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르센. 또 한명의 위대한 리더를 떠나 보내며

in #kr-sports6 years ago

뛰어난 직원이 위대한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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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풋볼 트라이브)

우리는 보통 어느 한 분야나 자리에서 뛰어난 사람을 보고, 어떤 자리를 맡겨도 잘 할 사람이라 말합니다. 회계 업무를 잘하는 직원을 보면서, ‘저 친구의 인성과 일 하는 모습,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팀에서도 잘 하겠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이 때로는 분야를 넘나들거나 위치를 넘나드는 생각으로 변화 되기도 합니다. 유능한 기업가가 대통령이 된다면 잘 하지 않을까. 유능한 직원이 기업의 매니징을 잘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궂이 어떤 예시를 들지 않아도 많은 기업과 정치인들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배워 왔습니다.

오늘 이야기 할 위대한 축구 감독 역시 별 볼일 없는 축구 선수가 위대한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러한 예는 거스 히딩크, 조제 무리뉴, 알렉스 퍼거슨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이죠. 명선수가 명감독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둘 간의 상관관계는 없는 듯 합니다.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결론날 아르센 벵거는 선수 시절 대부분을 아마추어 리그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29살의 전성기 나이가 되어서야 르 샹피오나(1부리그, 지금의 리그앙) 클럽인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죠. 이 시즌에 팀이 우승하며, 우승 경력을 갖게 되지만 출장은 11경기가 전부입니다. 선수 시절 프로 경력의 전부가 이 시즌의 11경기 입니다.

벵거는 선수로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일찍 깨닫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빠르게 매니저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색적으로 좋은 머리를 활용해 경제학 석사를 취득하죠. 감독으로서는 이색적인 이력이지만 경제학적 마인드는 이후 감독 생활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후 프랑스 리그 낭시를 시작으로 AS모나코 감독을 거치면서 점차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려가다가 프랑스 리그의 승부조작 파문 이후 회의감에 일본 J리그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96년 그의 전설이 시작될 아스널로 이적합니다. 이때 언론에서 나왔던 유명한 헤드라인이 있죠.

“Arsen... who?”

전설의 시작은 이렇게 작고, 볼품없게, 따가운 시선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EPL 판 3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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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인스티즈)

처음 제가 EPL과 유럽축구를 접했던 것이 99-00시즌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맨유가 트래블(3관왕)을 달성하며, 유럽을 씹어 삼킬 무렵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맨유의 팬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시기적 차이가 있지만 90년대 한국 정치판에는 아직 3김 이라는 원로 정치인들이 중심을 잡고 있었습니다. 3김을 정치적 색으로 나눌 수도 있고, 지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이들은 한국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 속에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이었죠.

저는 EPL을 보며, 3김을 생각했습니다. 99-00시즌 당시 리버풀의 감독은 제라르 울리에라는 프랑스인이었지만, 3김 정도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오히러 2004년 부임한 라파엘 베니테즈가 더 잘 어울릴겁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EPL은 유럽 최강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리버풀’의 라파엘 베니테즈,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가 휘어잡고 있었죠.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가 있었지만, 몰락하고, 이후 첼시가 새로운 빅4를 구축하지만 이들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깨지는 못합니다.

사실상 3김 시대는 베니테즈가 물러나는 2010년을 기점으로 끝이나고, 이후 퍼거슨 경의 은퇴와 2018년 벵거의 해임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무패 우승과 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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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많은 분들이 아스널의 위대함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벵거가 등장하기 이전 아스널은 이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벵거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기조 속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발굴해냈고, 그 결과물이 03-04시즌 전례없던 무패우승으로 나타났죠.

당시 아스널의 스쿼드는 베르캄프와 티에리 앙리, 피레, 비에이라, 융베리, 솔 캠벨, 옌스 레만 등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구성합니다. 다만 당시 스쿼드가 지금처럼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죠. 실제 티에리 앙리는 어릴적 벵거가 프랑스에서 직접 발굴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클럽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최고의 레벨에 계속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어린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만들어서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

이 한마디에 벵거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벵거는 경제학의 논리를 축구장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최고의 선수들 말고, 어리지만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일찍 영입해 육성하거나, 나이가 있고, 전성기가 꺽인, 가격대가 저렴해진 선수를 영입해 다시 끌어 올리는 방법을 택합니다.

