 이런소리가 날것 같다. 따닥 따닥. 처마 밑에 숨어 다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날 바라보는 몇몇의 눈길을 느낀다. 아마 버스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었지 않았을까. 컨테이너 박스가 가려 버스가 오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처마 밑을 선점한 나는 호기롭게 고개만 삐죽 내밀어 버스가 오는 도로를 연신 훔쳐본다. 되돌아보니 '사람들 눈에 꽤나 우스꽝스러웠겠구나' 하며 볼과 귀가 달아오른다.

잠시 후 버스를 탔고 집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지하철 역앞에서 버스정류장으로 변한 것일 뿐. 조금 다른건 버스정류장이 다들 집근처인지 데리러 오는 차는 없고 데리러 오는 사람만 있다. 5분정도 또 비가 멈추길 기다려본다. 소용없다. 내 손에 평소에 들고 다니던 쇼핑백이 보인다.

'어쩔수 없다. 이놈이라도 쓰자'

근처 편의점은 100미터는 족히 넘었다. 이동해서 우산을 사봤자 잔뜩 비에 얻어맞을게 뻔했다. 평소 쇼핑백에 담고 다니던 목보호대와 '블럭체인 혁명'책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내가 너희들만은 지켜주마'

쇼핑백으로 머리 위를 가리고 집까지 걸었다. 어깨와 등 하체는 전부 비를 맞고 있었다. 머리 바로 위로 들리는 비가 쇼핑백을 두드리는 소리가 흥겹다. 괜히 쎈치해진다. 쇼핑백과 전쟁을 뚫고 나가는 전우애마저 느껴졌다.

'내가 비를 맞아본게 몇년만인가? 어릴때는 참 비를 맞는것을 즐거워했었지 '

괜히 쎈치해진 기분에 자조적인 웃음도 피식 짓는다. 10분을 그리 쇼핑백과 빗길을 걸었을까. 나는 머리 앞부분과 보호대, 책을 지켜내서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쇼핑백은 비를 맞느라 지쳤는지 이내 축 늘어졌다.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의 눈이 동그래졌다.

비 맞고 그냥 온거야? 전화하지

아니야 그냥 이놈 쓰고 왔어 ㅋㅋㅋ

으이구 다 젖었구만~

'그래 지켰으면 된거야... 쇼핑백아 고맙다~'


금요일 저녁 갑작스런 비를 만나며 돌아오는 길 쇼핑백과 함께한 전우 일기입니다. ^^ 글솜씨도 없는데 참 창피하군요. 이런 글도 처음 써보고 하는데 스티밋이 참 굉장합니다. 제가 이런글까지 쓰게 하다니요. 목보호대는 얼마전 목디스크로 고생해서 들고 다니는 저의 보조품입니다. ㅎㅎㅎ 비를 막아준 쇼핑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성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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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술술~~ 재밌게 읽었네요
쇼핑백이 @nhj12311님은 못지켰네요.ㅋㅋ
지킬만한것을 지켰으니 다행?? 인가요??♡

제가 지키려던 것은 다 지켰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ㅎ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블체체인의혁명 책은 무사하나..
알트코인들응 소나기를 맞고있네요.

비트 상승이 끝나고 횡보구간에 들어야 알트들이 상승하겟죠? ㅜㅜ

그러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

쇼핑백이 지켜준 정수리네요 ㅋㅋ 그래도 코팅된 쇼핑백이라 다행입니다 ^^

네 ㅎㅎ 다행히 빠닥거리는 녀석이라... 비가 어찌나 오던지 코팅된 녀석인데도 축 늘어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ㅎㅎ

끈끈한 전우애(?)를 느낄수 있는 글이네요ㅋ
목디스크도 쾌차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크 정말 지켜야될 소중한 것들을 지키셨군요ㅋㅋ 그리고 개발자로서 목디스크 정말 조심해야합니다ㅠㅠ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래요ㅎㅎ

아이고.. 또 감사합니다. ㅎㅎㅎ @facemaker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우리는 키보드를 못두들기면 안되니까요!

@nhj12311
헛... 혹시 감기에 걸리시거나 그러시진 않으셨나요?? 쓰고 오기엔 쇼핑백이 너무 작아보이네요 ㅠㅠ

머리만 가렷죠 ^^ 감사합니다 뒤늦은 일기도 보아주시고 ㅎㅎ괜찬습니당

광복절인 오늘도 새벽부터 세차게 비가옵니다.
쇼핑백이 그렇게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셨으니
아무리 작은 것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증거로 알고
스팀 안에서 행복한 날 만들어가기로 매직을 걸어볼까요?
팔로우 &보팅합니다.

꿈보다 해몽인듯 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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