아스널이 본래 돈이 많은 팀이 아니기에 벵거의 이러한 경영은 아스널에 큰 힘이 되었고, 2000년대 후반 아스널이 신축 구장을 지으며 생긴 부채를 이러한 선수 영입 철학으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갔죠.

비록 04년 이후 리그 우승이 없지만, 아스널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벵거는 최고의 감독임이 분명 했습니다. 좋은, 비싼 선수들을 원하는 것이 감독의 당연한 꿈일텐데, 벵거는 구단 경영에 플러스 될 수 있는 선수들만을 영입하며, 경기장 내부와 외부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지혜롭게 찾았죠.

따라서 2010년대 아스널의 부진 아닌 부진을 보며, 벵거 때문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벵거 덕분에 그나마 그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는게 올바른 표현일 것 같습니다.

감독이기 전에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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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인스티즈)

해임이 결정된 직후 많은 그의 제자들이 벵거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하죠. 사실 한국처럼 유교 질서 속에서 스승에 대한 관념이 확실한 문화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서구 사회에서는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닌듯 합니다.

이적 요청을 하기 위해 벵거의 집을 찾았던 패트릭 비에이라 역시, 너무도 따뜻하게 맞아주던 감독을 보며,

“내가 이렇게 친 아버지 같은 분을 두고, 떠나야 하나”

라며 갈등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선수들이 아스널을 떠나면서도 아스널의 정책 방향에 대해 질책을 해도, 뱅거 감독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예 없는데)

190cm가 넘는 큰키에, 호리호리하고 깐깐한 외모의 남성은 보기와는 다르게 선수들에게 자상하고, 항상 진심으로 다가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도 그를 매니저 이상의 스승으로 따르고 있을 것이겠죠.

아스널의 실패를 왜 그의 탓으로 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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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7m스포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벵거의 직접적인 해임 사유는 팬들의 요구입니다. 팬들은 벵거가 그만 아스널을 떠나주길 원했죠. 더이상 우승을 가져오지 못하는 감독은 필요 없었고, 새로운 감독으로 더 큰 업적을 만들어보겠단 생각일 겁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사자가 새끼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아스널을 여기까지 올린 것이 누구인지 생각해야 할 겁니다. 어떤 팀 보다도 감독의 능력이 크게 발휘 된 구단이 아스널임을 잊지 않아야겠죠.

최근에는 아스널 감독 후보군으로 여러 인물들이 거론됩니다. 다수는 아스널의 레전드들이고, 그렇지 않은 감독들도 눈에 띕니다. 아르테타, 티에리 앙리, 비에이라, 에메리 등이 거론되는데, 최근에는 그중 에메리가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네요.

그리고 최근 기사에서 아르테타가 감독직에 부적합하다는 기사가 있는데, 그 이유로 부족한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아스널에는 경험 많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 감독이 어울린다. 정말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단 생각이 듭니다.

벵거가 처음 등장할 때 들었던 이야기 “아르센.. 누구?”는 검증된 감독이나 확실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는 명장을 택한 답이 아니죠. 아스널 같은 구단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실험이었을 겁니다. 다른 구단처럼 가서는 어렵다는 생각도 했겠죠.

아스널은 애초에 분데스리가로 따지면, 도르트문트 같은 유형과 스타일의 팀입니다. 이 팀이 오랜 기간 성공을 맛보면서, 올챙이 시절을 잊고, 맨유나 뮌헨 같은 클럽처럼 운영되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바입니다.

최근 아스널의 행보를 보면, 아스널의 최근 부진은 구단 스스로가 자인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위대한 리더의 쓸쓸한 퇴장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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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코리아데일리)

“내가 아스널에 충성하는 이유는 변방에 있던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던 것이 엄청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널이 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스널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2009년 무렵 벵거는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PSG 등 최고의 클럽으로 갈 기회를 잡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스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 때문이었죠. 당시 아스널은 무리한 구단 이전으로 인해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 벵거는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일정 부분 맡았습니다. 더 풍족하게 선수들을 영입하며, 좋은 선수들, 원하는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팬들의 외침 속에 벵거의 22년 아스널 생활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역대 어느 감독보다도 뛰어났던 매니징 능력을 보여줬던 감독은 지난 세월 숱한 흔적들을 남겼지만, 결국 물러나게 되었죠.

팬들의 외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축구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위대한 이의 마지막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구단을 위하고, 팬을 위해 헌신했던 리더의 쓸쓸한 퇴장이 주는 교훈이 허무함은 아니길 바래 봅니다.

최고의 감독으로 리더로, 일면은 경영자로 기쁨을 주었던 노감독에게 그래도 수고했고, 잘했다, 고맙다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모습으로 다른 자리에서 만나게 되겠죠.

그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아스널 팬들에게 보답해주길 바랍니다.

사족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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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FM 코리아)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단 5분만이라도 구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슈퍼스타를 사오지 않고, 키운다.

감독은 항상 혁신가여야 한다.

사람들의 판단, 의견, 지난 결과에 따른 실망감은 내 알바가 아니다. 내가 신경 쓸 부분도 아니다.

유망주의 육성이 어려운 것은 ‘이 선수에게 출전 찬스를 주자’라는 각오와, 매주마다 정예 멤버를 보고 싶어하는 전문가나 서포터를 적으로 돌리고서 ‘그딴 것보다도 너를 믿기로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몸에 익힌 윤리관은 축구를 통해 배운 것이다. 클럽으로서 우리는 교육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이스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시합이나 행동을 통해 윤리관을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

“경기력이 나쁠 때의 유일한 해결책은 전력보강이다”라는 풍조를 나는 무엇보다 증오한다. 해결책은 팀이 단결하고 비판에 응수하며 자신들에게는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90분만으로도 ‘인생은 멋지다’라고 느끼며 귀가할 수가 있다. 이 사실에 나는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프로축구의 존재의의이다.

아스널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서 팀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주길 바란다. 아스널에 대한 나의 사랑과 지지도 영원할 것이다.

경력

선수 시절

FC 뮐루즈 (1973~1975) - ASPV 스트라스부르(1975–1978) - RC 스트라스부르(1978-1981)

감독

AS 낭시(1984-1987) - AS 모나코(1987-1994) - 나고야 그램퍼스(1995-1996) - 아스널 FC(199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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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FM 코리아)

자료 참고

https://namu.wiki/w/%EC%95%84%EB%A5%B4%EC%84%BC%20%EB%B2%B5%EA%B1%B0

https://namu.wiki/w/%EC%95%84%EC%8A%A4%EB%82%A0%20FC

https://football-tribe.com/korea/2018/01/04/%EB%B2%B5%EA%B1%B0-%ED%8E%98%EB%84%90%ED%8B%B0-%ED%82%A5-%EC%84%A0%EC%96%B8%EC%9D%80-%EC%9A%B0%EC%8A%A4%EC%9A%B4-%EA%B2%B0%EC%A0%95/

http://news.7mkr.com/data/20180105/86214.shtml

https://www.instiz.net//pt/2053336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103703

https://m.fmkorea.com/1024922741

https://m.fmkorea.com/1029364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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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굉장히 냉정한 곳이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해요. 이 글을 통해서 아르센 뱅거 감독에 대해 조금이나 알게 되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본이 있는곳은 냉혹하죠~ 최근 몇년간 몇몇 스포츠에 들어간 자본을 생각해보면 다른 분야보다 더 냉혹할 것 같아요. 스포츠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읽어주셨다는거에 두배 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벵거가 아스날을 떠나는군요
정말 멋진 감독이었네요
아스날 역사에 길이 남을 벵거감독 화이팅~~!!!

네네 화이팅~^^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기장엔 팬들은 우승을 바라고 오죠
그러나 그게 잘않되니 안타깝네요
항상 잘되는건 인생에서도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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